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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성 “후지산처럼 1부 리그 벽을 와르르”

중앙일보 2021.03.03 00:04 경제 6면 지면보기
이민성 감독은 스피드 축구로 ‘축구특별시’ 대전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사진 대전 하나시티즌]

이민성 감독은 스피드 축구로 ‘축구특별시’ 대전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사진 대전 하나시티즌]

“선수, 코치 시절에 피 말리는 승부를 워낙 많이 경험해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90분 내내 마음 졸였습니다. 감독의 부담감은 또 다르네요.”
 

데뷔전 승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코치 10년 만에 K리그2 사령탑
“90분 뛸 체력 안 되면 못 뛴다”
지옥 훈련에 식단까지 관리 효과

프로축구 대전 하나시티즌 이민성(48) 신임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은 1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시즌 K리그2(2부) 개막전 원정경기에서 부천FC를 2-1로 물리쳤다. 이 경기는 이 감독의 사령탑 데뷔전이었다. 페널티킥을 실축한 대전 에디뉴가 후반 43분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 감독은 “에디뉴가 페널티킥을 못 넣었을 대는 끝나고 밥도 못 먹게 하려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골을 넣어주니, 갑자기 예뻐 보였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감독 신고식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감독은 지난해까지 한국 23세 이하(U-23) 대표팀(올림픽팀) 코치였다. 김학범 감독을 보좌해 한국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정상에 올려놓았다. 도쿄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대전으로부터 감독 자리를 제안받았다. 대전 구단은 팀의 주축인 젊은 선수들과 소통이 원활하고 성적을 낼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감독(당시 코치)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대전은 지난 시즌 하나금융그룹이 인수해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했다.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K리그1(1부) 승격에 실패했다. 이 감독은 “현역 은퇴 후 2010년부터 국내외 팀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왔다. 그 기간만 11년이다. 좋은 구단에서 감독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았다. 김학범 감독님도 ‘잘 해보라’며 응원해줬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대전 선수들과 첫 만남에서 “90분간 뛸 수 있는 체력이 안 되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전은 지난겨울 이른바 ‘지옥훈련’을 했다. 전술 훈련 외에도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다른 팀에선 보기 드문 식단 조절까지 진행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 있어 자극을 줄 겸 과제를 내줬다. 프로라면 자기 관리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한일전 일명 ‘도쿄 대첩’ 당시 이민성의 슈팅 장면. [사진 대한축구협회]

1997년 한일전 일명 ‘도쿄 대첩’ 당시 이민성의 슈팅 장면. [사진 대한축구협회]

무작정 밀어붙인 건 아니다. 이 감독은 “U-23 팀을 경험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심리를 배워갔다. 전에는 감독, 코치가 시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했다. 요즘 선수들은 본인이 수긍하지 못하면 따라오지 않는다. ‘좋은 기술이 있고 결정적인 찬스를 맞아도 체력이 없으면 쓸모없다’고 이해시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노력의 결과는 시즌 개막전부터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전의 득점(후반 35분, 43분)은 모두 후반 막판 나왔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덕분이다. 이 감독은 “체력에 스피드를 더한 빠른 축구를 하고 싶다. 내가 뛰던 1990년대 한국 축구는 정말 빨랐다. 관중도 몰렸다. 공·수 전환 속도에서 K리그 최고가 되는 게 목표다. 시행착오가 있을 거다. 그게 ‘초보 감독’의 특권 아닌가”라며 웃었다.
 
이 감독은 한·일전을 통틀어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도쿄 대첩’ 결승골의 주인공이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 0-1로 끌려가다 후반 38분 서정원의 극적 헤딩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민성은 무승부로 끝날 것 같던 후반 41분 대포알 같은 왼발 중거리 슛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 감독은 “‘도쿄 대첩’ 얘기를 들을 때마다 쑥스럽다. 태극마크를 달고 두 골밖에 못 넣었는데, 그중 한 골이 그 골이 된 거다. 친한 선수들은 ‘한·일전 골 하나로 대표 생활을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연장한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송재익 캐스터가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고 외쳤다. 후지산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승격의 벽을 무너뜨리고 1부리그로 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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