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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밖으로 나온 신라 토기와 ‘맞선’ 보다

중앙선데이 2021.03.06 00:20 726호 18면 지면보기
양태오 디자이너.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양태오 디자이너.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신라 천년의 역사를 품은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역사관이 3년에 걸친 리뉴얼 작업을 마치고 새롭게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다. 이번 개편에선 지진에 대비한 안전 강화는 물론, 미로 같던 전시공간을 한눈에 들어오는 열린 구조로 개선했다. 또한 높이 4m에 이르는 대형 저반사 유리 진열장을 설치해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최신 LED 조명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경주박물관 리뉴얼 양태오 디자이너
신라 미학과 오롯이 대면 경험
학습서 감성 공간으로 재탄생

로비 복도 벽 뚫고 낸 큰 창 눈길
남산 풍경도 실내로 끌어들여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비 공간의 재탄생이다. 무겁고 칙칙했던 회색 대리석을 걷어내고 모래 빛깔의 벽면과 바닥에 나무를 적절히 섞어 꾸민 모던한 인테리어는 우아하면서도 세련됐다. 한옥과 신라 굽다리 토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천장 구조물과 장식은 품격이 있으면서 감각적이다.
 
명상 위해 의자 위치·높이까지 신경
 
새롭게 단장한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역사관 로비. 한옥과 신라 굽다리 토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천장구조와 벽장식이 포인트다.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새롭게 단장한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역사관 로비. 한옥과 신라 굽다리 토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천장구조와 벽장식이 포인트다.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지난 6개월 간 서울·경주를 오가며 로비 디자인을 책임진 사람은 ‘태오양 스튜디오’의 양태오 디자이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키워드를 ‘감상의 연결, 감성적 휴식, 유물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설명했다.
 
“박물관도 이제 학습의 공간에서 감성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할 때죠.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수천 년 전의 신라 유물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디자인적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선 ‘감상의 연결’을 위해 로비 복도 벽을 뚫고 큰 창을 달아 전시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끝이면서 새로 시작되는 일종의 ‘오픈 엔디드’ 구조로, 유물 감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다. 건물 입구 한쪽을 통창으로 막고 경주 남산의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 디자인은 ‘감성적 휴식’을 위해서다.
 
“창 앞에는 사자 석조물을 배치했어요. 원래대로라면 유물은 전면에 조명을 받아야 하지만, 해를 등지게 한 건 경주 남산 풍경의 한 요소로 유물을 포함시키기 위해서였죠.”
 
하이라이트는 중앙에 위치한 노출 전시대다. 유리 밖으로 나온 신라 토기들은 고색창연한 색과 질감으로 생생하게 다가와 시선을 확 붙든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유리라는 필터를 사이에 두고 유물을 보는 게 아쉬웠어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신라 미학과 오롯이 대면할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죠.”
 
일상에선 할 수 없는 ‘유물과의 직면’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고, 좋은 추억은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새로운 경험에서 촉발된 동시대의 문화 창출. 21세기 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숙제를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라의 대표 유물인 굽다리 토기를 유리막 없이 노출시킨 로비 중앙 전시대.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신라의 대표 유물인 굽다리 토기를 유리막 없이 노출시킨 로비 중앙 전시대.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신라미술관 2층의 작은 로비도 같은 맥락으로 디자인됐다. 신라 불상 특유의 멋을 지닌 약사여래불과 송화산 반가사유상을 로비 공간 양 끝에 배치하고, 그 사이를 잇는 외벽을 통창으로 연결해 경주 남산의 자연이 로비 공간의 일부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양 디자이너는 신라 불상이 건네는 위로와 함께 치유와 명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의자의 위치와 높이까지 신경 썼다고 했다.
 
“불국정토(佛國淨土)를 꿈꿨던 신라인들이라면 불상 앞 어디쯤, 어떤 높이에 앉았을까 상상하면서 종교적 위엄과 친근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위치와 각도를 찾아냈죠.”
 
양 디자이너의 작업에는 늘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그는 정작 스스로를 “디자이너 이전에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서술형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과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이 왜 존재했는지,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 현대인의 일상에서도 감성과 휴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동시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게 제 역할이죠.”
 
“스토리텔링 뛰어난 디자이너” 호평
 
2018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협업한 피카부 백.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2018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협업한 피카부 백. [사진 태오양 스튜디오]

외국의 디자인 전문가와 기자들이 그를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디자이너”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피카부 백’ 협업을 할 때는 가방 디자인보다 작은 책을 먼저 만들었다. 명품 가방과 여성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조선시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를 연구한 책이다. 이후 가방에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횃불을 들고 길을 떠나는 조선 여성을 그린 옻칠 3D프린팅을 꿰맸다. ‘이사 갈 때 뜯어가는 예술 벽지’로 유명한 영국의 ‘드고이네’가 처음으로 한국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협업을 의뢰했을 때도 우리 고미술의 장르와 격조를 이해시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양 브랜드들과의 작업이 늘면서 제품명을 영어로 짓는 일이 잦다보니 욕도 자주 먹어요. 하하. 한국 문화를 소개하면서 왜 한글을 사용하지 않느냐는 거죠. 하면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 짓는 건 우리 문화를 ‘과거’라는 창고에만 처박아두는 것과 같아요. 지켜야 할 것은 당연히 존재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일은 더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의 MZ세대 또는 서양인과 소통하려면 적절한 표현법이 필요해요.”
 
디자인 하나를 시작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자료조사와 공부를 한다는 그는 지난 8년 간 하루 평균 3~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의 본질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일 ‘무엇을 바라보게 만들 것인가’죠.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지는 만큼 우리 문화의 과거·현재·미래를 깊이 꿰뚫어보려 노력 중이에요.”
 
양태오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와 일했다. 귀국 후 2010년 ‘태오양 스튜디오’를 설립해 롯데월드타워 123층 루프톱 라운지, 중국 베이징 한국문화원 VIP 접견실, ‘백화점보다 좋은 고급 화장실’로 유명한 망향휴게소 화장실 리노베이션 등 한국적 미감을 살린 공간 디자인을 선보였다. 2017년 영국 침대 브랜드 ‘사보이어’와 협업한 ‘문 01(The MOON 01)’로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런던 디자인 위크 톱 10’에 선정된 바 있다.

 
서정민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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