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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의 퍼스펙티브] 산에서 물고기 잡나…변죽만 울리는 ‘희망 고문’

중앙일보 2021.03.01 00:33 종합 22면 지면보기

공공 주도 주택공급 대책

6번째 수도권 3기 신도시로 개발되는 경기 광명시 광명·옥길동 일대. 정부가 강남 주택수요 흡수를 기대하고 개발하기로 했다. [뉴시스]

6번째 수도권 3기 신도시로 개발되는 경기 광명시 광명·옥길동 일대. 정부가 강남 주택수요 흡수를 기대하고 개발하기로 했다. [뉴시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한 지 한달여 만인 지난달 4일 완결판인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내놓았다. 이어 20일 만인 24일 후속으로 광명·시흥 신도시를 포함한 공공택지 개발 예정지를 발표했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다음날인 25일 라디오에 출연해 “매달 주택 공급 일정을 발표하겠다”며 7월까지 일정을 제시했다.
 

투기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선회
도심 주택 공급 효자인 조합 불신
문턱 높여 놓고 신도시 분산 기대
민간도 촉진해야 재건축 왕성해져

지난해 8·4대책을 통해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정책 방향 깜빡이를 바꾼 데 이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전 대책마다 앞자리에 등장하던 ‘투기 억제’는 사라졌다. 정부는 주택공급 계획 물량이 총 200만가구로, 역대 최대였던 노태우 정부(200만 가구)에 육박하는 점을 강조한다. 물량 앞에 장사가 없다지만 원하는 곳에, 빨리, 많이 공급할지가 관건이다.
  
공공 주도 도심 주택공급 새 모델
 
2·4대책은 도심 주택 공급 물꼬를 틀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정부는 ‘획기적’이라며 대책 제목에까지 넣었다. 고밀 개발을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을 높이고 층수 제한을 풀어 같은 크기의 땅에 집을 훨씬 더 많이 짓게 했다. 재건축의 경우 가장 강한 규제인 초과이익환수제(재건축부담금)도 빼준다. 대신 공공이 시행을 맡아 사업을 주도하는 조건을 달았다.
 
공공 주도 도심 주택개발은 전례가 거의 없는 모델이다. 낯선 개발 방식이지만 쉽지 않은 도심 주택 개발에 숨통을 틔울 것으로 보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4대책 발표 후 “기존 방식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운 곳을 공공 주도로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고 도심 고밀 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지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도심에서 집값 상승기에 주택 개발을 하기 쉽지 않다. 지주가 땅값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고 땅을 팔려 하지 않아 토지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이 나서서 강력한 인센티브로 토지 확보를 수월하게 해준다면 민간이 하기 어려운 개발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요건이 맞지 않아 기존 주택개발 방식인 재건축·재개발을 할 수 없는 역세권 등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공공 주도 이외의 민간사업의 차별이다. 현행 민간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는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정부는 민간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재개발 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아 지난달 24일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 개정안은 “조합 주도의 사업시행 방식은 조합원 간 갈등, 시공사와의 유착, 조합 비리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조합 방식의 재건축·재개발은 주택 공급 ‘효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1~2020년 20년간 서울에 들어선 아파트 87만여 가구의 63%인 55만여 가구가 재건축·재개발로 지어졌다.
  
민간 재건축·재개발 막바지 단계 10만 가구
 
민간사업을 활성화하지 않은 채 공공 주도 사업만 집중하면 비효율적인 주택공급 방법으로 주택시장을 왜곡한다. 사업성 하락 등의 이유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곳들은 공공 주도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을 거부하는 강남 등 인기 지역의 사업은 더디게 돼 주거 선호지역의 공급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택 공급이 가장 절실한 곳은 여전히 공급 부족 몸살을 앓게 된다. 재건축을 끝낸 강남 아파트는 신축 희소가치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낡은 단지는 언젠가는 재건축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집값 강세를 이어갈 것이다.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 계획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 계획

정부는 공공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민간사업 규제도 완화하고 사업을 가로막고 있는 인허가 장애물을 걷어낸다면 공공 주도 방식이 민간사업을 촉진하는 ‘메기’와 ‘마중물’ 역할을 해 전체 재건축·재개발이 왕성해질 것이다.
 
정부가 서울에서 이제 시작하는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공급할 것으로 예상한 물량이 9만3000가구다. 서울시에 따르면 조합들이 사업 막바지 단계에 들어 사업 승인과 관리처분 인가를 받아 1~3년 내 공급 가능한 물량이 10만 가구다. 이제 쌀을 씻어 안친 밥솥의 화력을 높이는 것도 다음 끼니를 위해 필요하지만, 뜸만 들면 끝나는 밥솥의 불 조절을 도와주는 게 밥을 더 빨리 짓는 방법이지 않을까.
 
