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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금소법 시행…은행서 펀드 가입 때 무조건 녹취한다?

중앙일보 2021.03.03 17:45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이 상담하는 모습. 우리은행.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이 상담하는 모습. 우리은행.

앞으로 우리은행에서 펀드 등 비예금상품에 가입하려면 영업점 직원의 설명과 함께 고객이 가입에 동의했다는 목소리를 녹음한다. 신한은행도 올해부터 펀드는 물론 금 통장(골드리슈)까지 상담 내용을 녹음하는 녹취 의무 대상을 확대했다.  
 
‘제2의 라임 사태’를 막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의 도입을 앞두고 나타난 변화다. 오는 25일 도입되는 금소법에 따라 앞으로 은행들은 금융 상품을 판매하면서 6대 판매규제(적합성ㆍ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행위ㆍ부당권유ㆍ과장광고 금지)를 따라야 한다. 규제를 어기고 상품을 팔면 판매액의 최대 50% 과징금을 내야 한다. 판매한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 고지서를 받는다. 영업 규제를 강화한 동시에 징벌적 과징금을 도입해 판매사 책임을 강조했다. 
 
소비자의 권리는 한층 강화된다. 모든 금융 상품에 대해 청약 철회권과 위법 계약해지권을 준다. 청약 철회는 대출성 상품에 대해서는 14일 안에 가능하다. 보험 등 보장성 상품은 보름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투자상품도 청약철회권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주가연계펀드(ELF)처럼 복잡한 투자 구조를 갖춘 금융 상품에 한해서 일주일 안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또 금융사가 금소법을 위반했을 때는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 또는 위법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소법과 관련해 은행이 가장 신경 쓰는 규정은 ‘손해배상 입증책임’이다. 소비자가 고난도상품(원금 손실 가능성 20% 넘는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투자한 뒤 손실을 본 뒤,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금융사가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은행들은 최근 전국 영업점 창구의 녹음 시스템을 점검하거나 새로 설치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을 계기로 녹취 대상자와 상품 범위가 넓어져서다. 그동안은 고난도 상품이나 고령 투자자에 한해 상담 내역을 녹음했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하나은행은 올 초부터 펀드 등 비예금상품으로 상품 범위를 확대해 녹취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올해부터 투자상품 녹취대상을 점차 확대했다. 현재 펀드는 물론 골드리슈와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까지 녹취를 의무화했다. 대상은 만65세 이상과 부적합투자자, 고난도 금융상품 가입자 등이다.  
 
우리은행은 오는 25일부터 펀드 등 비예금상품 판매 시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녹취를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정확한 상품 설명을 위해 직원이 읽는 대신 녹음된 기계음(자동리딩방식ㆍTTS)을 틀 계획이다.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한 각종 시스템 구축에도 분주하다. 예컨대 국민은행은 대출 상품을 판매할 경우 상품설명서와 약관 등 필수 서류를 휴대전화로 손쉽게 확인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고객이 문자 메시지로 온 인터넷 주소(URL)를 접속하면 서류를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런 준비에도 은행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금소법 시행이 코앞인데 여전히 모호한 가이드라인이 많은 탓에 금융사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소법 규제 대상이 워낙 광범위해 금융당국에 확인한 뒤 다시 상품설명서나 내부 규정을 고치는 일이 잦다”며 “법 시행 전에 영업점에 정확한 영업 매뉴얼을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금소법 시행에 대비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적극 직원하겠다"며 "현재 금융사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 중이고 소비자 대상으로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업환경이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 투자성향을 파악하고, 판매 과정을 녹음하다 보면 펀드 하나 가입하는 데 최소 30~40분 걸릴 것”이라며 “까다로운 판매 절차에 영업점 직원은 물론 고객도 투자 상품을 주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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