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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의 시선] ‘입법 폭주’ 여당도 손 못대는 의사 특별 대우

중앙일보 2021.03.05 00:23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현철 정책디렉터

최현철 정책디렉터

미국 뉴저지주의 의사 J씨는 2015년 초 자신의 진료실에서 여성 환자를 성추행했다. 뉴저지 검찰은 수사를 마치고 증거자료를 주 의료위원회에 보냈다. 위원회는 J씨에 대한 처방과 수술을 금지하고, 면허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범죄 의사 면허취소법 또 보류
미국은 의사 징계 내용까지 공개
집단 행동에 굴복 역사 되풀이

꽤 내밀한 사실을 포함한 이런 정보는 의외로 손쉽게 볼 수 있다. 주 정부 소비자국 웹사이트의 의료위원회 처분 코너에 가면 수없이 많은 의사의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나열돼 있다. 지난 30여년간 면허취소나 정지 등 각종 처분을 받은 의사들의 명단이다. 이름 옆에는 처분 결정문 파일이 첨부돼 있다. 몇 개를 클릭해보니 J씨와 같은 성범죄나 돈세탁 등 심각한 범죄부터 의료비 부당청구나 보험사기 같은 범죄 이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치매 의심 판정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나 청결 의무 위반 신고에 따른 사소한 분쟁 이력도 있다.
 
뉴저지뿐 아니라 70여개 연방정부나 각 주 의료위원회들이 대부분 이런 정보를 제공한다. 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형사 처벌을 받은 경우 대체로 면허 취소 대상이다. 환자들은 클릭 몇 번만으로 자신의 담당 의사가 범죄에 연루된 적이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신상정보 보호에 민감한 미국에서도 의사들의 명예나 권리보다 그들에게 무방비로 몸을 맡기는 환자의 알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호받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 국내에서는 음모와 폭거로 치부된다. 우선 J씨와 같은, 아니 훨씬 더 심한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면허는 보호받는다. 2007년 경남 통영의 한 내과의사는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 3명에게 전신마취제를 주사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병원을 옮겨 여전히 진료를 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료법에 이런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면허가 처음부터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3년 개정된 의료법은 금고형 이상을 받을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고 규정했다. 27년간 별문제 없이 유지되던 규정이 2000년 슬그머니 바뀌었다. 면허취소 대상 범죄가 허위 진단서 발급과 같은 의료 관련 범죄로 확 줄었다. 이를 되돌리려는 입법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겨우 리베이트를 받은 경우만 취소 또는 정지 대상에 포함한 게 전부다. 설령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대부분 1년, 길어도 3년이 지나면 재교부 신청을 할 수 있다. 지난 5년간 면허를 취소받은 의사는 140명. 이중 124명이 재발급 신청을 냈는데 4명을 빼곤 모두 허가받았다.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취소하지 못하는 마당에 이런 행정처분을 공개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입법 좌절의 사례가 또 한 번 쌓였다. 지난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어렵사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나마 의료사고로 형을 받은 경우는 뺀다는 단서가 붙었다. 국회 회의록을 보니 복지부가 제안한 것이었다. 반발하는 의사를 달래기 위해 내놓은 절충안이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제안은 논의를 더 해보고 결정하자며 처리를 미뤘고, 행정처분을 공개하자는 안은 논의 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데 절충안마저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총파업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하겠다”고 선언했다. 백신 접종을 거부할 수 있다는 협박이다. 저변엔 의사들의 불만이 가득했다. 단순 과실범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며 “개정안은 의사면허 박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야당과 언론의 지적을 무시한 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밀어붙였던 여당 주도의 법사위는, 의사들의 반발에는 힘없이 꼬리를 내렸다.
 
의사들로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면허가 박탈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싫다고 모두가 대놓고 반대하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변리사·법무사 등은 우리 사회에서 소위 전문가 집단이라고 불리며 면허제도로 직역을 보호받는 직군이다. 해당 면허제도를 규정한 법들은 예외 없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이게 싫다고 집단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의사들만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그동안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무기로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대부분 들어줬던 역사를 제외하곤 찾기 어렵다. 국회가 다시 이런 역사를 공고히 해주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최현철 정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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