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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동산 ‘정부 실패’ 막으려면 민간 참여 열어야

중앙선데이 2021.03.06 00:21 726호 30면 지면보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신도시 개발 발표 전에 LH직원들이 해당 지역 토지를 매입했다는 제보에서 시작한 의혹은 정부 차원의 3기 신도시 전체에 대한 국토교통부와 LH직원 및 가족의 토지거래현황 전수조사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 구조에 기인한 것이었는지 규명해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LH 의혹’에 공공주도 주택정책 신뢰 잃어
개발 정보 독점한 기관, 비리 유혹에 취약
공공은 주택정책의 마중물 역할에 그쳐야

대통령의 질책과 전수조사 지시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전면적 공공주도 주택공급 사업에 대한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를 보여주는 사례임을 방증한다. 토지 개발이라는 독점적 정보를 가진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주택공급 정책 시행 속에는 ‘특급 정보’로 한몫 보려는 내부자의 유혹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정의당이 4일 LH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관련한 조사 범위에 세종시도 포함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 실패는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오히려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라고 경제학 교과서는 설명하고 있다. 공공주도 주택공급 사업은 현 정부가 내놓은 25번째 부동산 정책이다. 집권 이후 4년 차까지 공급보다는 규제로 부동산을 잡겠다는 아집으로 일관하다 역대 정권 최고의 부동산 가격 급등이란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서야 돌아선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정부 실패’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공급’으로 방향은 돌렸지만, 민간(시장)을 배제한 공공주도는 정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변창흠표 정책’인 2·4 공공개발 부동산 정책은 LH직원들의 투기 파문이 터지면서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신뢰에 결정타를 입었다. 더욱이 LH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한 시기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그런데도 변 장관은 4일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걸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제식구 감싸기 발언을 했다.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말이다. 공공개발의 핵심은 국민이 자신의 재산을 국가에 온전히 맡기는 것인데, 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긴 격이 된다면 국민이 어떻게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을까.
 
부동산학자 등 전문가들은 정부가 진정으로 집값을 잡기 원한다면 공공주도 일변도의 주택공급 정책을 바꿔 시장이 스스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려면 공공은 주택공급의 마중물 역할에 그쳐야 한다. 공급이 필요한 곳에 민간이 적절히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초과이익환수제와 용적률 규제, 과도한 기부채납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주택공급 부족으로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 강남권이 공공주도 주택공급 사업 참여를 꺼리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어차피 LH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이 계획된 80만호가 넘는 주택공급을 주도하기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국내 주택시장 공급 주체의 90%가 민간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불어 이번과 같은 LH 직원 투기 파문을 막기 위해서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부처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부동산을 살 때 증권사의 경우처럼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순식간에 다락같이 올라간 부동산 가격에 청년은 결혼을 포기하고, 신혼부부는 아이 낳기를 꺼리고 있다.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합계 출산율(0.84명)도 부동산 정책 실패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정부는 말로만 발본색원을 지시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정부 실패’를 인정하고 과감한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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