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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테스트, 젊은층 놀이터인가 불안한 심리 반영인가

중앙선데이 2021.03.06 00:02 726호 19면 지면보기
최근 SNS에서 ‘내가 독립운동가라면?’이라는 심리 테스트가 화제다. 삼일절을 맞아 우리은행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한 캠페인이다. 1919년으로 타임슬립해 ‘일본군에게 유린당하는 사람들을 본다면’ 같은 몇 가지 상황을 주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선택하면 나와 닮은 독립운동가를 보여준다. 젊은 세대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게시되자마자 “나 의료계 종사자 아니랄까봐 조국의 아픔 보듬는 간호사란다” 등의 공감 댓글이 순식간에 6500개를 돌파했다.

비대면 시대 맞아 MZ세대 열광
나와 닮은 독립운동가 찾기 등
다양한 상황 설정해 내면 관찰
SNS 프로필에 MBTI 공개 유행

반려견·공부법·연애 궁합까지
“댓글 보며 안도” 동질감 즐겨
기업선 바이럴 마케팅에 활용

 
심리 테스트를 이용한 다양한 바이럴 마케팅. 1 맘스터치의 ‘치느님 심리 테스트’. 2 포레스트의 ‘나만의 꽃심기 심리 테스트’. 3 머스트잇의 ‘명품 심리 테스트’. 4 스낵팟의 ‘스낵 심리 테스트’. 5 우리은행의 ‘독립운동가 심리 테스트’. [사진 각 브랜드]

심리 테스트를 이용한 다양한 바이럴 마케팅. 1 맘스터치의 ‘치느님 심리 테스트’. 2 포레스트의 ‘나만의 꽃심기 심리 테스트’. 3 머스트잇의 ‘명품 심리 테스트’. 4 스낵팟의 ‘스낵 심리 테스트’. 5 우리은행의 ‘독립운동가 심리 테스트’. [사진 각 브랜드]

다양한 상황 설정을 통해 자신을 관찰해보는 심리 테스트 열풍이 요즘 젊은 MZ세대 사이에서 식을 줄 모른다. 원조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다. 브릭스와 마이어스 모녀가 2차 대전 무렵에 분석심리학의 대가인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구분한 프로그램으로, 국내 기업이나 상담 분야에 도입된 지도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최근 비대면 시대를 맞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MBTI’를 입력하면 ‘ISFP’ ‘ENTJ’ 등 유형별 찰떡궁합 및 상극을 매칭해 놓은 게시물은 기본이고, 유형별 어울리는 반려견이나 패션 추천, 유형별 수능 공부법까지 돌아다닌다. MZ세대는 아예 SNS 프로필에 자신의 MBTI를 공개하고, 대학에서 조별과제를 할 때나 소개팅을 할 때도 초면부터 MBTI를 밝히며 서로를 파악하는 게 유행이 됐다.

 
지금은 MBTI 변종이 대세다. ‘꼰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꼰대력 테스트, 연애 능력치 테스트, 19금 능력치 테스트, 정신연령 테스트, 나와 어울리는 대학교 찾기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방송가에서도 단골소재다. 지난해 ‘집사부일체’‘놀면 뭐하니’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나래, 장도연, 이효리 등 연예인들이 자신의 MBTl를 밝혔고, BTS같은 아이돌 스타가 SNS나 유튜브에 MBTI를 공개하면 팬들은 자신의 유형과 비교하며 팬심을 강화하기도 했다.  
  
1인 미디어로 2차 콘텐트 확대 생산

 
기업이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화제성이 더 폭발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MBTI별로 선물을 추천해주고, 롯데월드타워는 유형별로 성향에 맞는 장소를, 인테리어앱 오늘의집은 유형별 인테리어 컨셉트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MBTI가 SNS에서 유행하는 챌린지와 유사하게 인증·공유 문화로 퍼져가는 현상을 포착해,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을 유도한 것이다.

 
지난해 2월 27, 28일 이틀 동안 네이버 실검 1위에 오른 ‘나만의 꽃심기’ 심리 테스트도 집중앱 포레스트의 바이럴 마케팅이었다. 이틀간 800만명이 참여하고 다운로드는 평소보다 50배가 넘었다. 스타트업 스낵팟이 만든 스낵 심리 테스트(SPTI)에는 무려 1050만명이 넘게 참여했는데, 소비자 니즈를 파악해 자체 상품 제작과 간식 추천 서비스에 활용할 데이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건 MZ세대가 이런 심리 테스트의 단순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의 한 세기 전부터 존재했던 MBTI가 지금 새삼 붐을 타는 것도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2차 콘텐트를 만들어 확대재생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아이돌 팬덤이 공식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1인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파생 콘텐트를 제작해 유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에 늘 접속해 살며 스스로 크리에이터가 된 MZ세대에게 심리 테스트는 좋은 놀잇감이다. 유튜브에선 성격유형별 공부법·연애법·인간관계 대처법 같은 ‘MBTI 2차 가공 밈(meme)’ 콘텐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상 속 특정 상황을 가정한 후 MBTI 유형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는지 분석하는 채널도 흔하다.

