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친엄마는 몸이 불편한 거야" 은지가 알아버렸다

중앙일보 2021.03.01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3)

 
“우리 엄마는 스물일곱 살이야!”
은지는 친엄마를 만나고 온 뒤로 계속 친엄마 이야기를 했다. 머리 모양이 어땠는지, 마스크를 벗으면 이빨이 어떻게 생겼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는 모습도 어쩜 그렇게 친엄마를 닮았는지 천륜은 어길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은지도, 친엄마도 천륜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 사이에 ‘위탁부모’라는 이름으로 내가 있다. 위탁부모가 되기 전엔 내 위치를 잘 몰랐다. 그저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를 우리 집에서 돌봐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는 요즘, 위탁부모는 천륜을 이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늘이 맺어준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이에서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사람 말이다.
친엄마 주려고 은지가 만든 책. [사진 배은희]

친엄마 주려고 은지가 만든 책. [사진 배은희]

 
“은지야! 그런데 000엄마(친엄마)한테, 왜 400원을 드렸어?” 은지는 친엄마를 만난 날,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탈탈 털어서 친엄마에게 줬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은지는 계속 주려고 했다. 할 수 없이 동전을 받은 친엄마는 다시 눈가가 빨개졌다.
“000엄마는 돈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은지는 느꼈나 보다. 웬만해선 자기 용돈을 안 쓰는데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탈탈 털어서 친엄마에게 준 걸 보면. 은지는 그 후로도 뭔가 예쁜 게 있으면 따로 모으고 있다. 친엄마에게 받은 종이가방에 연필 한 자루, 레고, 색종이로 만든 편지를 모아두고 있다.
 
요즘은 두 엄마를 비교하기도 한다. 배은희 엄마는 아파트에 사는데, 000엄마는 왜 집이 아닌 커다란 건물에 살고 있냐고. 배은희 엄마는 운전을 하는데, 000엄마는 왜 운전을 못 하냐고 물어본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다 다르니까!”
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또 물어본다.
“그런데, 000엄마는 왜 그런 곳에서 살아요? 집이 아니잖아요?”
 
친엄마 만나면 주겠다고 은지가 써 놓은 색종이 편지.

친엄마 만나면 주겠다고 은지가 써 놓은 색종이 편지.

 
순간 놀랐다. 이제 더는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은지는 비교하고 추론하면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맞춰가는 것 같다. 나는 은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우물처럼 들여다보며 다시 설명했다.
 
“은지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잖아?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 000엄마는 몸 중에서 생각주머니가 불편한 거야. ×××은(장애인 시설) 생각주머니가 불편한 분들이 사는 곳이야. 000엄마는 은지를 너무 너무 사랑하지만, 은지를 키울 수가 없는 거야.”
“와! 대박. 그럼, 000엄마는 장애인이에요?”
 
여덟 살 은지는 단번에 정리해버렸다. 내가 더 해줄 말이 없었다. 이젠 은지가 이해한 만큼 스스로 소화해야 할 것 같았다. 은지를 살피면서 다음 반응을 기다리는데, 은지는 아무렇지 않게 툭 한마디를 뱉었다.
“아, 그렇구나!”
 
친엄마에게 받은 종이가방에 은지가 넣어 둔 물건들.

친엄마에게 받은 종이가방에 은지가 넣어 둔 물건들.

 
은지는 낙심하지도 않았고, 통곡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번 달라지겠지만, 부디 은지가 지금처럼만 자라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정체성을 건강하게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나는 은지 옆에서 계속 설명해 주고, 상처받지 않게 안아줄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내게 맡긴 역할이다. 은지가 상처받지 않도록,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도록, 우리의 천륜을 단단히 이어나갈 것이다. 은지의 삶을 축복하며, 은지의 성장을 기대한다.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기간 동안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은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되지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배은희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필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제주도에 사는 시인. 낮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색다른 동거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는 게 아니라, 작고 여린 아기와 하는 동거다. 우린 동거인이면서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가족’이다. 우리의 색다른 동거가 ‘사랑’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동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