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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발길질에 췌장 터진 4살, 18년 뒤엔…아동학대의 비극

중앙일보 2021.02.25 05:00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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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A군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을 먹고 하루~이틀을 내리 자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깨있는 날 A군이 눈에 띄면 아무데나 때리곤 했다. 어느날 잠에서 깬 A군의 아버지는 “라면 어디갔냐”며 행패를 부렸다. 그러다 A군을 향해 칼을 휘둘렀고 칼은 그대로 아이의 발을 관통했다. 병원 응급실 의료진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로 A군과 아버지는 분리됐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정신적ㆍ신체적 건강 관리 지원은 6개월만에 끊겼다.
 
B양은 4세이던 2003년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늑골이 골절되고 췌장과 신장이 파열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엄마가 엎드린 B양을 발로 세게 밟고 폭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했다. 이때 구조된 B양은 올해 22세가 됐다. 목숨은 건졌지만 당뇨병, 성장장애와 노동력 상실,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등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게 됐다.

 
배기수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A군과 B양의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학대 피해 아동의 사후 건강관리 체계가 매우 미흡하다”며 학대 피해 아동의 사후 건강관리체계 보완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24일 대한의사협회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시스템,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다.

 
배 교수는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이 6개월이면 끝난다. 아이는 한창 지옥 속에서 헤매고 있을때 치료는 끊기게 된다”라며 “현재 협력기관도 병의원,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알코올상담센터 정도로 피해아동을 도울 협력기관이 부족하다. 최소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특화센터 정도가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 아동의 평생에 걸친 육체 질환 및 정신질환을 관련 종사자 간의 융합ㆍ통합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신현영 의원은 “아동 학대 예방ㆍ조기 발견은 의료진을 포함한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의 적극적인 신고가 중요하다. 부담없이 의심 정황을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사후 대처 역시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의료진 신변 안전제도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의료진의 피해아동 가족 등으로부터의 협박 등 나쁜 경험이 신고율을 낮추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의료현장에서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좌장은 이동우 의협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정신건강분과위원장(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 맡았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양이원영 의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해 7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법 915조(징계권) 조항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양이원영 의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해 7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법 915조(징계권) 조항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서울대병원 곽영호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 현장의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늘리기 위한 대책 중 하나도 의사들의 신변 보호의 문제를 언급했다. 현행 아동학대특례법은 신고자 보호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고한 의사가 아동학대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협박이나 보복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곽 교수는 “의료인이 신고하면 개인 신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근무 병원까지 공개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피해 아동 가족에게 신고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 것은 의료인 입장에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가 제시한 대안은 병원에서 쓰는 전자의무기록(EMR)을 이용하는 자동 신고 시스템이다. 의료진이 EMR에 학대 코드를 입력만 하면 자동으로 신고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숨은 범죄가 많은 아동학대의 경우 ‘발견’보다 ‘발굴’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호주에서는 병원 아동환자 의무기록을 전담팀이 별도로 분석하고 아동학대 의심 환자를 걸러낸다. 64만7819명의 소아입원 환자 중 2120명의 아동학대 환자를 발굴해냈다고 한다.

 
삼성서울병원 박미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해내기 위해 1차의료기관 의료진을 상대로 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등에 아이가 실려간 경우 대부분 심각한 학대를 당해 생명이 위중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 연구를 언급하며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도 있다는 거부감이 신고를 꺼리는 큰 이유중 하나”라며 “1차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과 함께 쉽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지역사회 내 아동학대 전문의 등 전문가와 연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복지부 박은정 아동학대대응과장은 “아동학대대응과가생긴지 2년이 지났다. 담당 부서가 생기면서 정책적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다”라며 “지원 시스템의 부재, 전담의료기관 지정 등 의료계에서 사명감만으로 일 하는 것이 아닌 실제 의료현장에서 지원방안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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