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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의 지방시대] 6개국 풀뿌리 교류 NEAR, 동북아 반목의 벽 낮춘다

중앙일보 2021.03.05 00:37 종합 23면 지면보기

활짝 핀 지방 공공외교

2019년 7월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주에서 열린 동북아자치단체연합(NEAR) 청년리더스포럼 참석자들이 야영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행사에는 한국, 중국 등 5개국 21개 자치단체 소속 60명과 현지 러시아 청년 600명이 참석했다. [사진 NEAR]

2019년 7월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주에서 열린 동북아자치단체연합(NEAR) 청년리더스포럼 참석자들이 야영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행사에는 한국, 중국 등 5개국 21개 자치단체 소속 60명과 현지 러시아 청년 600명이 참석했다. [사진 NEAR]

경남 서부의 함양군은 인구(3만9000명) 대비 국제교류가 두드러진 기초단체다. 미국·중국·베트남 등 7개국 11개 도시와 자매결연이나 우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열려다 올 9월로 연기한 ‘함양 산삼 항노화 엑스포’를 계기로 2년 전 7개 도시와 새로 손을 맞잡으면서 외연이 부쩍 넓어졌다. 덩달아 군청도 바쁘게 돌아갔다. 서춘수 군수는 새해 벽두 11개 도시 단체장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위로를 전하고, 산삼 엑스포 참관을 요청했다. 서 군수는 “외국 단체와의 협력 관계 구축보다 유지 관리가 더 중요한 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함양군은 교류 도시가 늘면서 전담팀도 만들었다. 이영희 담당 계장은 “산삼 엑스포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함양군 국제화의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 전략적으로 해외 교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교류 단체는 농산물 수출과 관광객 유치의 1번지다.
 

남북, 중·일·러, 몽골 78개 지자체
상생의 플랫폼으로 우호협력 다져
국내 지자체의 국제 교류는 1746건
관청 아닌 주민 중심의 내실화 긴요

경남 진주시(인구 34만명)의 국제 교류는 모범 사례다. 1961년 북태평양과 면한 미국 오리건주 유진시(City of Eugene, 16만명)와 우리나라 최초로 자매결연한 이래 반세기가 넘도록 대표단의 교환 방문을 이어오고 있다. 진주시청 국제통상팀 이영란 주무관은 “결연은 도시 형태가 비슷해 공동 발전을 꾀하자는 유진시 제의로 이뤄졌다”며 “2002년부터는 청소년 교류를 시작해 2019년까지 33차례에 걸쳐 130명이 상호 방문했다”고 소개했다. 청소년기 해외 견학은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다.
 
동북아 패러독스의 완충재
 
지방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꽃이 활짝 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면 교류는 바닥이지만, 지자체는 저마다 기회의 창(窓) 유지에 안간힘이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저성장의 메가트렌드에 맞닥뜨린 지방에 해외는 뉴프런티어다. 자매결연은 일손, 유학생, 관광객, 농수산물 시장 확보의 끈이다. 과거의 선진 지자체 벤치마킹에서 교류의 성격이 바뀌었다. 지자체의 풀뿌리 교류는 경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지만, 패권 경쟁과 불신·대립으로 뒤덮인 지구촌 패러독스의 완충재이기도 하다.
 
지방 공공외교는 지자체의 독자적인 양자 교류와 지자체 연합기구를 통한 다자 교류로 이뤄진다. 국가 외교와 지향점이 다를 뿐 틀은 한가지다. 지난해 말 기준 양자 교류를 보면 17개 광역단체·225개 기초단체가 82개국 1304개 도시(중복 제외)와 1746건의 자매결연·우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시도지사협의회 자료). 자매결연은 지방자치법상 지방의회 의결 사항이지만, 그 전 단계인 우호 협력은 의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중 광역단체는 71개국 345개 도시, 기초단체는 70개국 1012개 도시와 교류 관계다.
 
광역·기초 단체 시기별 국제교류 건수

광역·기초 단체 시기별 국제교류 건수

시기별로는 1960년대 10건, 70년대 18건이었지만 2000년대 647건, 2010년대 648건으로 급증했다. 95년 민선 단체장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화한 지방 분권이 세계화·정보화 물결과 맞물린 결과다. 광역단체는 서울시가 70건으로 가장 많고, 기초는 창원시(31건)와 포항시(27건)가 1, 2위다.
 
