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스스로 적폐가 되고나서 적폐를 말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1.03.04 00:25 종합 26면 지면보기

앙시앙 레짐과 적폐 정치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은 문자 그대로 ‘구체제’란 뜻이다. 프랑스 혁명 전의 절대왕정 체제를 가리키지만, 단순한 봉건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제도와 부조리한 상황이라는 함의가 들어간다.
 

적폐 청산 앞세워 집권한 문 정부
청산 외치면서 구태와 구습 따라해
적폐 청산은 남이 아닌 나와의 싸움
혁명의 완수는 결국 시민들의 몫

앙시앙 레짐을 상징하는 유명한 풍자화가 쉽게 설명한다.(그림) 등에 업은 성직자와 귀족의 무게에 농민은 허리가 휜 채 곡괭이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땅에는 토끼와 새들이 채소와 곡식 낱알을 훔쳐 먹고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 당시 제1신분인 성직자는 약 10만명, 프랑스 전체 인구의 0.4%였다. 제2신분인 귀족 역시 40만명 정도로 1.6%에 불과했다. 이 2%에 불과한 계층이 프랑스 전 국토의 40% 이상을 소유했다. 그러니 2000만명에 달했던 농민들의 처지가 뻔하다. 말은 신분이 해방된 자영농민이라지만, 성직자·귀족에 대한 각종 의무와 부역으로 농노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사실상 경작권만 가진 농지에 대한 현물 지대는 말할 것도 없고, 도로세·교량세 등 각종 세금에 물레방아·빵가마 등 공공시설 사용료까지 물어야 했다. 이와는 별도로 교회에도 십일조를 바칠 의무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허리가 끊어지게 경작해서 수확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풍자화 하단에 이런 글귀가 있는 이유다. “이런 장난질이 곧 끝난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Ilfautespérerquelejeusefinirabientôt).” 그것이 프랑스 혁명이었다.
  
박수받았던 적폐 청산
 
프랑스 사회계층을 풍자한 그림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프랑스 사회계층을 풍자한 그림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앙시앙 레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적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는 설명으로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일반명사지만, 사람들의 입에 달라붙은 건 문재인 정부에서였다. 집권 초부터 “적폐 청산”을 입에 달고 살았던 까닭이다. 이전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던 만큼(비록 어부지리이긴 했어도) 국민적 지지도 받았다.
 
하지만 적폐가 본연의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전적 의미에 맞게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늘 한 쪽뿐이었다. 나와 우리 진영의 반대편 말이다.
 
정권 출범 직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각 부처에 발송한, ‘적폐 청산 부처별 TF 구성현황과 운용계획을 보고하라’는 공문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전 정부의 흔적 지우기, 전 정부 정책 관련자 수사 등 무리수가 전방위로 이어졌다.
 
부처마다 정권에 우호적인 시민단체·노동계 인사 등을 주축으로 위원회가 발족돼 공무원들의 전 정부 행적을 고강도로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상부의 지시만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무원들까지 징계 대상에 올랐다. 수사 의뢰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고, 상관의 잘못을 진술하고 면책받는 사례도 있었다.
 
특히 세월호 사건은 문 대통령이 방명록에 “고맙다”고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집권에 영향을 미쳤던 만큼, 강력한 재조사와 수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망신주기식 수사를 받던 예비역 장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까지 빚어졌다. 그는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적폐 몰이가 빚은 치명적 결과
 
정부의 적폐 몰이는 국내외적으로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모두 적대시됐다. 뜬금없이 친일파로 몰리고, 토착 왜구라는 이름이 덧씌워졌다. 당연히 한·일 관계가 희생됐지만 아랑곳없었다.
 
