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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정보 접속 기록 남는 LH···직원은 폰으로 PC화면 찍었다

중앙일보 2021.03.09 00:02 종합 4면 지면보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희귀 나무 심기’ 같은 꼼수까지 써가며 보상을 극대화하려 한 듯한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전문가도 깜짝 놀랄 정도다. 많은 직원이 땅 투기 의혹에 연루된 것은 이 회사의 문화·성격과 직결돼 있다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직원들이 말하는 LH 기업문화
평균 4년 보상 담당, 땅 지식 풍부
신도시사업부 등에 개발 정보 많아

LH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자사 평가. “부동산 관련 정보가 많다”는 문구 등이 보인다. [사진 블라인드 캡처]

LH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자사 평가. “부동산 관련 정보가 많다”는 문구 등이 보인다. [사진 블라인드 캡처]

LH는 2009년 10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탄생한 공기업이다. 택지개발이나 도시개발부터 주택 분양까지 전 과정을 수행한다. 이 회사 직원은 토지를 개발하고 주택을 분양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가장 민원이 많아 최전방 부서로 꼽히는 보상 업무는 신입사원이 가장 먼저 배정받는다. 대개 10년 차 직원의 경우 4년 정도는 보상 관련 업무를 했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신입사원도 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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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LH 직원은 “입사 초기부터 친분 있는 동료끼리 회식을 하면 주된 화제가 부동산 투자 얘기”라며 “어떤 선배는 어디어디에 땅이 있고, 얼마 벌었고, 어디는 적금을 깨서라도 지금 사둬야 하고, 여윳돈이 없으면 서너 명이 모여서 같이 사서 묻어 두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에 1만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신도시 개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부서는 크게 신도시 후보지를 결정하거나 개발을 추진하는 사업부와 후보지가 결정된 후 토지 보상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 정도다. 신도시 사업부는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신도시 후보지를 고르고 이 중에서 개발지를 확정한다. 말 그대로 일찌감치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 보상 업무는 주요 간부를 제외한 대부분 직원이 신도시가 지정된 직후 알게 되는 구조다.
 
신도시 사업부나 보상 업무를 맡은 직원은 관련 정보를 보기 위해 PC에 접속할 때마다 접속 기록이 남는다. 신도시 사업 관련 업무를 맡은 직원은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비밀유지 서약도 한다. 그런데 직원의 내부 정보를 활용한 투기를 막는 안전장치는 이뿐이다. 스마트폰으로 PC 화면만 찍어도 정보를 쉽게 빼돌릴 수 있다.
 
실제 2018년 고흥 원흥지구 개발도면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때도 스마트폰이 동원됐다. LH 직원이 원흥지구와 관련된 개발계획서를 LH 군 자문위원에게 메신저로 전송했고, 이후 군 관계자가 도면을 사진으로 촬영해 자료가 유출됐다. 유출된 도면은 인터넷에 게재되기까지 됐다. 하지만 당시 관련 직원이 받은 징계는 ‘경고’ 수준이었다.
 
LH 규정에 ‘미공개 개발정보 이용 금지’ 조항이 있지만, 지난 10년간 이 조항에 근거해 적발·처벌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처벌 규정도 ‘내부 규정에 의한 자체 징계’일 뿐이다. 금융 공기업은 이런 사실이 적발되면 검찰에 고발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어지간한 비리는 눈감아 주는 LH의 ‘비리 불감증’ 조직문화가 문제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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