지역별로는 중국이 672건(38.5%)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다음은 일본 211건(12%), 미국 186건(10.6%), 베트남 77건(4.4%), 러시아 59건(3.4%) 순이다. 미국을 빼면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들이다. 베트남 외 필리핀(54건), 몽골(46건)이 상위권인 것은 결혼이주여성의 유입 등에 따른 문화적 접근성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훈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지방의 대외 협력 다원화가 지방의 국제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며 “국제 협력은 지역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 경쟁력 강화라는 패러다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에 따른 너도나도 식의 양적 확대보다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관(官)보다 주민 중심의 지속 가능한 교류의 틀도 불가결하다.
 
지자체의 다자 공공외교 플랫폼은 동북아지역자치단체연합(NEAR)이 대표적이다. 1996년 한국·중국·일본·러시아 4개국 29개 광역단체가 동북아 교류 활성화와 공동 발전을 위해 창설한 협력기구다. 이후 몽골 22개 전체 광역단체와 북한의 함경북도, 라선특별시가 가입해 회원 단체가 6개국 78개(인구 6억여명)로 늘어났다. 한국은 서울을 제외한 16개 광역단체, 일본은 환동해 11개 현, 중국은 11개 성·자치구,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관구 16개 공화국·주가 회원이다. 최고 의결기관은 격년 개최의 총회이고, 그 아래 국장급 실무위원회와 17개 과장급 분과위원회를 두고 있다. 상설 사무국은 경북 포항테크노파크에 있다.
 
국내보다는 중국·러시아·몽골에 더 알려져
 
지난달 말 NEAR 사무국을 찾아가 보니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전문위원과 회원단체 파견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중국 헤이룽장성 파견 청안니(32) 주재관은 “NEAR 옵서버 자격인 랴오닝성에서 회원 가입에 대한 문의를 해오는 등 중국 지방 정부도 NEAR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사무국과 중국 지방정부 간 가교 역할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무국은 후쿠오카 총영사를 지낸 김옥채 사무총장이 총괄한다.
 
김옥채 동북아자치단체연합 사무총장

김옥채 동북아자치단체연합 사무총장

NEAR의 가장 큰 역할은.
“참가 단체들이 투자 유치·교역·관광 등에서 실질적 이익이 되느냐를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단견이다. 정치·외교적 갈등과 대립을 겪는 동북아에서 지자체 간 비정치 분야 풀뿌리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류·협력은 결국 지역의 공동 번영과 평화·안정에 공헌할 것이다.”
 
피부로 느낀 사례가 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로 경북도와 일본 시마네현 간 자매결연이 2005년 파기됐지만, NEAR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 2010년 이래 해마다 경북 대학생들이 시마네현 주관 교육분과위에, 시마네현이 경북 주관 경제인문교류분과위에 참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교류가 전면 중단됐지만, 제주에서 열린 NEAR 실무자 워크숍에 중국 후난성 등 8개 성 대표 19명이 참가했다.”
 
북한의 참여도는 어떤가.
“함북, 라선특별시는 2002년 9월 NEAR 가입 이후 인접한 지린성, 헤이룽장성 주관 국제교류 행사에 가끔 참석했다. 2019년 가을 지린성 주최의 동북아 지방정부 원탁회의에는 북한 단체장도 참가해 인사를 나눈 바 있다.”
 
국내에서 NEAR는 생소하다.
“국내보다는 중국, 러시아, 몽골에 더 알려져 있다고 본다. 사무국 웹사이트는 6개 언어로 정보를 발신하고, 관련 공문도 해당국 언어로 보낸다. 지난해 사무국 웹사이트 접속은 1600만건을 넘었고, 그중 80%가 외국에서 이뤄졌다. 우리 지자체들이 외국 지자체와 양자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NEAR를 통한 다자 교류가 부각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향후 과제는.
“현재 6개국 광역단체의 약 54%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데 이를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중장기 과제는 사무국 운영 예산이다. 총회, 분과위원회 개최 비용은 주관 지자체가 부담한다. 하지만 사무국 예산(연간 15억원)은 경북도와 포항시가 7대 3으로 분담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 되려면 유엔과 마찬가지로 회원 지자체의 분담금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역과 함께하는 유럽(Europe with regions)’을 내건 유럽지방정부연합(AER)은 NEAR의 협력 파트너이자 모델이다. 85년 닻을 올린 AER은 35개국 250개 자치단체가 회원으로, 유럽의 평화와 통합에 한몫했다. 현재는 유럽연합(EU) 거버넌스의 한 축이자 지역 이익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NEAR는 영토·역사·북핵 문제로 협력이 어려운 동북아에서 지방정부의 유엔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회원 단체들이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EAR는 지방 정부 간 교류·협력을 넘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통합의 밀알이 될지 모른다. 지방 공공외교의 잠재력을 재발견해 볼 때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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