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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양회 '애국자 홍콩 통치' 추진…민주 선거제 무력화하나

중앙일보 2021.03.03 15:55
지난 2019년 6월 15일 홍콩섬 센트럴 일대 도심 거리를 가득 메운 200만 인파를 찍은 항공 사진. 범죄인 인도 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의 시위 이후 중국 당국은 홍콩 국가안전법을 시행한 데 이어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빈과일보 캡처]

지난 2019년 6월 15일 홍콩섬 센트럴 일대 도심 거리를 가득 메운 200만 인파를 찍은 항공 사진. 범죄인 인도 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의 시위 이후 중국 당국은 홍콩 국가안전법을 시행한 데 이어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빈과일보 캡처]

내일 개막하는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주요 화두로 홍콩 선거제 개편이 부상했다. 
 

시진핑 주석 언급 후 홍콩 선거제 개편 속도
샤바오룽 “홍콩 특색의 민주 선거제도 필요”
“사회주의 체제 전복 노리는 극렬분자 배제”
내일 개막 양회서 개편안 통과 여부 주목

개편의 핵심은 중국에 저항하는 '반체제 인사'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1997년 홍콩을 반환받을 당시 약속한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港人治港·항인치항)’원칙은 사실상 폐기하고 중국에 우호적인 인사들로만 행정기구와 의회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구상은 지난 1월2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애국자에 의한 홍콩 통치"(愛國者治港·애국자치항)”를 언급하며 구체화했다. 시 주석은 이날 캐리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의 화상 연례 업무보고를 받고 “반드시 ‘애국자치항’을 견지하라”며 “이는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이익에 관련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홍콩 선거제 개편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베이징 양회에 참석하는 홍콩 전인대 대표들은 반체제 인사의 배제를 위한 입후보자격심사, 행정장관 선거위원회 구성, 입법회 선거구 및 비례대표제 변경, 직선제 개편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3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양회에서 ‘홍콩 국가 안전법’이 전광석화같이 통과됐던 것과 같이 올해 양회에서 홍콩판 ‘애국자법’이 제시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같은 발 빠른 움직임엔 오는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전국적인 경축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9월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의회격) 선거가 재를 뿌리면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선 건 샤바오룽(夏寶龍·69)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베이징에서 홍콩·마카오를 화상 연결해 열린 “‘일국양제’ 제도 완비와 ‘애국자 치항’ 근본원칙 실천”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홍콩 특색의 민주 선거제도"를 주창했다. 샤 주임의 이날 연설 전문은 1일 출판된 홍콩의 『바우히니아(紫荊)』 잡지를 통해 뒤늦게 공개됐다. 
 
시진핑의 지방 측근 그룹을 일컫는 ‘즈장신군(之江新軍)’의 핵심인물인 샤바오룽 주임은 2018년 3월 정협 부주석으로 2선 후퇴했다가 지난해 2월 13일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으로 일선에 복귀했다. 현지에선 과거 영국에서 파견했던 홍콩 총독에 비유되기도 한다.
 
샤 주임은 선거제 개편의 명분으로 “신발이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자기가 신어봐야 안다”는 이른바 '신발론'을 펼쳤다. 그는 “사실상 어느 곳에 놓아도 모두 꼭 들어맞는 민주 선거제도 모델은 세상에 없다”며 “홍콩 선거제도는 절대 외국 선거제도를 간단히 옮겨오거나 모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광대한 홍콩 주민의 민주 권리와 근본 복지를 더 잘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샤 주임은 ‘애국자 홍콩 통치’ 규정을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등장했던 '패트리어트법'(애국자 법)에 필적하는 “홍콩판 애국자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참정권을 박탈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도 했다. 중국을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는 이른바 '반중 난항'(反中亂港) 분자라며 지미 라이 빈과일보 사주, 베니 타이(戴耀廷) 전 홍콩대 법대 교수, 조슈아 웡(黃之鋒) 전 데모시스트 당 비서장 등을 열거했다. 이들은 현재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심리를 받고 있다.
 
샤 주임은 “반중난항 분자는 입법회와 행정장관 선거위원회의 과반수 탈취가 목적”이라며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영도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전복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블루 리본(홍콩 정부 지지자)과 개는 출입 금지'라는 표어를 급진 분리주의 세력의 폐해가 구체화한 사례로 지적했다. 과거 상하이 외국인 조계에 붙었던 ‘중국인과 개는 출입 금지’를 원용한 이 구호는 지난해 홍콩 선수이부(深水埗) 구의원 리원하오(李文浩)가 사무실에 붙여 화제가 됐다.
 
샤 주임은 결론적으로 “홍콩 행정 기구에서 요직을 맡으려면 반드시 확고한 애국자이어야 하며, 현재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임무는 선거제의 완비”라면서 “홍콩 공직 인원에 대해 엄격한 심사와 점검을 요구하며 반중난항 분자를 쫓아내자는 목소리가 크다”고 선거제 개편 여론을 부추겼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중국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민주적인 선거제는 사실상 무력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 시사 평론가 류루이사오(劉銳紹)는 최근 명보에 실린 칼럼에서 “애국은 가짜 명제에 불과하고 당국의 ‘소용(所用) 여부’를 가를 뿐이며, 새로운 ‘애국자’ 표준은 가짜 애국만 고취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번 ‘애국자’ 표준은 ‘좌파가 아닌 척하는 좌파’의 기준일 뿐”이라며 “좌파의 근본적인 제도 파괴를 바로잡을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이는 민족의 비애”라고 한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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