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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식재료, 깊고 수더분한 맛에 ‘백제의 미소’ 절로

중앙선데이 2021.03.06 00:02 726호 26면 지면보기

[맛따라기] 부여 시골 맛집 5선

부경식당 낚시갈치조림에 들어간 갈치는 낚시광인 남편이 낚시로 잡았다. 하수오우어회무침은 채 썬 하수오를 김에 싸서 함께 먹는다. 신인섭 기자

부경식당 낚시갈치조림에 들어간 갈치는 낚시광인 남편이 낚시로 잡았다. 하수오우어회무침은 채 썬 하수오를 김에 싸서 함께 먹는다. 신인섭 기자

인생 2막의 터전을 부여에 잡고 서울 집을 오가며 지낸 지 만 3년이다. 그 동안 기쁘게 깨달은 것 하나는 동네 산의 둥실한 마루금과 거기 눈썹처럼 자라는 나무들이 백제 산수문 벽돌(보물 제343호)의 풍경과 닮았다는 사실이다. 벽돌에는 산속에 집 한 채가 있고, 집으로 가는 백제인이 그려져 있다. 그를 떠올리며 시골집을 오간다.
 

하수오 곁들인 웅어무침회 제철
시원·칼칼한 한우 고사리육개장
쇠머리찰떡엔 밤·대추·콩 듬뿍

다슬기 아욱국은 통통한 살 푸짐
쫄깃한 표고 넣은 찰랑한 묵 일품

즐거운 발견도 있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의 맛이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 말은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새로 지은 궁실이 그러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한 데서 유래한다. 백제문화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부여에서 정직한 재료로 깊고 수더분한 맛을 내는 음식들을 먹을 때도 이 말이 떠올랐다. 3년 동안 발품 들여 발견한, 입가에 ‘백제의 미소’가 절로 번지던 시골 맛집 5곳을 소개한다.
 
부경식당 낚시갈치조림에 들어간 갈치는 낚시광인 남편이 낚시로 잡았다. 하수오우어회무침은 채 썬 하수오를 김에 싸서 함께 먹는다. 신인섭 기자

부경식당 낚시갈치조림에 들어간 갈치는 낚시광인 남편이 낚시로 잡았다. 하수오우어회무침은 채 썬 하수오를 김에 싸서 함께 먹는다. 신인섭 기자

▶부경식당 하수오우어회, 낚시갈치 조림·구이
처음 갔을 때 “수석(壽石) 찾다가 노다지 줍다”라고 감탄했다. 상반기엔 우어회, 하반기엔 낚시갈치 조림·구이가 대표 메뉴다. 갈치는 낚시광 남편이 제주와 남해에서 잡아 날라 내륙에서 맛보기 힘든 신선함을 자랑한다. 금강을 사이에 둔 부여 세도와 논산 강경의 음식점들은 요즘 우어(표준어 웅어)회가 한창이다. 그 가운데 이 집 신인숙(52)씨 무침회는 색다르다. 우선 직접 재배해 채 친 하수오 뿌리가 따라 나온다. 한의학에서 하수오는 약효가 매우 뛰어난 약재다. 그보다 중요한 건 무침회 맛이다. 뼈를 발라 포 뜬 웅어 살에 미나리, 풋마늘 대, 배 채를 넣고 10가지 재료를 섞어 3~5일 숙성한 양념으로 무친다. 무칠 때 농사 지은 고춧가루와 참기름이 조금 들어간다. 무침에 하수오 올려 날 김에 싸 먹으면 입안에 봄 맛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무침회는 대개 먹는 동안 물이 생기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신씨는 “물이 안 생겨야 처음부터 끝까지 맛이 같다”고 했다. 제주에서도 택배 주문이 온다. 세도면 파출소 근처에 문 연 지 만 10년. 가는 길에 ‘사랑나무’가 유명한 임천면 가림성(성흥산성)이 있다.
 
딴펄시골마당 특선육개장은 한우 육개장임에도 8000원에 판다. 신인섭 기자

딴펄시골마당 특선육개장은 한우 육개장임에도 8000원에 판다. 신인섭 기자

▶딴펄시골마당 특선육개장
‘특선’ 한우 육개장이지만 값은 8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삶아 손으로 찢은 고기와 고사리·숙주·대파가 푸짐해 서로 사이 좋게 섞여 씹히는 식감도 먹는 즐거움을 더한다. 육개장에 고사리가 들어가면 맛이 좋지만 값이 비싸 식당에서는 보기 어렵다. 이런 육개장에 반찬이 7~8가지 나온다. 며칠 전 점심 반찬은 배추겉절이, 마늘종견과류볶음, 고추지, 시금치나물, 알타리무섞박지, 양파초간장절임, 통영 모자반무침, 무장아찌무침이었다. 반찬은 모두 여주인 유인순(63)씨 손으로 직접 준비한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국물이다. 뚝배기에 고기 삶은 물 넣고 고춧가루 풀고 찢은 고기와 나물 재료 넣어 끓인 국물은 진한 고기 맛과 좋은 고춧가루가 내는 달면서 칼칼한 맛이 잘 어우러져 깔끔하고 시원하다. 고기는 ‘서동한우’를 운영하는 남동생이 공급하는 신선육과 숙성육이 반반 들어간다. 부여경찰서 구내식당을 9년 1개월 책임지다가 나와 이곳에 음식점을 차린 지 10년 됐다. 부여군 규암면 백마강변 마을에 있다. 신감각 마을재생 사업이 활발해 젊은이들 발길이 잦은 ‘자온길’이 이웃에 있다.
 
