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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시사음식] 짜장면, 졸업·입학의 기쁨

중앙일보 2021.03.03 00:17 종합 26면 지면보기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입춘이 지나고 3월이 됐지만 코로나19로 봄 같은 봄을 느낄 수 없다. 졸업·입학의 즐거움으로 가족 간의 외식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몇 년간의 여러 조사에서 갈비와 짜장면이 졸업·입학 음식의 정상을 다퉈왔지만 올해는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에 학교 옆 식당들은 우울하고 가족들은 조촐한 모임 때문에 서글프다.
 
짜장면의 인기는 첫 등장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짜장면에 관한 첫 기록은 1934년 1월 1일자 잡지 ‘개벽’에 나오는 ‘청요리점에 들어가서 자장면 한 그릇을 사 먹고 소주 몇 잔을 마셨다’는 구절이다. 1936년 2월 16일자 동아일보에는 졸업 축사에 ‘우동 먹구 짜장면 먹구 식은 변또(도시락) 먹어가며 그대들을 가르쳤느니라’란 대목이 나온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짜장면은 한국 외식의 선두 주자 중 하나다. 쫄깃한 면발에 한국인의 기본 소스인 된장과 달달한 밀가루장이 더해진 춘장에 비벼 먹는데, 어린이에서 어르신까지 모두의 입맛에 달라붙는 음식이다. 짜장면은 1950년대에 이미 당국의 가격 승인을 받아야 하는 서민들의 외식 메뉴였고,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배달 음식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등 요리를 먹을 팔자가 못 되는’ 사람들은 짜장면을 탕수육과 함께 시켜 먹었고(1953년 3월 9일 경향신문)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배달해 먹었다.(1956년 8월 27일자 동아일보) 지금도 ‘배민트렌드 2020년’에 의하면 배달 중식의 1위는 짜장면이 차지하고 있다.
 
60년대 쌀 부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면서 짜장면은 ‘쌀을 대용할 수 있는 대용식’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하지만 70년대 밀의 가격이 오르면서 짜장면은 다소 값비싼 외식이 된다. 가격을 묶어두려는 정부와 올리려는 중국식당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 짜장면값 기습 인상과 정부의 세무조사가 반복됐다. 그래서 ‘휴일이면 가족들을 동네 짜장면집이라도 데리고 가는 가장이라야 구실을 제대로 하는 아버지로 여기는’(1981년 5월 11일 매일경제) 시대가 됐다. 83년 리스피아르 경제조사연구소의 한국인 식생활습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이 외식할 때 잘 먹는 음식은 남녀 모두 짜장면으로 나타났다.
 
짜장면은 70년~80년대에는 가격이 올라가면서 졸업이나 입학 같은 특별한 날 먹는 요리가 됐다. 가난했던 학생들은 ‘그 맛있다는 짜장면을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선생님이 사준 짜장면으로 처음 먹었고’ 돈이 없어 자식에게만 짜장면을 사 먹이고 자신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god의 ‘어머님께’, 1999년)라는 노래가 가난한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크게 히트했다.  
 
짜장면이 졸업·입학을 축하하는 음식으로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것은 달곰한 맛에 짜디짠 눈물의 기억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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