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용현의 한반도평화워치] 북·중의 사이버 심리전에 한국은 무방비

중앙일보 2021.03.03 00:21 종합 25면 지면보기

국가 운명 좌우하는 사이버 여론 조작

한반도평화워치

한반도평화워치

지난해 10월 7일 BTS는 밴 플리트상 시상식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미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중국 네티즌들은 “BTS가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의 한국전쟁 명칭) 역사를 모욕했다”며 집단 사이버 테러를 가했다. BTS를 쓴 각종 홍보물과 앨범들이 한순간 사라졌다. 전 세계 언론들은 “BTS가 편협한 중국 민족주의의 희생양이 됐다”고 비판했다. SNS상에 중국 공산당을 나치 독일에 비유한 ‘차이나치(China+Nazi)’ 해시태그(#)가 퍼지자, BTS 비난 댓글이 사라졌다.
 

군의 정치 개입 막는다며 손 떼
사이버사령부 역할과 기능 축소
사이버 심리전에 당하지 않으려면
심리전 조직 복원과 임무 재개 필요

지난해 3월 1일엔 국내 여론 조작 세력이 중국인이라는 내용의 ‘차이나 게이트’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2014년 일본 방송에서 이들의 실체가 폭로돼 국제적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여론 조작 부대원은 2~3시간 만에 댓글 300개를 작성합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DB(개인정보)는 물론, 죽은 사람 것까지 갖고 있어요. 하루에 100위안(약 1만7000원)은 벌어요.” 내부 고발자의 증언이다. 게시 글 하나에 0.5위안을 받는다 하여 ‘우마오당’(五毛黨)이라고도 불린다. 인터넷 여론전에 맞서 실전 훈련까지 한다고 한다.
  
한국 사이버 공간은 북·중의 해방구  
 
북한도 3가지 방식으로 사이버 심리전을 전개한다. 먼저, 선전·선동 내용을 퍼 나르기를 해 남한 인터넷에 확산시킨다. 이때 IP(인터넷 프로토콜)를 제3국 국적으로 위장해 북한 소행의 흔적을 없앤다. 다음은 ‘1:9:90 법칙’으로 확산시킨다. 북한 요원 1명이 인터넷에 글을 게시하면 추종 세력 9명이 퍼 나르고, 이를 90명이 보게 해 일시에 퍼지도록 한다. 이 과정에 한국인 위장 아이디(ID)를 이용해 마치 우리 국민이 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지막으로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같은 SNS에 북한 자체 계정 1000여개를 활용해 대남 심리전을 확대·재생산한다. 특히 국내 정치에 개입해 선거 때 특정 정치 세력을 낙선시키고 그들이 원하는 후보 당선을 위해 여론 조작을 한다고 한다. ‘특정 정당 찍으면 전쟁 난다’는 유언비어를 확산시킨 사례도 있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0.1%의 ‘헤비 댓글러’에 의해 90%가 넘는 댓글이 생산된다. 가짜뉴스와 여론 조작에 치명적이다. 우리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했던 국내 여론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그것도 북한인 또는 중국인이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북한·중국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속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 위험한 것은 우리 국내 상황이다. 그동안 국방부·국가정보원의 사이버 심리전 조직이 북한·중국 등 외부 세력에 맞서왔지만, 이번 정부 들어 정치 개입 혐의로 재판받으면서 역할이 중단됐다. 미국 사이버사령부는 2018년 5월 4성 장군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로 승격돼 국방 네트워크 방호뿐 아니라 외부 세력의 여론 조작 차단에 이르기까지 국가 사이버 안보를 주도한다. 반면 한국 사이버사령부는 군의 정치 개입 방지라는 미명 아래 사이버 심리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그 기능마저 축소됐다. 국가 사이버 안보의 주도적 역할은커녕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 조직과 함께 정치적 감시 대상으로 전락했다.
 
외부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전 확보는 물론, 우리 국민 민심이 제3국의 여론 조작에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정치적 이유로 중단된 사이버 심리전 조직 복원과 함께 그 임무와 역할을 재개해야 한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위해 총성 없는 사이버 심리전이 은밀하게 진행 중이다. 피아 구분마저 불분명한 사이버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전투 중이던 국가 기관의 사이버 조직을 법정에 세우더니 심리전 임무마저 중단시켰다, 정치 개입,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는 이유다. 일탈 행위가 있었다면 책임은 묻되, 법과 제도를 개선하면 될 일이다. 국가가 부여한 임무까지 중단시킨 것은 자해 행위이자, 중국·북한에 여론 조작의 뒷문을 열어주는 꼴이다. 한국의 사이버 공간은 중국·북한의 ‘해방구’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다.
 