광명·시흥지구, 강남 수요 흡수할수 있을까
 
정부는 지난달 24일 광명·시흥을 6번째 수도권 3기 신도시로 발표하며 서울 외곽에 신도시 등 공공택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공택지는 1990년대 초반 분당 등 1기 신도시 개발로 서울 집값을 잡는 데 톡톡히 효과를 본 뒤 정부의 ‘만능’ 주택공급 대책으로 자리 잡았다.
 
1기 신도시가 5곳 5000만㎡, 29만 가구 규모였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2기 신도시 10곳 1억2400만㎡, 60만 가구 규모의 절반 정도지만 집값 안정에 확실한 효과를 냈다. 1988년부터 3년간 94%(국민은행)나 급등한 서울 아파트값을 이후 3년간 하락세로 반전시키며 11% 떨어뜨렸다. 서울과 인접한 접근성이 주효했다. 단기간 내에 집중한 입주도 한몫했다. 1991~1995년 5년간 수도권 주택이 38%(70만 가구) 급증했다. 5년 단위 주택 증가율로 역대 최고다.
 
1기 신도시가 한꺼번에 쏟아진 소나기였다면 2기 신도시는 강수량이 더 많아도 오랜 기간 넓게 뿌려져 땅에 흡수돼버린 이슬비였다. 2기 신도시는 수도권 전역에 개발됐고 2001년 개발을 시작해 아직도 입주가 끝나지 않았다.
 
3기 신도시 6곳 규모는 4500만㎡, 24만 가구로 1기 신도시와 비슷하다. 위치는 1기 신도시보다 더 서울에 가깝다. 1기 신도시가 지하철로 시간 거리를 단축시켰다면, 3기 신도시엔 더 빠른 광역급행철도(GTX)가 지난다.
 
윤성원 차관은 지난달 25일 라디오에 출연해 “광명·시흥지구는 서울 구로구에 붙어 있고 무려 6개 철도망이 연계되는 광역철도망을 깔 것이라서 강남 등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고 본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런데 1기 신도시와 달리 3기 신도시 문턱이 높다. 1기 신도시에 비해 서울에서 분양받을 수 있는 물량이 확 줄어서다. 1기 신도시에선 최대 20%를 해당 지역 거주자에게 우선 분양하고 수도권 기타 지역에서 80%에 청약했다. 3기 신도시는 서울·인천 몫이 50%다. 당시 서울에서 들어갈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덕에 국토개발연구원(현 국토연구원)이 93년 신도시 입주민 1400가구의 이전 주소를 조사한 결과 서울이 61.8%였다. 현재 서울과 가까운 과천 등 인기 택지지구의 서울 당첨자 비율이 30% 정도다.
 
서울 거주자 당첨이 어려운 데다 입주 후에 사서 들어갈 수도 없다. 3기 신도시 전매제한 기간이 대개 10년으로 예상돼 입주 후 7년간 팔 수 없다. 1기 신도시에 없던 3~5년 거주의무도 있어 전세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광명·시흥 등 강남 인근 신도시 청약에 강남 수요자보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로또’를 기대한 사람이 더 많이 몰릴 것이다. 강남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보다, 강남에 버금가는 사회·경제·문화적 콘텐트를 갖춰야 강남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 비싼 서울 집값을 피해 수도권으로 나갔다가 서울 집값 급등으로 서울로 돌아가지 못한 학습 효과가 주택시장의 씁쓸한 교훈 중 하나다.
  
‘캐시카우’ 없는 조건부 대책
 
서울 주택공급 부족 문제를 서울 이외에서 해결하려는 발상은 산에서 물고기를 찾고, 상위권 대학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중·하위권 대학을 늘리는 셈이다. 변죽만 울릴 뿐이다.
 
공공택지 개발은 공공의 일방적인 사업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이뤄지겠지만 도심의 공공 주도 주택공급은 재산권을 넘겨주는 주민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역세권 등에선 주민 10% 이상의 동의로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뒤 1년 이내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사업할 수 있다.
 
공공 주도 재건축·재개발의 주민동의 요건은 3분의 2 이상이다. 정부가 2·4대책에서 밝힌 서울 주택공급 계획 32만 가구는 정부보다 주민 손에 달렸다. 정부 주택공급 계획 물량은 ‘조건부’인 셈이다. 레임덕 등으로 정부의 힘이 빠진 정권 말기에 새로운 모델을 통한 실험적인 공공 주도 공급대책이 얼마나 탄력을 받을 수 있을까.
 
검증되지 않고 불확실한 시도도 필요하지만 기업체의 고정적인 수입원인 ‘캐시카우’와 같은 확실하고 손에 잡히는 공급 방안이 절실하다.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신호에 우려와 불안의 잡음이 잔뜩 뒤섞여 있다. 정부 대책이 실험 정신과 의욕만 앞선 ‘희망 고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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