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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일제 순사냐, 민중의 지팡이냐

중앙일보 2021.02.25 00:20 종합 26면 지면보기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순사(巡査). 일제 강점기 때 말단 경찰관을 일컫던 말이다. 현재 순경 정도의 직위인데도 당시 위세는 대단했다. “허리에 칼 찬 순사를 보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췄다”고 했다. 이들이 일제를 위해 조선인을 억압한 수법은 더 악랄했다. 누구 집의 숟가락·젓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아는 이른바 ‘밀착형’ 앞잡이어서다.
 
최근 순사의 존재를 일깨운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한국 경찰에 여전히 문제가 있지만, 일제 순사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던 1954년의 경찰은 절대 아니다”라고 썼다. “이론적으로 ‘경찰 파쇼’와 ‘검찰 파쇼’ 모두 위험하지만, 현재 권력은 압도적으로 검찰에 집중돼 있다”며 재차 검찰 개혁도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경찰의 과오를 언급하며 ‘칼 찬 일제 순사’에 빗댄 적도 있다. 과거 경찰의 존재가 얼마나 위협적이었나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경찰청은 지난 22일 국가수사본부장에 남구준(54) 경남경찰청장을 단수 추천했다. 경찰법 개정에 따라 국가·자치·수사 경찰 중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다. 국수본부장은 3만명이 넘는 전국 수사 경찰과 함께 18개 시·도 경찰청장을 총괄 지휘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갖게 된 1차 수사종결권을 행사할 시험대의 수장 역할도 한다.
 
경찰 이미지

경찰 이미지

현장에선 “막강한 권력을 지닌 공룡 경찰”이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경찰관들은 “당연히 가졌어야 할 권한(수사권)”이라면서도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그간 검찰 쪽에 집중됐던 수사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젠 경찰 쪽을 향하게 돼서다. “우리는 검찰 같은 힘도 없고 빽도 없다”던 푸념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지난 9일 부산에서는 경찰관이 호텔 여직원에게 “술을 같이 먹자”며 소란을 피우다 체포됐다. 연일 터지는 경찰 비위를 참다못한 진정무 부산경찰청장이 공직기강 캠페인을 벌인 지 하루 뒤였다. 앞서 부산에서는 순경이 남의 차를 훔쳐 음주운전을 하거나 경찰관 3명이 동시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붙잡혔다. 부산만이 아니고 전국 경찰들의 음주·뇌물·절도·성매매·도박 등 비위는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경찰은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각종 사건을 처리한다는 점에서 검찰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근무현장이 국민 생활과 밀착돼 있어 경찰이 비위를 저지르면 시민들부터 피해를 본다. 경찰관들 사이에서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과거 정치권력이나 검찰의 지휘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치만 보면 되는 민중의 지팡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수사기관이 된 경찰에게 주어진 숙명은 이렇다. 과거 순사처럼 시민들 곁에서 군림할 것인가, 국민을 부축해줄 지팡이가 될 것인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최경호 내셔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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