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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찬바닥에 무릎 꿇은 소나무에 고개 든 악몽

중앙일보 2021.02.28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47)

며칠 바깥 날씨가 이불 속처럼 따뜻하다. 달력 속 절기를 보니 꽃들에게로 한 뼘쯤 더 기울었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가 좋으면 나는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옥상 벤치로 간다. 거기서 멀리 인천항도 보고, 음악도 듣고, 옥상 화단을 둘러본다. 아직 봄이 덜 깨어나 황량해 보이는 화단. 꽃은 없지만 겨울과 사뭇 다른 메시지가 3월 화단에는 있다.
 
몇 년 전 이곳 신축공사 때 업자들이 심어놓고 간 소나무 몇 그루. 지난 겨울 혹한과 강풍에 흔들려 몸이 많이 기울었다. 소나무 하나는 아예 가지가 땅에 닿을 지경이다. 몇 걸음 물러나 그 소나무를 보니 무릎 꿇고 비는 것처럼 보였다.
 
“소나무야, 너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찬 바닥에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니?”
 
그 모습을 보자 내 안에 있던 염증과 공포가 고개 들었다. 다 완치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순간 심근경색처럼 뻐근하게 가슴을 옥죄는 압통. 나는 손을 가슴에 얹고서 나 자신에게 ‘괜찮아, 괜찮아’ 되뇌며 다독였다.
 

몸이 많이 기울어 있는 소나무를 보니 무릎 꿇고 비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내 안에 있던 염증과 공포가 고개 들었다. [사진 pxhere]

 
그렇다. 나도 저 소나무처럼 무릎 꿇은 적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있다. 긴 인생 살다 보면 그야말로 무슨 일은 없을까. 사면초가의 캄캄한 벼랑은 어느 날 강도처럼 들이닥친다. 그런 일은 인간의 힘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사지를 묶어놓고 결국 무릎 꿇게 만든다. 그런 일은 무릎 꿇는 길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공통 특징이다. 남들 앞에 내놓을 것은 없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살아온 나였다. 어느 날 내 정신의 관절을 나 스스로 꺾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기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정말이지 치욕스러운 일이다. 한 번도 끔찍한데, 돌아보니 두 번이다. 아직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건만, 양은 냄비 바람에 우그러지듯 참 요란뻑적지근하게 살아왔다.
 
그 첫 번째는, 내 나이 서른두 살 여름에 일어났다. 그날 나는 남편의 야식 장사를 돕고 조금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새벽에 일을 마친 남편이 귀가할 때였다. 새벽 6시, 심한 안개가 도로를 뒤덮었던 그 날. 남편이 운전하던 차가 자전거 타고 무단 횡단하던 한 노인을 치고 말았다. 차 앞 유리가 심하게 일그러졌고 안타깝게도 노인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 집의 가장을 사망케 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사건이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일사천리로 구속되었다. 머리가 띵한 충격으로 내겐 숨 쉴 힘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자. 나라도 가서 고인과 유가족 앞에 사죄드리자….’
 
그때 나는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당시 여덟 살 된 아들을 혼자 집에 재워놓고 딸아이의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두 돌 된 젖먹이를 등에 업고 현관을 나섰다.
 
새벽 3시 오산 장례식장 앞. 캄캄한 외곽 벌판이었다. 사람 집어삼키는 괴물처럼 괴괴하게 우뚝 서 있던 장례식장. 나는 충격과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렸다. 이따금 주차장 밖에까지 들려오는 서늘한 곡소리. 건물을 포위한 칠흑 같은 어둠. 내 운명을 비웃는 환청으로 들려오는 저승사자 웃음소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딱 그거였다. 등에서 잠들어 늘어지는 아이를 다시 고쳐 엎고 메모지를 보며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이게 꿈이라면 어서 빨리 깨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빈소를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온종일 울어 얼굴이 퉁퉁 부은 유가족들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죽을죄를 진 나는 유가족 앞에 용서를 빌고 또 빌며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하루 아침에 가장과 아버지를 잃은 그들 아픔이 치유되긴 어려웠다.
 
경기하듯 놀라 우는 어린 딸애 소리가 꿈을 꾸듯 아득히 들려왔다. 반쯤 나간 혼을 모으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직 거기 앉아 있었다. 놀란 아기는, 땀에 젖은 내 등에서 숨도 못 쉬고 악악 울었다. 나는 옷과 머리가 다 뜯겨져 있었다. 저만치 날아가 떨어진 딸애의 기저귀 가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무릎을 또 꿇었다. 계속 빌었다. 그분들의 충격과 아픔과 한과 황망함이 누그러질 때까지. 오산 벌판에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빌고 빌다 돌아왔다.
 
사면초가의 캄캄한 벼랑은 어느 날 강도처럼 들이닥친다. 그런 일은 인간의 힘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사지를 묶어놓고 결국 무릎 꿇게 만든다. [사진 pxhere]

사면초가의 캄캄한 벼랑은 어느 날 강도처럼 들이닥친다. 그런 일은 인간의 힘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사지를 묶어놓고 결국 무릎 꿇게 만든다. [사진 pxhere]

 
두 번째 일은 그 후 22년이 지나 벌어지고 말았다. 작년 초였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나의 실수로 한 제자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어찌됐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은 분명 나의 실수였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음을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시 내 상황을 최대한 설명하고 진실로 실수였음을 제자와 대중에게 고백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를 향한 원망과 오해와 군중의 혹독한 비난은 눈덩이처럼 일파만파 커져갔다.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나는 분명 실수였다. 하늘은 그 당시 내 상황을 모두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파란 하늘은 나를 위해 그들 앞에 나서서 어떤 증언도 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사방에서 날아드는 원성과 나를 향해 꽂히는 비난과 조롱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자를 찾아갔다.
 
‘어쨌든 내 실수였다. 죄인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제자를 찾아가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진심을 다해 빌었다. 간절히 빌고 또 빌다 돌아왔다.
 
살다 보면, 시간에게 배울 때가 참 많다. 시간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한곳에 감정을 쌓아두지도 않는다. 때론, 요란복잡하게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 그 감정과 속도를 비웃듯 시간은 그냥 저만치 추월해간다.
 
나로선 도무지 수습될 것 같지 않던 두 번의 악몽. 그마저도 인생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간은 내게 말하고 싶은 걸까. 내일 일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질 것을 미리 안다면 우리는 사형날짜 받아 둔 사형수와 같으리라. 그렇게 되면 우린 단 하루도 희망과 행복에 집중할 수 없다.
 
나는 쓰리고 아픈 마음으로 소나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팔을 부축해주었다. 나무는 발이 저린지 한동안 제대로 서지 못했다. 부디 과거에 나로 인해 아팠던 모든 이들의 상처가 건강하게 잘 회복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새 태양이 내 머리 위로 옮겨왔다. 나는 앉았던 옥상 주변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꼭대기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른 나는 숫자 7을 가-만-히 눌렀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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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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