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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날아라! 비행소년

중앙일보 2021.03.03 00:13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요즘 서울 대치동의 일부 학부모 사이에선 ‘비행소년’이란 노래를 듣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노래는 2016년 음악 전문 채널에서 방영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처음 나왔다. 한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대치동에서, 래퍼가 부른 힙합 노래를, 일부이긴 하지만 학부모가 찾아서 듣는 이유는 뭘까.
 

대치동 학부모가 듣는 힙합노래
실패 속에도 결국 성공하길 기대
벤처 생태계도 실패 북돋아줘야
IT 창업자 잇단 기부가 밀알되길

대치동 학부모가 6년 전 힙합 노래를 소환한 건 감정이입 때문이다. ‘그날을 기억해/처음 집을 나와 성신여대/네 평짜리 방바닥엔 바퀴벌레/커핀 식었고 소화제를 또 씹었네/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아들 별일 없네’ 이렇게 시작한 이 노래는 래퍼의 자전적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다.
 
‘가족사진에 오려 붙인 아버지 사진/대환 없고 한숨 가득한 나의 좁은 집/조용히 신발만 대충 신고 뛰쳐나왔지…(중략)…자초한 길 끝까지 가야지/엄마 당신의 청춘을 내가 갚아줄 게 하나씩/애비 없는 자식이라며 욕먹었던 양아치/그 양아치가 TV에서 랩 하지 이렇게/나 이제 날아볼게’
 
부모 말 듣지 않고 사고만 치던 비행소년(非行少年)이 남이 알아주진 않지만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 결국 ‘뜨는(날아가는)’ 비행소년(飛行少年)이 된다는 이야기다.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 때문에 눈물을 훔치며 이 노래를 듣곤 한다는 학부모부터 어느 날 아이가 휴대전화로 보내준 이 노래를 우연히 듣고는 희망을 갖게 됐다는 ‘엄마’까지 듣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 부모의 바람은 하나다. 혹시 지금 아이가 방황하거나 성적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마음을 바로잡고 뜻한 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서소문 포럼 3/3

서소문 포럼 3/3

영상 채팅 앱 ‘아자르’를 운영하는 벤처기업 하이퍼커넥트의 창업자 안상일 대표도 어찌 보면 ‘비행소년’이다. 그는 최근 새로운 성공신화를 썼다. 이 회사의 지분 100%를 세계 최대의 데이팅 앱 업체인 미국의 매치그룹에 약 2조원에 팔기로 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조 단위 몸값을 받고 팔린 건 배달의민족(2019년) 이후 처음이다. 결과만 보면 대성공이다.
 
하지만 안 대표에겐 실패의 기억이 더 많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출신인 그는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꽃길’ 대신 고난의 길을 택했다. 2000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벤처 동아리에 들어가 창업의 꿈을 키웠다. 김밥 장사도 했다. 실전 경험을 위해서였다. 2002년 첫 창업에 나섰다. 사업 기획서를 써주고 정보기술(IT) 컨설팅하는 회사였다. 섣부른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2007년엔 서울대 사내벤처였던 검색기술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그의 표현대로 ‘꿈을 현실로 이뤄낼 역량이 부족’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고 투자자는 투자를 거뒀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결국 모든 재산을 팔아 직원 30여명의 마지막 월급을 주고 빈털터리가 됐다. 쓴맛의 여운은 길었다. “왜 남들처럼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업체, 사진 스튜디오 등…. 실적은 좋지 않았다.
 
2013년 대학 동기, 병역특례업체 동기와 함께 하이퍼커넥트를 창업했다. 이번엔 달랐다. 첫해부터 매출을 올렸다. 이용자도 급증했다. 실패 덕이다. 그동안 실패를 통해 ‘수익 모델이 없는 서비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를 실천했다. 결국 날아올랐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최근 직원과의 온라인 간담회에서 “스타트업이 진로의 옵션이 됐으면 좋겠다”며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가는 비중이 제일 큰데, 그러지 않고 다양한 구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청소년에게 중요한 건 이들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 울타리다. 요즘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실패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무모한 도전을 한다”며 손가락질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든 이들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없다면 사회의 전진은 더딜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가 실패를 용인하는 벤처 생태계를 외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한국은 창업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할 정도다. 최근 김범수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잇따라 기부 선언을 했다. 이들의 기부가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벤처 생태계를 싹틔우게 하는 밀알이 되길 기대한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미래의 비행소년(飛行少年)에게 박수를….
 
김창규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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