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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그 많다던 백신은 어디로 갔을까

중앙일보 2021.03.09 00:11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성미 급한 사람이 일본에 살기 위해선 어느 정도 참을성이 필요하단걸 알지만, 요즘은 속이 탄다. ‘시작한 것 맞아?’ 싶을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는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첫 접종이 시작돼 17일째가 된 지난 5일까지 백신을 맞은 사람은 4만 6469명. 부작용 모니터링을 위한 초반 4만명 선행 접종을 거쳐 의료진 우선 접종이 3월부터 시작됐는데도 속도는 오르지 않는다. 당초 4월 초였다가 4월 12일로 미뤄진 고령자 접종은 4월 말은 되어야 시작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알려졌다시피 일본은 일찌감치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나서 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모더나 백신을 인구수를 넘는 1억 5700만 명분 확보해 놓았다. 그런데 화이자 백신 공급이 지연되면서, 일본은 유럽이 ‘주는 만큼씩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얼마나 공급될 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계획을 짜기도 힘든 상황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다면 아스트라제네카와 모더나를 맞으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두 백신은 아직 일본에서 승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의료센터 아라키 가즈히로 원장(왼쪽)이 일본 내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의료센터 아라키 가즈히로 원장(왼쪽)이 일본 내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백신 접종 지연의 원인이 ‘공급량 부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느린 승인 절차로 보인다. 일단 승인을 받기 위해 일본인 임상(수백명 규모)이 필수라 시간이 걸린다. 미국 등에 비해 접종 시작이 두 달 이상 지연된 이유다.  
 
일본인 임상 결과가 있다고 바로 승인되는 것도 아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한국은 40일이 안 돼 승인을 마쳤고, 세계보건기구(WHO)도 4주 만에 사용을 승인했다. 일본에선 지난달 5일 아스트라제네카가, 지난 5일에는 모더나가 승인을 신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후생노동성은 “빠르면 5월 중, 아니면 6월에 두 번째 백신을 승인한다”고만 밝히고 있다. 백신을 구입해놓고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몇 개월 더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안전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훨씬 빠르게 가능한 검증 절차가 일본에서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 건 의아하다. 지난주 만난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고베여대 교수는 “현재 일본 지도자들은 무엇도 바꿀 생각이 없다. 현상유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서도 하던 대로만 계속,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그 ‘한결같음’이 두렵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현재 속도대로 접종할 경우 일본이 코로나19 집단 면역에 도달하는 데는 10년 이상 걸린다는 예측까지 나오니 하는 소리다.
 
이영희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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