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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블랙아웃에도 홀로 불밝힌 집, 비결은 ESS

중앙일보 2021.03.02 00:04 경제 4면 지면보기
미국 텍사스에 찾아온 겨울폭풍으로 대규모 블랙아웃이 발생했지만 가정용 ESS를 설치한 주택은 정전을 피할 수 있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미국 텍사스에 찾아온 겨울폭풍으로 대규모 블랙아웃이 발생했지만 가정용 ESS를 설치한 주택은 정전을 피할 수 있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최근 기록적 한파로 ‘블랙아웃(대정전)’ 사태를 빚은 미국 텍사스 주에서 평범한 집 한 채가 화제가 됐다. 암흑으로 변한 주택가에서 유독 한 집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주택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한 주택이었다. 전력을 저장해 놓는 ESS로 블랙아웃을 이겨낸 13초가량의 짧은 영상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했고, 외신은 겨울 폭풍 속 ESS 활약상을 연이어 보도했다. ESS와 연료전지 관련 주식도 크게 올랐다.
 

국내선 잇단 화재로 안전성 우려
정책 지원 끊기며 업계 고사 직전
“친환경 에너지에 필수적인 장치”

글로벌 ESS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ESS 시장 규모는 2018년 11.6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86.9GWh로 연평균 3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 ESS 업계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발주가 끊기면서 고사 직전이다. ESS 사업을 하는 한 대기업 영업팀장은 “발주량만 놓고 보면 ESS 산업이 태동하던 2014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며 “산업 기반이 오늘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소기업은 사정이 더 나쁘다. ESS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대표는 “재고는 쌓여있지만, 발주가 없어 회사 운영 자금도 동이 난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ESS는 2019년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도 유력 산업군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ESS 사업장에서 30건 가까운 화재가 이어지면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했다. 이후 정부는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두 차례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조사에도 정부는 화재 원인을 명쾌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ESS 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은 끊어졌다. 예산 지원은 일몰제를 이유로 연장되지 않았다. 한창 성장하던 산업이 정부의 소극적인 행정으로 멈춰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SS 업계는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30여개 중소기업이 참여한 한국ESS협회는 지난달 20일 창립총회를 열고 정부에 산업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협회는 선언문에서 “(ESS 업계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항할 것”이라며 “정부가 ESS 우대 정책으로 유혹한 뒤 화재 위험을 빌미로 찬밥 대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문승일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ESS는 필요가 아니라 필수”라며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힘을 주면서 ESS를 포기한 건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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