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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인생 역전 꿈꾸는 필라델피아 이지태

중앙일보 2021.03.01 14:15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한 이지태. [사진 이지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한 이지태. [사진 이지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한 투수 이지태(20)가 야구 인생 역전을 꿈꾼다.
 
필라델피아가 최근 공개한 국제계약 선수 명단엔 포철고 출신 이지태가 포함됐다. 2020년 KBO리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그는 '재수'를 거쳐 미국에서 기회를 잡았다. 지난 1월 계약서에 사인하며 받은 계약금은 1만달러(약 1000만원). 특급 유망주는 물론 KBO리그 선수들보다 적다. 하지만 이지태는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지태의 장점은 단연 체격이다. 신장 189㎝, 체중 100㎏. 아버지 이정규(47)씨, 어머니 오기옥(46)씨 덕분이다. 그는 "아버지는 180㎝, 어머니도 165㎝로 키가 크시다"며 "웨이트트레이닝을 좋아한다. 코로나 19로 훈련을 제대로 못할 때도 거의 매일 했다.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날 때의 쾌감이 있다"고 했다. 최윤석 필라델피아 스카우트는 "좋은 체격, 최고 149㎞의 구속이 매력적이었다. 태도도 성실하다. 제구력을 가다듬으면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이지태의 야구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수원 출신인 그는 덕수중으로 전학해 서울고로 진학했다. 서울고엔 프로지명자만 6명이나 될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기회가 없었다. 결국 3학년 때 포철고로 전학했으나 프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지태는 "대학보다는 1년 뒤를 생각했다.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았을 때도 속상해하지 않았다. 자신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격려해 주신 덕분에 마음 편히 운동했다"고 했다. 이지태는 포기하지 않았다. 독립리그에 잠시 몸담기도 하는 등 다음 기회를 노렸다.
 
7월부터는 프리미어 베이스볼에서 훈련하며 프로의 꿈을 이어갔다. 그 곳엔 미국에서 야구를 하다 KBO리그에 지명된 이케빈 코치가 있다. 손승락, 김동호 코치도 그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다. 이지태는 "드라이브라인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많아 훈련하게 됐다. 이케빈 코치님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은사인 최덕현 감독의 경기상고에서도 훈련했다. 이지태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지태는 "감독님 덕분에 웨이트트레이닝의 즐거움을 배웠다. 사실 예전엔 '그냥 하는 거지'라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재밌게 하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그런 그에게 필라델피아가 손을 내밀었다. 이지태는 "코로나 19 여파로 국내 팀 테스트도 줄었다. 고교 때도 몇 개 미국 구단에서 관심을 주셨는데, 필라델피아에서 계약 제안을 해 너무 기뻤다"고 했다. 그는 "장재영, 나승엽 선수처럼 좋은 선수들은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나는 아니다. 프로 레벨에서 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했다. 그는 "구단과 영상 회의를 했는데 팜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설렌다"고 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한 포철고 출신 이지태. [사진 이지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한 포철고 출신 이지태. [사진 이지태]

 
한국에서 프로로 뛰던 선수들도 미국 생활은 쉽지 않다. 이지태는 "서울고에 다닐 때도, 포철고에서도 기숙사 생활을 했다. 미국에서도 혼자 지내는 건 어렵지 않다"며 "중학교 때 일본어 공부는 열심히 했고, 곧잘 했지만 영어를 솔직히 잘 하진 않는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필라델피아는 2001년 아마추어 선수로 이승학과 김일엽을 영입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지태는 포철고 시절 김일엽 코치로부터 배웠다. 이지태는 "코치님이 강하게 키우셨는데, 내가 속을 많이 썩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코치님 말씀이 맞았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난 운이 좋다. 김 코치님 뿐 아니라 최덕현 감독님 덕분에 경기상고에서도 훈련할 수 있었고, 프리미어 아카데미에선 손승락, 이케빈, 김동호 코치님을 만났다. 서울고 선배인 최현일 형(LA 다저스)과 아버님인 최승표 코치라운드 대표님에게도 조언을 많이 구했다. 이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필라델피아엔 2명의 수퍼스타가 있다. MVP 출신 브라이스 하퍼(29)와 MLB 최고 포수 J.T 리얼무토(30)다. 이지태는 "하퍼와 기회가 닿는다면 대화하고 싶다.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어떤 마인드로 그런 퍼포먼스를 내는지 궁금하다. 리얼무토가 공을 받게 되는 날이 오면 더 기쁠 것"이라고 했다.
 
이지태의 앞엔 꽃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길이 놓여 있다. 수십명의 유망주들과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두렵지 않고, 흥분된다"고 했다. 이지태는 "아직 마이너리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루키리그도 열릴 것이라고 들었다. 그때까진 국내에서 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남들보다 늦은 편이다. 5~6년 정도 성장하면 메이저리그란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지태의 꿈은 '오래오래 야구를 하고, 주변 이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그는 "아직 내가 대단한 걸 이루진 않았지만 필라델피아와 계약한 것도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 덕택이었다"며 "다행히 나는 아픈 데가 없다. 40살까지 야구를 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나중에는 야구 뿐 아니라 다른 것으로도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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