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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후손 집에 일제훈장 30개…친일파 4명 재산환수 추진

중앙일보 2021.03.01 09:00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5대손인 이기용(1889~1961)은 흥선대원군의 맏형 흥녕군(이창응)의 장손이다. 고종에겐 당질(5촌 조카)인 셈이다. 이기용은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었지만,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자작(子爵) 작위와 수작금(受爵金) 3만원을 받고 이듬해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한·일병합 1주년 기념 축사를 기고하는 등 친일 행위에 앞장섰다.
 
이기용은 1910년 조선귀족관광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해선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묘소를 참배했다.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5년 4월엔 일본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검거될 당시에도 그의 자택에는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일제가 준 훈장 30여개가 발견됐다고 한다.
 

법무부, 친일행위자 4명 대상 국고 환수 소송 

2004년 국회에서 열린 친일재산귀속법(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당시 모습. 중앙포토

2004년 국회에서 열린 친일재산귀속법(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당시 모습. 중앙포토

그는 도박으로 소일하며 청년기를 보냈다. 순종실록부록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이 1922년, 1923년 두 차례에 걸쳐 이기용의 ‘가계(家計) 보조’를 위해 각각 300원과 500원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후 친일 행위의 대가로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로부터 경기도 일대 토지 이용권과 강원도 일대 금·은광의 공동광업권 등을 취득했다.
 
정부가 제102회 3·1절을 맞아 이렇게 쌓인 이기용의 재산 일부를 국고로 환수하기로 했다. 1일 법무부(장관 박범계)에 따르면, 법무부 국가소송과는 지난달 26일 이기용을 포함한 친일행위자 4명의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이들의 후손 등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냈다.
 
이들 친일파 4명은 모두 1912년 일제로부터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다. 그중에는 같은 조선 왕족 출신으로 일제로부터 후작(侯爵) 작위를 받은 이해승(1890~미상)도 있다. 조선 철종의 맏형 영평군(이경응)의 장손인 그는 또래였던 이기용과 함께 일제에 협력하면서 재산을 쌓았다. 1942년엔 조선귀족회 회장 자격으로 조선총독부에 일본 육·해군 국방헌금 2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환수대상 토지 공시지가 27억 규모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로 쓰였던 구 중앙청(국립중앙박물관) 건물.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8월 15일 철거됐다. 중앙 돔은 현재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중앙포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로 쓰였던 구 중앙청(국립중앙박물관) 건물.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8월 15일 철거됐다. 중앙 돔은 현재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중앙포토

이번에 환수 대상이 된 토지 재산은 이기용의 경기 남양주 이패동 소재 2필지와 이해승의 서울 홍은동 소재 1필지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자작 작위를 받은 이규원(1890~1945)의 경기 김포 월곶면 소재 7필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贊議)를 지낸 홍승목(1847~1925)의 경기 파주 법원읍 소재 1필지 등 총 11필지다. 총면적이 8만5094㎡(약 2만5741평), 약 26억7500만원(공시지가 기준) 상당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에 실제 환수 가치는 더 된다”고 부연했다.
 
앞서 법무부는 2019년 공원 조성 사업부지를 검토하던 서울 서대문구로부터 서울 홍은동 토지의 친일재산 검토 요청을 받았고, 지난해엔 광복회로부터 나머지 토지에 대한 환수 요청을 받아 자료 조사와 법리 검토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친일행위자들의 후손이 해당 토지를 처분하는 걸 막기 위해 법원에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기용의 후손이 소유하던 토지는 이미 제3자에 처분된 상황이라 가처분 신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법무부는 “전체 의뢰 토지 총 66필지 중 일부는 대가성 인정 증거 부족 및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소 제기를 유보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7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7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의 친일재산 환수는 2005년 제정된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발발(1904년 2월) 때부터 국권을 회복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친일행위자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초 2006년 설치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담당하던 귀속 업무는 위원회가 활동을 마친 2010년부터 법무부가 맡고 있다. 2010년 7월 이후 약 10년 6개월간 총 19건의 소송을 제기해 17건 승소한 결과 친일행위자의 재산 약 260억원가량(공시지가 기준)을 국고로 환수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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