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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의 시선] 대통령이 신현수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

중앙일보 2021.02.25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허 참~’ 소리가 자주 들린다. 기가 차거나 막힐 때 따라 나오는 탄식이다. 억지스러워 황당하지만 어쩔 도리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신호다.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를 기점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월성 원전 사건 수사에까지 이르며 현 정권과 척을 지고 적대적 참모들에 포위된, 사면초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 재임 1년간 사사건건 사생결단식으로 윤 총장과 대립했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떠나고 박범계 법무장관이 부임했는데도 ‘허 참~’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민정수석 왕따’ 사건 전말 밝히면
대통령 인사 의중 드러날까 걱정
권력의 최후 무기인 침묵 택한 듯

지난 7일 박 장관의 첫 검사장급 인사가 전격 발표된 직후에도 이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인사안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일요일 대낮에 ‘추미애 시즌2’의 개봉이 선포됐으니 당혹했을 법하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옵티머스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냐”고 다그친 사람도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박범계 장관이다. “예전엔 안 그러더니 지금은 왜 그러느냐. 선택적 의심 아니냐”며 답답해한 이도 윤 총장 아니던가.
 
탄식도 권력을 쥔 쪽에서 나오면 결이 다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부산을 또 가야 되겠네. 허 참~”이라며 혼잣말을 한 데선 목가적 내음이 난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의 통과 불발로 다시 부산에 가서 설명해야 하는 게 귀찮다는 의미로 들린다.
 
허 참~ 소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북한군 병사의 ‘헤엄 귀순’은 기강해이에 빠진 군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좀체 잡히지 않으면서 K방역은 탈색됐고, 민생은 고난의 행군의 연속이다. 사법부 안의 진영 대결과 분열상도 극심하다. 이 나라가 ‘허 참~ 공화국’이라도 된 듯하다.
 
근래 장탄식의 주연은 신현수 민정수석이다. 박범계 장관이 검사장급 인사에서 그를 패싱한 게 화근이었다. 신 수석이 반(反)윤석열 계열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추미애 라인 대검 참모진을 바꿔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정상화하려다 벽에 부닥친 게 요체다. 신 수석의 한 측근은 “처음부터 불안한 (청와대) 입성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도와달라는데 공직자가 어떻게 거절하느냐며 들어가더라. 그래도 몇 달은 버틸 줄 알았는데 임명 후 40여일만에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인사 패싱만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신 수석 전격 사의 미스터리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사적 모멸감보다 더 중요한 공적 문제가 ‘대통령 패싱’ 의혹이다. 법무부가 인사 발표를 먼저 하고 하루 뒤 대통령이 사후 승인했다면 법 절차 위반이다.
 
“신 수석이 중대한 절차적·법적 하자를 확인하고 사석에서 장관 감찰까지 거론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박 장관이 밀어붙인 인사안은 문 대통령과도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어쩌면 신 수석이 미운 오리새끼로 왕따를 당한 것일 수 있다. 일단 복귀하되 사의 철회는 아니라고 못박은 건 사실 관계는 다 드러났지만 대통령에게 누가 되진 않겠다는 의미로 안다.”(청와대 관계자)
 
실제로 월성 원전과 선거개입 사건의 정점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두 가지 수사의 칼날을 막거나 속도라도 늦추려면 방패가 필요하고 윤 총장의 고립무원 상태도 유지하는 게 낫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도 법무부 인사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청와대가 “인사 재가 과정은 통치 행위”라며 함구하는 이유는 투명하게 공개할 경우 청와대 내 권력 구도와 암투, 문 대통령의 속내가 바깥에 날것 그대로 드러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감추면 감출수록 의혹은 커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건이 그랬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침묵을 택했다. “침묵은 권력의 최후 무기다”(샤를 드골), “권력은 그 내면을 간파당해선 안된다”(엘리아스 카네티, 『군중과 권력』)는 가르침을 따랐다. 어느 쪽이 득이 될지 지금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간에도 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은 몇 차례 논란이 됐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에 대해선 권력형 비리로 규정, 재수사를 공개 지시하고도 박원순·오거돈·안희정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끝까지 외면하고 회피한 게 대표적이다. 검찰의 산 권력 수사 과정을 짚다보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는 대통령 선거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 지시를 장·차관급 공무원들에게 내릴 때 “헌법과 법률의 적법절차를 지켜서 하라”는 전제적 지시를 생략한 게 아닐까 싶다. 현행범 체포 때 고지하는 미란다 원칙처럼 이 또한 법률로 제정해 놓는 건 어떨까.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기 위해 무리하게 제정 추진되는 법들보다 훨씬 나을 것 같다. 허 참~.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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