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냉장고 탄생 반세기, 잃어버린 전통 식재료 저장 기술

중앙일보 2021.03.02 10:00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21)

 
“우리는 왜 꽉 찬 냉장고를 보면서도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할까?”
 
냉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책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권 모두 저자가 일본인이다. 먼저, 처음 소개할 책은 일본 아사히신문 출판부에서 발행한 『식품 보존 방법』이다. 한글 번역본은 성안당에서 2016년 나왔다. 도쿄대학교 농업대학의 도쿠에 지요코 교수가 감수한 글이다. 이 책은 식품 보존의 기본(개설), 채소·과일의 보존법, 육류·어패류의 보존법, 달걀·유제품·콩 제품·가공품의 보존법, 주식(쌀, 잡곡, 밥, 면류 등) 및 기타 식품의 보존법, 이렇게 5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 『식품 보존 방법』 표지. [사진 성안당]

도서 『식품 보존 방법』 표지. [사진 성안당]

 
이 책에 의하면 식품 보관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보관 방법은 다섯 가지이다. 상온에 보존하기, 냉장 보존하기, 냉동 보존하기, 말리기, 절이기이다. 물론 재료마다 적합한 보존법을 알아둬야 한다. 그래서 무려 175가지의 식재료의 보관 방법에 관한 상세한 기술을 할애하고 있다. 마치 백과사전처럼 구성된 글이다.
 
예를 들어, 두부는 다음과 같이 보존해야 한다. 냉장의 경우는 5일까지 보존할 수 있다. ①요리하고 남은 두부는 팩의 물을 버리고, 보존 용기에 옮겨 깨끗한 물이 잠기게 넣는다. ②물을 매일 갈아준다. 차갑고 깨끗한 물을 사용한다(소금을 첨가하기도 함). 매일 물을 갈아주는 것이 오래 가는 비결이다.
 
냉동의 경우는 무려 1개월까지 보존할 수 있다. ①프라이팬에 물기를 짠 두부를 넣고 가열해 물기를 없앤다. ②조미료로 맛을 낸다. ③식힌 다음 냉동용 지퍼백에 넣는다. 평평하게 펴 냉동 보관한다.
 
두부 보관법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아내에게 점수를 땄을 것이다. 귀찮음이 항상 문제였다. 사용하고 남은 두부를 팩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아내에게 혼나고 말았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부엌 필수도서로 신혼 부부 선물로 강력 추천한다고 홍보한다. 마치 나와 같이 어리숙한 사람을 겨냥하고 만든 책과 같다. 그동안 마트에서 구매한 재료는 무조건 냉장고로 넣는 것이 마음 편했던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채소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 자료 =『식품 보존 방법』, 27쪽 참조.

채소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 자료 =『식품 보존 방법』, 27쪽 참조.

 
이 책을 읽으면 식재료 보관에 관한 다양한 꿀팁을 익힐 수 있다. 이를테면, 고기와 생선류를 오래 보존하려면 일반 용기보다는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 쟁반(금속 용기)에 담아 보냉제를 함께 올려놓으면 좋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급속 냉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비닐봉지나, 키친타월, 신문지, 랩, 밀폐용기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물론 편리하다는 장점은 있겠으나, 환경도 함께 고려해야 해 대체제나 친환경 포장법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냉장고 정리술』이다. 한글 번역본은 중앙북스에서 2013년 발간됐다. 저자는 일본 요리 연구가인 시마모토 미유키이다. 이 책의 구성은 공간별 냉장고 수납방법, 낭비를 줄이는 식재료 보관방법, 남은 식재료를 활용한 아이디어 레시피 이렇게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찬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투명 보관 용기를 사용하기, 냉장실에 여유가 공간이 없을 때는 2단식 수납랙을 활용하기, 고기나 생선 등을 자연 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기, 트레이를 이용해 저온냉장실의 영역을 분리해서 쓰기, 채소실 바닥에는 신문지를 깔아두기, 쓰고 남은 채소는 한 곳의 트레이에 모아 놓기 등 냉장고 수납방법의 팁을 공간별로 제시하고 있다. 본문의 대부분은 자주 사용하는 데일리 식재료 93가지의 보관방법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다.
 
도서 『냉장고정리술』 표지. [사진 중앙books]

도서 『냉장고정리술』 표지. [사진 중앙books]

 
이러한 냉장고 활용법에 관한 책이 등장했다는 건 냉장고가 생기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식품저장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한 결과였다. 부엌으로부터의 자유! 식자재마다 고유의 성질을 파악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저장하는 작업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만능해결사 냉장고가 생겼는데 번거롭게 작업할 필요가 있겠는가.
 
돌이켜 보면 우리 어머니들의 손길은 항상 분주했다. 햇볕이 드는 날에는 바닥에다 멍석을 펼쳐 놓고, 빨간 고추·호박·무말랭이·고사리와 같은 산나물을 널어 말렸다. 태양의 에너지를 담아 몸속에 양기를 유지하고자 했던 선현의 지혜다. 처마 밑에는 곶감·시래기·메주를 매달아 놓고 말렸으며, 바람이 잘 들고 서늘한 곳에서는 양파나 마늘 같은 것들을 쭉 매달아 놓았고, 콩·팥·깨 등을 털어 낱알을 일구기도 했다. 날곡식이나 씨앗은 항아리에 보관했다.
 
장독대에는 곡식 외에 간장, 된장, 고추장 등 각종 장 수십 개는 기본으로 담갔다. 많은 장독을 사용하려면 깨끗하게 씻어야 했는데, 장독 닦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전통 된장의 종류만도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막된장, 토장, 막장, 담북장, 즙장, 생황장, 청태장, 팥장, 청국장, 집장, 두부장, 비지장, 무장 등 다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갖가지 장을 모두 담그고 나서도 일은 계속되었다. 장을 맛있게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낮 시간을 이용해 뚜껑을 열고 햇볕을 쫴줘야 했다. 발효와 살균 작업이다. 이때 날벌레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헝겊이나 촘촘한 망을 씌웠다.
 
냉장고의 탄생으로 인류가 어느 정도의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간편하고 편리했다. 재료마다 복잡한 보존방법을 더 이상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 손 많이 가는 번거로운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우리는 냉장고 탄생 반세기 만에 조상으로부터 수천 년간 내려오던 식재료 보존 기술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러한 책을 접하고는 “조상들이 이렇게 지혜로웠구나”하고 감탄한다. 책의 내용은 사실 특별한 건 없다. 예전부터 내려오던 민속지식을 바탕으로 식품 보관법을 현대에 맞게 응용하고 과학적인 설명을 추가했을 뿐이다. 씁쓸한 사실이지만, 뭐든지 잃어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아는 법이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심효윤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필진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 아시아 지역의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관찰한다. 부엌과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냉장고 프로젝트>와 전통지식 및 무형문화유산을 기록하는 <위대한 유산 아시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