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성 감독은 스피드 축구로 ‘축구특별시’ 대전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사진 대전 하나시티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3/03/9adfa81c-68ee-49b5-9638-d5420a8d2d93.jpg)
이민성 감독은 스피드 축구로 ‘축구특별시’ 대전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사진 대전 하나시티즌]
데뷔전 승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코치 10년 만에 K리그2 사령탑
“90분 뛸 체력 안 되면 못 뛴다”
지옥 훈련에 식단까지 관리 효과
이 감독은 지난해까지 한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올림픽팀) 코치였다. 김학범 감독을 보좌해 한국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정상에 올려놓았다. 도쿄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대전으로부터 감독 자리를 제안받았다. 대전 구단은 팀의 주축인 젊은 선수들과 소통이 원활하고 성적을 낼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감독(당시 코치)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대전은 지난 시즌 하나금융그룹이 인수해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했다.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K리그1(1부) 승격에 실패했다. 이 감독은 “현역 은퇴 후 2010년부터 국내외 팀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왔다. 그 기간만 11년이다. 좋은 구단에서 감독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았다. 김학범 감독님도 ‘잘 해보라’며 응원해줬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대전 선수들과 첫 만남에서 “90분간 뛸 수 있는 체력이 안 되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전은 지난겨울 이른바 ‘지옥훈련’을 했다. 전술 훈련 외에도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다른 팀에선 보기 드문 식단 조절까지 진행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 있어 자극을 줄 겸 과제를 내줬다. 프로라면 자기 관리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한일전 일명 ‘도쿄 대첩’ 당시 이민성의 슈팅 장면. [사진 대한축구협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3/03/1c1341c5-1f7a-4323-8a9f-2e05dd64f139.jpg)
1997년 한일전 일명 ‘도쿄 대첩’ 당시 이민성의 슈팅 장면. [사진 대한축구협회]
노력의 결과는 시즌 개막전부터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전의 득점(후반 35분, 43분)은 모두 후반 막판 나왔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덕분이다. 이 감독은 “체력에 스피드를 더한 빠른 축구를 하고 싶다. 내가 뛰던 1990년대 한국 축구는 정말 빨랐다. 관중도 몰렸다. 공·수 전환 속도에서 K리그 최고가 되는 게 목표다. 시행착오가 있을 거다. 그게 ‘초보 감독’의 특권 아닌가”라며 웃었다.
이 감독은 한·일전을 통틀어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도쿄 대첩’ 결승골의 주인공이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 0-1로 끌려가다 후반 38분 서정원의 극적 헤딩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민성은 무승부로 끝날 것 같던 후반 41분 대포알 같은 왼발 중거리 슛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 감독은 “‘도쿄 대첩’ 얘기를 들을 때마다 쑥스럽다. 태극마크를 달고 두 골밖에 못 넣었는데, 그중 한 골이 그 골이 된 거다. 친한 선수들은 ‘한·일전 골 하나로 대표 생활을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연장한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송재익 캐스터가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고 외쳤다. 후지산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승격의 벽을 무너뜨리고 1부리그로 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