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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통령님, 이젠 너무 늦었잖아요

중앙일보 2021.03.03 00:09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1. 다음주면 동일본 대지진 발생 10주년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을 덮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는 1만5894명(일본 경찰청 집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미야기(宮城)현(9541명) 희생자 명단엔 재일한국인 채명신씨의 남편 아베 야스마사(阿部保昌)씨도 있다. 부부가 꾸리던 한국 식당을 지키려다 익사했다. 채씨가 고투 끝 재개업한 식당은 아사히(朝日)신문에도 감동 스토리로 소개됐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식당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이가 없었다. 일본 검색창엔 ‘폐업’ 두 글자가 떴다.
 
#2. 반세기 가까이 한국 그림책 작가를 일본에 소개해온 원로 출판인 호즈미 타모츠(穗積保)씨에게 『세계의 어린이책과 작가들』(한림출판사) 출간 기념 인터뷰를 제의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현재 일·한 관계를 고려하면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 두렵다”며 “양해를 부탁한다”는 정중한 답이 왔을뿐.
 
국내 정치를 위해 양국 정부가 서로를 악용하는 사이, 상호 국민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피해와 두려움은 재일 동포와 친한파 일본인이 감당할 몫으로 남았다.
 
노트북을 열며 3/3

노트북을 열며 3/3

문재인 대통령의 올 3·1절 기념사는 훌륭했다. 미래를 보며 역지사지하자는, 지극히 타당한 내용. 지난해에 이런 내용을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일본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중시했다면, 문 대통령의 7619자 기념사엔 지진 관련 추모 내용이 들어갔어야 했다. 지진은 일본에 현재진행형 상처다. 그러나 기념사 17.7%에 달하는 한·일 관계 언급 중 지진 관련 내용은 0자. 역지사지가 아쉽다.
 
후쿠시마(福島) 오염수 문제를 외교부를 통해 제기해오던 한국 정부가 갑자기 “도쿄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협력”을 언급한 배경도 뒷맛이 씁쓸하다. 2018년 평창올림픽이라는 남북관계 마법의 묘약을 잊을 수 없는 정부 아니던가. ‘도쿄 올림픽=마지막 지푸라기’라는 속마음이 읽힌다.
 
한·미·일 구도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막 들어섰다고 성급히 표변하는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지한파 언론인 사와다 가쓰미(澤田克己) 마이니치(每日)신문 전 서울지국장에게 소감을 물으니 “옳으신 말씀이지만 앞으로 실행이 더 중요하다”는 에두른 답이 왔다. 지한파조차 진정성을 100% 느끼지 못하는 상황인 셈.
 
문득 프랑스 가수 조르주 무스타키가 부른 샹송, ‘이젠 너무 늦었어(Il Est Trop Tard)’가 떠오른다. “서로 다퉜지만, 난 모르겠어.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얼마 안 남았지. (중략) 꿈꾸는 중에도 시간은 흘러갔어. 이젠 너무 늦었어.”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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