그것은 또 국가를 두 동강 냈다. 반대 진영 쪽의 잘못만 적폐가 되고 청산의 대상이 된 까닭이었다. 문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그 상처를 더 크게 더 깊게 들쑤시고 후벼팠다.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적폐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시장을 방문한 대통령한테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한 상인은 이른바 ‘문파’들의 집중포화를 당했다. “어딜 감히 대통령님한테…”라는 거였다. 가야사 복원을 강조한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특정 역사 연구를 지시하면 안 된다”고 비판한 교수는 졸지에 적폐 세력이 됐다. 전 정권이 시행한 국정 교과서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국정교과서 때는 왜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억지 주장을 들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해 영웅이 됐던 판사는 정유라 사건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에게 물병을 던진 여성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뒤 졸지에 청산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지자들의 이런 행태를 자제시켜야 할 문 정부는 그것을 오히려 ‘양념’으로 즐겼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파괴적 행태를 모른 척하고 은근히 부추겼던 중국 공산당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가장 잘못된 것은 적폐 청산을 외쳤던 정부가 자신들도 구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내로남불’과는 구별해야 한다.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에 비해 자기를 대하는 잣대가 한없이 너그러운 게 내로남불이라면, 이 경우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과거의 폐단과 똑같은 행태를 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까닭이다.
  
자신과 적폐를 구별하기 어려워져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전·현직 국회의원 사찰 의혹을 이슈화하려는 시도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정보원의 정치인 사찰이야 잘못인 게 분명하지만,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나 증거 없이 12년 전 사건을 들추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정무비서관이었던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것이란 추측이 어렵지 않다. 16대 대선을 앞둔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국정원 불법도청 사실을 폭로했을 때 정치공작이라고 비난하던 그들이 똑같은 선거 공작을 펼치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문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로 소급하며 1년 가까이 진상을 파헤쳤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이나 상임감사·이사들한테서 잔여임기나 실적과 상관없이 사표를 받았다. 그 자리엔 청와대나 장관이 추천하는 사람으로 채웠다. 그렇게 ‘낙하산’을 투하하는 과정에서 개인 기업에서도 보기 힘든 ‘채용 비리’가 저질러졌다. 이로 인해 장관이 법정 구속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남들을 적폐로 몰았지만 스스로 적폐였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이때부터 적폐라는 말이 사라졌다.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이상 자기들이 말하는 적폐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러 번 말한 바 있지만, 적폐 청산이란 과거와의 싸움이 아니다. 바로 현재, 즉 나와의 싸움이다. 이전 정부에서 어떤 폐습이 쌓여왔건 내가 안 하면 더이상 쌓일 일이 없는 것이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영원히 청산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계속 어질러가면서 청소를 한들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겠나 말이다.
 
앙시앙 레짐을 해소하는데 혁명이 큰 역할을 했지만, 혁명을 완성한 것은 로베스피에르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공포정치는 반동 쿠데타를 초래했을 뿐이다. 그가 망칠 뻔한 혁명을 완수한 것은 민중, 시민들이었다. 한두 번은 속을 수 있어도, 결국은 진실을 찾아내고야 마는 국민인 것이다. 가짜뉴스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지만, 촛불 혁명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현 정부가 귀담아들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적폐 청산을 말했지만…
현 정부가 ‘적폐 청산’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그것을 언급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도 ‘세계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만큼 적폐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3년 김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지금 우리는 안으로 30년의 적폐를 씻어내고 국제화·개방화·세계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적폐 청산의 구체적 목표가 있었다. “누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더 공동의 선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누가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지를 놓고 여야가 경쟁하는 것”이었다.
 
따져보면 적폐 청산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졌던 시기도 바로 그때였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으며, 무기명 또는 차명 거래를 금지한 혁명적인 ‘금융실명제’가 실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1999년 2월 열린 ‘제2의 건국 한마음 다짐 대회’에서 ▶건국 50년간의 적폐 청산 ▶국정의 총체적 개혁 ▶지식정보·문화관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발전 이룩을 제2건국운동의 목표로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였던 2008년 말 적폐를 언급했다. 그에게 적폐 청산이란 곧 정권 교체를 의미했다. 그는 대선 유세에서 “지난 10년 동안 아마추어 정권이 쌓아온 적폐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 의해 적폐 그 자체로 인식된 박근혜 대통령도 빠지지 않고 적폐를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적폐 청산’을 먼저 말하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를 대신할 다른 용어를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적폐 청산’을 사용했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