만나떡방아에서 갓 만들어 뜨거운 쇠머리찰떡을 한입 크기로 자르기 전 식히고 있다. 신인섭 기자

만나떡방아에서 갓 만들어 뜨거운 쇠머리찰떡을 한입 크기로 자르기 전 식히고 있다. 신인섭 기자

▶만나떡방아 쇠머리찰떡
인터넷에는 주소가 잘못됐거나 안 나온다. 부여군 구룡면 태양로 3-3에 있다. 전화 041-832-2041. 1녀5남의 맏딸 정순이(60)씨가 억척으로 일군 떡방앗간이다. 연산에서 같은 이름의 방앗간을 10년 하다가 동생을 가르쳐 물려주고 부여로 옮겨 10년 됐다. 동생은 지난해 방송에 나가 떡(팥소절편) 달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 제품은 쇠머리찰떡(혹은 찰무리떡)이다. 찹쌀가루에 콩·밤·대추·팥 등을 섞어 쪄 살짝 굳은 뒤 썰면 모습이 쇠머리편육 같아 붙은 이름이다. 모듬백이라고도 하는 충청도 향토음식이다. 이 집에서는 찹쌀가루에 부여 밤, 연산 대추, 서리태, 호박고지, 잣, 건포도를 듬뿍 넣고 버무려 시루에 안치고 1시간쯤 찐 다음 작업대에 엎어 식히면서 표면에 흑설탕·흰깨·검은깨를 살짝 뿌린다. 부재료가 이렇게 푸짐한 쇠머리찰떡은 본 적이 없다. 재료는 가능하면 부여에서 구한다. 주문하면 한 번 먹을 크기로 잘라 개별포장하고 냉동해 보내 준다. 마른 찹쌀 한 말(8㎏)에 분량의 부재료 포함해 13만원(택배비 별도). 주문해 보니 떡 125개가 왔다. 보령 방향 1.5㎞ 거리에 완공 115년 된, 그림 같은 금사리성당이 있다.
 
두리두리식당 올갱이해장국에 들어간 다슬기가 푸짐하다. [사진 이택희]

두리두리식당 올갱이해장국에 들어간 다슬기가 푸짐하다. [사진 이택희]

▶두리두리식당 올갱이해장국
에메랄드 빛 다슬기 삶은 물에 시골 된장 풀고 아욱과 잘게 썬 양파를 넣고 나선형이 온전히 살아 반짝이는 옥색 다슬기 살을 넉넉하게 올린 냄비를 상에서 끓이면서 덜어 먹는 된장국. 이토록 탐스러운 다슬기를 이렇게 많이 넣어 주는 다슬깃국은 보기 어렵다. 살 모양과 삶은 물로도 싱싱한 다슬기임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집된장 풀어 끓이면 솜씨가 특별하지 않아도 국 맛은 특별해진다. 60대 후반 부부가 19년 전 호프집을 열어 10년간 하다가 올갱이국 집으로 전업해 이 지역 해장 명소가 됐다. 주인은 날 풀리면 마을을 휘돌아 보령댐으로 흘러드는 웅천천에서 저녁마다 야행성인 다슬기를 줍는다. 동네 할머니들이 심심풀이로 잡아 오는 다슬기도 무게 달아서 모두 사들인다. 물이 어는 겨울에는 남한강 제천·단양, 섬진강 구례·하동에서 생물을 미리 구입해 껍데기째 삶아 냉동해 둔다. 쓸 만큼 꺼내 데우면 살 모양이 온전하게 빠진다. 여주인은 손님 없을 때면 방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다슬기 살을 뽑아낸다. 다슬기는 방언이 많은데, 부여에서는 ‘고동’이라 한다고 한다. 무량사 1.5㎞ 아래 마을에 있다.
 
삼호식당 도토리·올방개 묵과 민속주만 시켜도 4~5가지 반찬이 함께 나온다. [사진 이택희]

삼호식당 도토리·올방개 묵과 민속주만 시켜도 4~5가지 반찬이 함께 나온다. [사진 이택희]

▶삼호식당 도토리·올방개묵과 민속주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1150여 년 고찰 무량사 일주문 앞에 있다. 70대 부부가 1980년부터 산채음식과 묵을 낸다. 가까운 곳에 별서가 있어 요즘도 자주 오는 유홍준 교수가 대학 조교 시절부터 답사 오면 꼭 식사를 하고 갔다 한다. 산채비빔밥에는 열 가지 넘는 반찬과 우렁된장찌개가 함께 나온다. 주인 말로 꺼먹쌀·도라지·더덕·뽕잎·감잎·칡을 넣고 담근 민속주에 묵 한 접시(도토리·올방개 반씩)를 주문해도 4~5가지 반찬이 함께 나온다. 지난달 20일에는 토란대들깨나물·고사리·김장김치·시금치나물, 묵말랭이조림이 나왔다. 반찬만으로도 민속주 한 되는 너끈하다. 손님 맞이 물도 15가지 약재를 달여 뒀다가 내온다. 묵은 동네에서 키운 표고버섯 자투리를 잘게 썰어 넣고 쑤고, 굳힘 틀에 옮기기 전 들기름을 친다. 찰랑찰랑한 묵 한 점 머금으면 들기름 고소한 맛과 향이 미각을 깨우고 탄력 있는 묵에서 쫄깃쫄깃 씹히는 버섯 조각이 맛의 장단을 맞춘다. 묵은 당일 쑤어 파는 게 원칙이다. “하루 지내면 뚝뚝혀서 맛이 없어유. 남은 건 썰어 말려서 반찬 허쥬”라는 주인은 묵은 거라도 달라 했지만 팔지 않았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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