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위비 타결' 뭐 주고 뭐 얻었나...이번에도 '소요형 전환'은 실패?

중앙일보 2021.03.08 17:54
한ㆍ미가 7일(현지시간) 합의한 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은 첫 해 한국이 내야 할 분담금을 13% 인상하고, 2025년까지 협정을 유지하는 다년 계약이 유력하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식 발표되지 않은 가운데 4대 핵심 쟁점인 ▶총액 ▶연간 인상률 ▶협정 기간 ▶제도 개선 등에서 한ㆍ미 간 주고받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와 도나 웰튼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금 협상대표가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회의를 하는 모습 [외교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와 도나 웰튼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금 협상대표가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회의를 하는 모습 [외교부]

① '총액' 받고 '연간인상률' 내주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한국이 낼 방위비 총액의 첫 해 인상률은 한국이 최대치로 제시한 13% 수준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직전 협정은 2019년 12월 31일 만료됐는데 당해 연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약 1조 389억원이었다. 13% 인상하면 1조 1739억원이 된다.

총액 인상률 13% 이하로 맞추는 대신 연간 인상률 높일 가능성
정은보 "제도적 측면도 논의"...향후 협의 토대 마련에 그친 듯
블링컨 방한 앞두고 한‧미 동맹에 긍정적 신호

 
관건은 연간인상률이다. 앞선 방위비 협정은 한ㆍ미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방위비를 올리되 상한선을 4%로 정했다. 9차 방위비 협정(2014년~2018년)의 경우 첫 해에 5.8%를 인상한 뒤 이후 물가상승률만 반영해 1%대 인상률을 적용했다. 트럼프 행정부 협상팀은 초기부터 물가 상승률과 관계없이 연 인상률을 7%로 고정하자고 주장해왔다.
 
만약 첫해 방위비를 13% 인상하고, 연간인상률을 7%로 가정하면 5년 뒤에는 총액이 1조 6414억원까지 늘어난다. 2019년 대비 58%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기존 협정대로 4% 상한선을 유지한다면 5년 뒤 총액은 2019년 대비 37% 더 증가한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금액은 더 작아진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바이든 협상팀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연간인상률을 준용해 물가상승률인 평균 2~3% 수준을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간인상률이 4%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실제 상승폭은 상당히 늘어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작년 (방위비 분담금)은 그 전년도 수준으로 동결을 이미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 장관의 발언이 2020년 방위비는 2019년과 같은 수준으로 하고, 이번에 합의한 인상률은 2021년부터 적용하겠다는 뜻인지는 명확치 않다. WSJ 등은 새 협정의 만료 기한이 2025년까지라고 보도했는데, ‘첫 해’를 몇년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5년짜리 협정이 될 수도, 6년짜리 협정이 될 수도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② '다년 계약' 얻었지만 '제도 개선'은 요원

 
이번 협상에서 한ㆍ미가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제도 개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정은보 협상대사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제도적 측면도 논의하고 있다”며 “특별협정을 운용해가기 위한 세부적인 또는 수정 사항에 대한 논의를 늘 함께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담금 결정 방식의 전환 등은 차기 협상에서 실제 가능하도록 토대라도 마련하겠다는 게 이번 협상팀의 목표였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특별협정 형태로 방위비를 분담하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 뿐이다. 한국은 총액형, 일본은 소요형을 택하고 있다. 한국이 총액을 미리 정해놓고 어떤 사업에 쓸지 정한다면, 일본은 사업을 선정한 뒤 쓸 돈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소요형을 따른다고 해서 한국 측 분담금이 반드시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용처를 보다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또한 협상이 양국간 정치 상황에 휘둘릴 가능성이 줄어들며, 미군이 받아가고도 쓰지 않고 쌓아두는 미집행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은 수년에 걸쳐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의 전환을 미국 측에 요구해왔지만, 끝내 관철하지 못했다.
 
이번 협상에서도 제도 개선에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면, 본격적인 협의는 차기 협상 때나 가능할 전망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합의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에서 우리 측이 제도 개선 얘기를 먼저 꺼내 판을 흔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짧은 시간 안에 협의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했다.
 

③ '블링컨 방한' 앞서 부담 덜었지만, 숨은 청구서 있나

 
한‧미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46일만에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향후 동맹 간 협의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오는 17일 처음으로 방한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한‧미의 외교‧국방 장관이 함께 만나는 '2+2 회담'이 5년만에 부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 직전에 1년 반 넘게 공전을 거듭하던 방위비 협상을 매듭지으면서, 정부로서는 양국간 예민한 문제를 미리 털어내고 협의의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

다만 미국 측이 동맹 복원의 상징으로 방위비 협정 타결을 앞세우는 동시에 한국에 동맹으로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 로드맵 결정, 대중 압박 이니셔티브 등 다른 외교안보 분야에서 미국 측 요구를 더욱 크게 반영하라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동맹 관계와 직접 연계시키지는 않으면서도 한‧미‧일 3자 협력, 북한 문제, 대중국 압박, 이란 제재 등에서 한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협상을 마치고 8일 귀국길에 오른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는 한ㆍ미 당국이 전날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한 부분과 관련해 "협상대표 간에는 일단 합의가 이뤄졌지만 결국은 각자 내부적 보고 절차를 거쳐서 승인받고 확정이 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면서 "(합의 기간과 인상률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내부 절차 완료 이전에는 절대 언급하지 않기로 미측과 인식을 같이했으니 양해 해달라"면서도 "(미 국무·국방 장관) 방한 전에 발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