둘째, 민·관·군이 각자 영역별로 방어하는 국가 사이버안보 체계를, 통합된 합동 대응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민간 영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인터넷진흥원, 관은 국정원, 군은 국방부로 분리돼서는 효과적 대응이 불가능하다. 사이버 작전은 공격 주체 식별이 용이하지 않고 식별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짜뉴스나 유언비어로 남·남 갈등이 초래되고 민심에 반하는 여론 조작이 있어도 적시 대응이 어렵다. 합동 대응 체계를 갖추면 민·관·군 영역에서의 공격 정보(IP 주소), 악성 코드, 사용 전술, 경유지 등을 통합해 신속·정확한 공격 주체 식별이 가능해진다.
  
자유민주체제는 사이버 심리전 취약
 
셋째, ‘사이버 국경선’에서의 감시와 초동작전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군은 지상·해상·공중 국경선에서 철통 감시와 경계 작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 국경선은 무방비 상태다. 사이버 국경선이란 외국 인터넷이 국내로 들어오는 관문을 말한다. 이 인터넷 관문을 민·관·군 합동 대응 체계로 통제한다면 사이버 국경선 감시와 초동작전이 가능해진다. 해외로부터의 여론 조작 차단은 물론, 해킹에 의한 비밀 정보·자금 탈취 방지, 필요하면 접속 차단도 가능하다. 특히 공격 주체 식별과 해외 디도스(DDoS) 공격으로부터 국가 중요 시설들을 선제적으로 방호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약육강식의 시대에는 무력을 통해 상대를 속국으로 만들어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다. 지금은 무력 대신 사이버 심리전을 이용한다. 언론·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체제는 사이버 심리전의 표적이 되고 있다. 러시아·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국 이익과 체제 안전을 위해 사이버 심리전을 이용,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상대국 민심 왜곡은 물론, 정치적 갈등을 조장·확대하고 선거에 개입해 그들이 원하는 정권을 탄생시킨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정권 탄생의 청구서가 날아오면서 ‘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 국민의 관심과 철저한 감시·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여론 조작의 대명사, 중국 공산당 댓글 알바 ‘우마오당’
중국 ‘우마오당’은 전 세계 여론 조작의 대명사다. 우마오당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고용된 인터넷 여론조작단, 댓글 알바를 일컫는다. 이들은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댓글 한 개에 5마오(0.5위안, 약 85원)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5마오를 받는 무리’라는 뜻으로 우마오당이라 불리게 됐다. 지난해 4월 7마오로 인상된 뒤부턴 ‘치마오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중국 국내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는 타국에서도 선거 개입이나 갈등 유발 등 여론 조작을 벌인다고 한다.
 
2017년 하버드대 연구진은 빅 데이터 분석으로 우마오당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매년 4억8000만 개에 달하는 댓글을 생성해 여론 조작에 가담해 왔다. 대부분 중국 공직자·공산당원이며, 조선족과 같은 이민족, 유학생, 재소자들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중국 정부든, 국내 또는 해외 거주 중인 중국인이든, 그들 중 누군가에 의해 여론 조작이 이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내부 고발자의 폭로도 이어졌다. “이름만 쭉 적어서 보내면 그 이름에 맞게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만들어져서 와요. 이걸로 국내 포털사이트에 로그인하면 한국인 계정으로 댓글이 작성됩니다. 트위터 또는 텔레그램으로 지령을 받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면 ‘어디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그에 따라 해당 글을 추천·비추천하고, 테러한다든지 댓글을 올립니다. 우마오당은 중국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요. 한국이 전략적으로 되게 중요하잖아요. 중국 공산당이 한국을 가만둘 리 있겠어요? 이 문제를 밝히지 않으면 여론 조작으로 한국이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폭로하게 되었죠.”
 
여론 조작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민주체제를 지켜온 한국민은 사이버 여론 조작과 왜곡에 맞서야 한다. 여론 조작 의혹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자, 당신은 정말 한국인입니까?’ 묻고 싶다.
 
민심은 자유민주체제의 근간이요, 국민이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준엄한 수단이다. 제3국에 의해 민심이 조작·왜곡된다면 이는 국가 운명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이게 바로 ‘사이버 속국’이다. 여론 조작 의혹에 정치권의 이해가 개입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김용현 전 합참작전본부장·숭실대 일반대학원 초빙교수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