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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용의 전사 ‘라야’…디즈니, 동남아까지 품었다

중앙일보 2021.03.03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동남아시아 문화에 바탕을 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스투파(탑)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쓴 주인공 라야.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동남아시아 문화에 바탕을 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스투파(탑)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쓴 주인공 라야.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월드’가 이번엔 동남아시아로 뻗는다. 4일 개봉하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59번째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하 ‘라야’)은 등장인물부터 풍광, 식문화,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습관까지 모두 동남아적 색채가 물씬하다. 전설의 왕국 쿠만드라를 화합시키고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주인공 라야는 갈색 피부에 긴 검은 머리, 흑갈색 눈동자의 소유자. ‘알라딘’의 자스민(아랍계), ‘포카혼타스’(미국 원주민), ‘뮬란’(중국계),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아프리카계), 그리고 ‘모아나’(폴리네이시안계)까지 그간 디즈니의 역사를 바꿔온 비백인 여주인공의 계보를 잇는다.
 

디즈니 스튜디오 새 애니 내일 개봉
제작팀, 라오스·태국 등 7개국 답사
아시아계 직원들에 “정서 맞나” 확인
귀에 쏙 박히는 OST 없어 아쉬워

“라야도 (‘겨울왕국’의 엘사 같은) 공주 캐릭터, 족장의 딸이다. 다만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서 대접받지 못한 공주라고 할까(웃음). 라이벌인 나마리도 족장의 딸이자 강인한 전사다. 이들의 무술도 동남아의 무에타이와 킥복싱 등을 연구해 반영했다.”
 
그를 돕는 전설의 용 시수.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그를 돕는 전설의 용 시수.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디즈니 애니메이터 최영재씨의 설명이다. 앞서 ‘겨울왕국’ ‘모아나’ ‘주토피아’ 등을 작업했던 최씨는 이번 ‘라야’에 참여한 450명의 디즈니 아티스트 중 한명이다. ‘라야’엔 인간 캐릭터 1만8987명과 그 외 캐릭터 3만5749개가 등장한다. 이들뿐 아니라 물의 신 ‘나가’의 전설에서 영향받은 스토리까지 모두 동남아 문화에 바탕을 뒀다.
 
“사전제작단계에서 디즈니 파견 팀이 라오스·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캄보디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7개국을 직접 체험하고 현지 인류학자·건축가·음악가 등의 자문을 충실히 구했다. 감독이 디즈니 아티스트 가운데 아시아계를 모아놓고 ‘정서가 제대로 표현됐나’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괴력의 거인 텅.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괴력의 거인 텅.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라야’는 ‘빅 히어로’를 통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돈 홀 감독과 신예 감독 카를로스 로페즈 에스트라다가 공동연출했다. 베트남계 미국인 퀴 응우옌이 아델 림과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퀴 응우옌은 미국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남부 아칸소에서 자라면서 나처럼 생긴 사람을 아무도 못 봤다. 비슷한 얼굴을 스크린에서 본 건 베트남전 영화뿐이었고 그나마 조연이거나 희생자였다”면서 “동남아 문화를 찬미하는 이야기를 통해 내 아이들이 힘을 얻게 될 거란 생각에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변화시켜야 했다”고 돌아봤다.
 
주인공 라야(목소리 켈리 마리 트란)가 쓰고 다니는 모자부터 상징적이다. 동남아 사원에서 흔히 발견되는 스투파(탑)를 오마주했다. 다섯 개의 땅(심장·송곳니·발톱·척추·꼬리)을 종횡무진 질주하는 여전사답게 치마 한 번 안 입고 통바지 차림 일색이다. 디즈니 측은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사바이 상의와 삼포트 바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의 바틱을 연상시키는 패턴 의상 등 원색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라야의 조력자이자 어딘가 허술해서 매력적인 전설의 용 시수(목소리 아콰피나)의 신비로운 푸른 갈기는 ‘겨울왕국’의 색감을 뿜어낸다.
 
디즈니 애니메이터 최영재씨.

디즈니 애니메이터 최영재씨.

최씨는 “1년 픽사 근무하고 디즈니에서 13년간 일했는데, 2D 때든 3D에 와서든 디즈니는 늘 최첨단 툴(tool)을 업데이트해서 아티스트들이 준비한 것을 최대한 펼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라야’에서 그가 손에 꼽는 결과물은 후반부 라야와 나마리의 일대일 격투 장면. “백플립(뒤로 넘기)을 두 번 하고 단상에 올라설 때 양손을 짚는 대신 칼끝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손으로 다시 공격하는 장면이 있다. 배경에 하늘하늘 움직이는 천을 포함해 동작의 섬세함이 잘 구현된 것 같다(웃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백인 여주인공. 뮬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백인 여주인공. 뮬란.

‘라야’의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공벌레 모양 캐릭터 ‘툭툭’ 등 어린이 눈높이에서 빠져들 만한 볼거리가 많다. 다만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 여주인공의 모험담이라는 기본 줄거리가 낯익고 여러 부족 간의 ‘신뢰’와 ‘화합’을 강조하는 결말은 디즈니 전작 ‘겨울왕국2’ 느낌마저 난다. ‘알라딘’이나 ‘라이온 킹’ 같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아닌 탓에 기억에 남는 OST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백인 여주인공. 포카 혼타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백인 여주인공. 포카 혼타스.

“코로나19 때문에 450명 아티스트가 뿔뿔이 흩어져 작업했는데, 다행히 디즈니는 이미 재택근무를 옵션으로 하고 있어서 빠른 전환이 가능했다. 개봉도 특수상황에 맞춰서 디즈니플러스와 동시에 극장 공개한다. 성큼 다가온 미래를 실감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백인 여주인공. 모아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비백인 여주인공. 모아나.

‘라야’는 극장 외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디즈니플러스로도 유료 공개(30달러 추가)한다. 이미 9500만 구독자를 확보한 디즈니플러스는 지난 2월 23일 유럽,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싱가포르에 새로 진출했다. 올해 안에 한국에도 온다.
 
향후 비즈니스 축을 OTT 서비스로 옮긴다고 선언한 디즈니는 더 넓어진 소비 시장에 맞춰 다채로운 비백인 캐릭터를 늘려갈 계획이다. 지난해 투자자의 날에 공개한 바에 따르면 올해 공개될 극장용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라틴 아메리카가 무대다. 아프리카 코믹스 회사 쿠갈리와 협업하는 ‘이와주’, 그리고 ‘공주와 개구리’(2009)의 속편 격이 될 ‘티아나’는 흑인 주인공들을 앞세운 디즈니플러스용 시리즈다. 남태평양 배경의 ‘모아나’ 역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가 예정돼 있다. 흑인 가수 할리 베일리가 주인공을 맡은 실사영화 ‘인어공주’도 제작 중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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