 
대표적인 MBTI 전문 유튜브 채널 ‘인터TV’를 운영하는 손상윤(32)씨는 매주 ‘MBTI 드라마’를 찍어 올린다. ‘직장 상사에게 혼날 때’ ‘이성에게 고백할 때’ 같은 상황에 따라 16가지 유형별 반응 패턴을 혼자서 차례로 연기한다. 상사에게 혼날 때 유형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부분을 강조하며 서로 다른 심리를 보여주는 식이다. 외국계 기업 직장인으로 MBTI관련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는 손씨는 “2019년 초 채널 개설 당시는 반응이 미미했지만 지난해 1인극 콘텐트를 올리면서 인기를 얻었다. 자아 탐구 훈련이 부족한 MZ세대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 시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차경욱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심리 테스트는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표현하기 위한 가치소비의 일종이지만, 1인 미디어 폭증과 맞물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트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소재가 됐다”고 분석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도 “미디어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세상이 되면서 콘텐트 산업에도 아마추어 집단지성이 공동창작하는 프로슈머 개념이 등장했다”면서 “아이돌 산업에서 팬덤이 중요한 창작기지가 됐듯, 심리 테스트도 소비자가 공동생산자의 반열에서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가는 단계에 온 것”이라고 정의했다.

 
콘텐트에 대한 댓글 참여 양상도 흥미롭다. 각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공감 댓글이 몰리며 유형별로 일종의 커뮤니티가 생겨나는데, 이는 일면식 없는 상대와도 공통 관심사가 있으면 금세 소속감과 연대감으로 뭉치는 MZ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학생 이모씨는 “내가 속하는 유형이 나와 딱 맞는지는 모르겠다. 좀 엉뚱해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오히려 얘깃거리가 많아진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더 편하게 자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버 손상윤씨는 매주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MBTI의 16가지 유형별 행동패턴을 보여주는 ‘MBTI 드라마’ 만든다. [사진 유튜브 캡처]

유튜버 손상윤씨는 매주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MBTI의 16가지 유형별 행동패턴을 보여주는 ‘MBTI 드라마’ 만든다. [사진 유튜브 캡처]

손상윤씨는 “댓글을 보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과 즐거움이 느껴진다”면서 “집단주의적인 한국 문화에서 심리 유형론은 내재된 열등감이나 비주류의 박탈감에 가장 합리적인 위로가 된다. MBTI가 보여주는 것은 철저한 우열사회가 아닌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가치와 맞닿아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인식의 전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지선 연세대 심리학과 객원교수는 “‘깡’처럼 핫한 밈이 재미만 공유하고 끝이라면 MBTI 밈에는 나에게 주는 함의가 있다”면서 “나와 남의 특성을 대변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으니 이해의 장이 열린 것이고, 그래서 다른 밈보다 훨씬 파워풀하다. 공감의 접점이 많은 만큼 댓글도 많은 게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심리 테스트 열풍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로 전환되면서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든 시대상을 반영한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말부터 심리 테스트 검색이 치솟았는데, 평소라면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이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느라 분주할 시기였다. 팬데믹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만남 대신 심리 테스트를 관계 맺기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테스트 결과를 SNS에 공유하면서 ‘스몰 토크’를 시작해 공감과 소통의 과정을 즐길 수 있으니, 혼자 놀면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진지한 성찰을

 
차경욱 교수도 “비대면 사회의 소비지출 트렌드는 ‘노 컨택트 안에서 뉴 컨택트 찾기’”라면서 심리 테스트의 공유 문화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SNS에서 주로 사진이나 소유물 과시를 통해 나를 드러냈다면, 이제 나에 관한 콘텐트를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쪽으로 진화한 측면이 있다. 심리 테스트는 나를 알고, 나를 보여주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세 단계를 다 충족시켜주는 효율 좋은 콘텐트”라는 것이다.

 
하지만 ‘뭘 먹고 뭘 입을지’ 사소한 결정까지 내려주는 심리 테스트의 범람이 비대면 시대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김난도 교수팀의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심리 테스트 열풍을 ‘레이블링(labeling) 게임’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사회적 접촉이 현격히 줄어들며 실존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팬데믹 시대의 현대인이 자기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딱지를 붙인 뒤, 해당 유형이 갖는 라이프스타일을 동조·추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게임처럼 수행한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확신할 수 없으니 MBTI나 각종 심리 테스트 같은 레이블링 게임을 활용해 자신이 누구인지 ‘딱 정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외부의 틀이 아닌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진정한 행복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심리 테스트의 유행은 욕망으로 가득한 ‘원팅(wanting)’에서 자아를 만족시키는 ‘라이킹(liking)’으로 사람들의 마음지침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조지선 교수는 “과거에는 시스템에서 통상적으로 주어지는 일련의 액티비티를 따라가면서 외부에 있는 목표를 추구하면 됐었다. 효율적이라고 예상되는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느라 그동안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질 시간도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 질문과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걸 원하는 게 좋을 걸’이라는 누군가의 메시지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관찰하다 보면 진짜 행복이 찾아올 것이란 얘기다.
 
유주현 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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