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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부의 돈 풀기와 ‘짖지 않는 개’

중앙일보 2021.03.04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많은 국가가 코로나19에 대응하여 과감하게 재정 지출을 늘리고, 초저금리로 돈을 풀었다. 이제 경기가 회복하면서 과도한 정부지출과 통화량 증가의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부지출과 통화량이 너무 늘면
인플레, 금리 상승, 금융 불안하고
국가 부채 쌓여 국민 부담 커진다
경제부처와 전문가가 경고음 내야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1조9000억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커졌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회복이 빠른 상황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수요가 분출하면 물가가 오르고 여기에 정부가 기름을 붓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소비자물가상승률)은 1979년에 연 13%에 달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끌어올려 물가상승률을 낮추었다.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많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의회 증언에서 “인플레이션이 특별히 높거나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물가상승률을 2022년에 2.25%로 예측하고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IMF는 2013년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짖지 않는 개’라고 표현했다. 코난 도일의 소설 『실버 블레이즈』에서 명탐정 셜록 홈스는 명마가 사라지고 기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밤에 개가 짖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면서 여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리했다. IMF는 달라진 경제 환경에 주목했다. 글로벌 분업으로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한 싼 가격의 상품을 전 세계가 수입하고, 기술 혁신으로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임금 상승률이 낮아져서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새로운 환경이라고 했다. 더불어 중앙은행의 확고한 물가안정 정책이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많은 중앙은행이 중장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 수준으로 정하고 민간의 물가상승 기대가 목표치에서 안정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이렇게 달라진 환경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주장도 많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몇 배 많은 돈이 풀렸기 때문이다. 돈이 너무 풀리면 돈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많이 오르지 않더라도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의 가격이 상승한다. 이미 미국은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2.2%로 올랐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 자산 가격도 급등했다. 인플레 기대와 자산 가치의 상승은 실물경기의 빠른 회복 추세가 주된 원인이지만,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도 반영한다.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의 장기 동결을 언급했지만, 시장은 연준이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미래의 기준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기대를 반영하여 미국 정부채권(10년 만기 국채)의 수요가 줄고 국채가격이 하락하면서 국채 수익률이 올해 들어 0.93%에서 1.54%로 빠르게 상승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정이 커졌다.
 
한국도 재정과 통화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4차 재난지원금은 19조5000억원에 달한다. 가덕도 신공항은 28조원 이상 사업비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실행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 많아지고 국가채무가 계속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가 더 쉽게 돈을 쓸 수 있도록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큰 문제 없이 중앙은행에서 무한히 돈을 빌려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미국처럼 국제결제통화를 가진 국가는 정부부채 증가와 통화 팽창이 가져올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미국 국채와 달러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많아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경우가 다르다. 국채발행이 너무 많으면 국채가격이 하락하고 수익률이 급상승할 수 있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정부와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진다. 한국 같은 개방경제는 원화 가치 유지와 금융·외환시장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국제 금리가 오르면 해외로 자본이 유출하고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고 원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입은 국민의 피해를 보상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정부지출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기 회복에 중점을 두고 경제 안정을 같이 도모하면서 미래의 부담은 최소화해야 한다. 효과가 의심스러운 대규모 사업과 통화 가치의 안정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 선심성 정책에 중독되면 감당하기 힘든 포퓰리즘 정책이 앞으로 쏟아질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밀어붙이는 정책을 경제부처와 통화당국이 엄밀히 검토하고 견제해야 한다.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는 공무원은 정치적 압력에 굴종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할 사명이 있다. 학계, 언론, 시민단체의 민간 경제전문가도 객관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밤에 짖지 않는 개는 잊힌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날 때 파수꾼들이 경고음을 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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