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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자유·인권 쟁취하려는 홍콩은 과거의 대만”

중앙일보 2021.03.01 11:36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가오슝 시립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2·28 74주년 기념식에서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사 캡처]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가오슝 시립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2·28 74주년 기념식에서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사 캡처]

“민주·자유·인권을 쟁취하려는 홍콩인이 거대한 압박에 직면했다. 마치 과거 대만에서 발생한 사건과 같다.”
지난달 28일 대만 가오슝(高雄) 시에서 열린 2·28 사건 74주년 기념식에서 천치마이(陳其邁·57) 가오슝 시장이 홍콩의 현실을 대만의 과거와 비교했다. 천치마이 시장은 “전 세계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인류와 사회가 모두 대만처럼 민주·자유의 국가가 되길 바란다”면서 “영광은 홍콩에 돌아가길 바란다. 대만은 진정으로 영원히 민주·약동·자유의 새로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는 기념식 치사를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2019년 범죄인 인도 조약 이후의 홍콩을 대만판 제주 4·3 사건 격인 1947년 대만 2·28 사건과 비교한 셈이다. 대만 집권 민진당 소속 천치마이 시장은 지난해 대만 총통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주민 투표로 파면당한 한궈위(韓國瑜·64) 전 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해 시장에 당선됐다.

대만판 4·3 사건인 2·28 사건 74주년 기념식
가오슝 시장 “대만처럼 민주·자유 국가 되길”
차이잉원 총통 “민주 후퇴, 독재 부활 가능…
인권의식 DNA에 새겨야 비극의 재연 막아”

천치마이 대만 가오슝 시장이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28 사건 74주년 기념식 치사를 올렸다. 천 시장은 치사에서 “역사는 용서할 수 있지만 잊어서는 안된다”며 민주와 자유의 그날이 오면 모든 영광을 홍콩에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천치마이 페이스북]

천치마이 대만 가오슝 시장이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28 사건 74주년 기념식 치사를 올렸다. 천 시장은 치사에서 “역사는 용서할 수 있지만 잊어서는 안된다”며 민주와 자유의 그날이 오면 모든 영광을 홍콩에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천치마이 페이스북]

이날 2·28 사건 정부 기념식은 당시 국민당군의 대규모 진압 작전이 시작된 가오슝시의 시립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쑤전창(蘇貞昌) 행정원장 등 정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치사에서 “▶︎우리는 반드시 성실하게 자기의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인권과 인간성의 존엄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민주·자유는 바꿀 수 없다’는 가치신념을 견지해야 한다”는 세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특히 차이 총통은 인권을 언급하며 “민주는 후퇴할 수 있고, 권위주의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며 “비극의 재연을 막기 위해서는 인권의식을 정부 시스템의 DNA 안으로 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차이 총통은 기념식에서 2·28 희생자 유족 3명에게 ‘명예회복증서’를 수여하고 깊은 사과를 표시했다고 대만 중앙통신사가 보도했다.
한편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은 타이베이시 기념식에 참석해 2·28 피해자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마 전 총통은 “역사와 마주할 때는 사실에 따라 시비를 논하고 시비를 분명히 해야 하며, 가족을 대할 때는 처지를 바꿔 생각하고 상처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2·28 사건은 74년 전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전매국 조사원이 타이베이시의 불법 노점상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해 대만 민중을 숨지게 하면서 시작됐다. 1947년 2월 28일 분노한 대만 민중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항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함께 관청을 공격·점령했다. 대만인이 대륙인을 상대로 먼저 보복을 자행했다. 이후 국민당 정부가 군대를 파견해 대만 민중을 체포·진압하는 과정에서 대만인 희생자가 속출했다. 대만의 군사 사령부 격인 경총(警總, 대만 경비 총사령부)은 오랫동안 2·28 사건은 “폭도가 정치 개혁 요구를 연막으로 삼은 국가 배반 행위이며, 대만인들이 주장한 ‘고도자치’ 요구는 국가를 배반하고 조국에서 떨어져 나가려 한 독립 주장”이라는 공식 견해를 유지했다. 1947년 2·28 사건 당시 경총은 희생된 대륙인은 사망 398명, 부상 2131명, 행방불명 72명, 대만인 피해자는 사망 52명, 부상 1364명, 실종 10명이라고 허위 발표했다. 대만 민주화 이후 인구학적 방법을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대만인 희생자를 1만8000~2만8000명으로 추산했다.  
민주화 이전 대만 국민당 정부는 2·28 사건을 반국가(반중국) 독립운동으로 규정하고 계엄통치와 백색테러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대만인에게 2·28 사건은 중국으로의 ‘광복’에 대한 환멸을 갖고, 대만 내셔널리즘이 싹트는 계기가 됐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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