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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백신이 만병통치약? 방심하면 4차 유행 올 수도

중앙일보 2021.02.25 00:39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백신이 마침내 온다. 26일 접종을 앞두고 24일 국내 공장에서 백신이 처음 출하됐다. 코로나19의 기습 공격에 맞서 불과 1년 만에 백신을 개발한 것은 그만큼 인류의 생존 위기가 절박했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인류의 응전이었다.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높이고
선거 의식, 거리두기 완화 안 돼

감염병이 대유행할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이 1차 예방수단이다. 대규모 신속 검사는 2차 예방이고, 치료는 3차 예방이다. 백신이 없어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1차 예방 수단으로 버틴 지 1년이 지났다. 이제 백신을 맞으면 든든한 1차 예방 수단을 하나 더 갖게 된다.
 
그러나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홍수로 물은 넘쳐나는데 정작 정갈한 우물물이 황토물에 오염돼 사람이 마실 물이 없게 될 수 있어서다. 지금 분위기로는 곧 백신 천지가 될 거 같지만, 거리두기라는 1차 예방 수단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번 봄에 4차 유행이 올 것이다.
 
타는 목마름을 느끼던 우리에게 백신은 생명수와 같다. 하지만 백신을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대한민국 최대 밀집 도시인 서울과 부산에서 보궐선거와 맞물려 방역 단계를 내리라는 여론의 압박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그나마 거리두기로 버티면서 마실 우물물을 지켜왔는데, 백신이 황토물이 될까 우려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순서대로 공정하게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호 접종을 누가할지를 놓고 정치 공방이 벌어졌다. 코로나는 사회적·정치적 분열의 틈에서 번성한다.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유럽과 미국의 사례에서 목도했다. 방역은 과학이고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과학도 심리도 모르는 정치는 분열의 수사(修辭)에만 몰두한다. 지난 1년간 ‘방역 정치’를 했으면 지칠 만도 한데, 이제는 ‘백신 정치’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다. 여론을 갈라치면서 틈새에서 득표하려는 정치 꼼수가 얄밉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기존의 방역 유지와 환자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 적잖은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다. 질병관리청과 일선 보건소, 시·도 방역 공무원은 물론 의료진은 턱 내밀고 카운트 펀치 맞는 심정으로 대기 중이다.
 
현장 방역이 중요하다고 줄곧 강조했고 정규직이 50%가 안 되는 보건소 인력 증원을 1년 내내 외쳤지만, 인력 충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권역별 감염병 전담병원 추가 설치 지원 예산을 반 토막 내고 방역과 백신의 공과를 따지느라 정치적 허언만 넘쳤다.
 
코로나 비상사태 와중에 사실상 자발적 봉쇄를 결단했던 ‘대구 방역’의 오답 노트를 참고하지 않는 바람에 수도권을 비롯해 2차, 3차 유행을 맞았다. 지금은 자칫 백신과 함께 4차 유행을 경계해야 할 때다. 백신을 접종하면서 환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외국에서 거리두기를 어떻게 시행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백신을 도입하고 접종한 나라들에서 발생한 시행착오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2, 3차 코로나 유행을 거친 지금 상황을 지난해 봄과 비교하면 암세포가 온몸에 펴져 있는 형국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질병 치료에 비유하면 장기적 항암 치료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접종한다고 단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또 오판하면 보궐선거의 종이 울리기도 전에 4차 유행이 몰려올 것이다.
 
착각은 금물이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위드 코로나 시대의 한복판에 있다.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일단 급선무다. 그 와중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경솔하게 하향 조정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마지막 크레바스를 뛰어넘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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