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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민 "文이 속도조절 당부"…김태년 "그런 말씀 아니잖아요"

중앙일보 2021.02.25 00:04 종합 1면 지면보기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빼앗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두고 이견을 보이던 여권이 24일엔 “검찰개혁 속도 조절이냐, 아니냐”를 두고 대혼란에 빠졌다. ‘속도 조절 맞다, 해야 한다’는 청와대에 ‘누가 속도 조절이라고 하느냐, 우리 길을 가겠다’며 정부·여당이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야당에선 “여권발 레임덕이 본격화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유영민 “대통령 속도조절 뜻 밝혀”
김태년 “안했다” 운영위서 공방
당 중진도 검찰개혁 속도조절 반발
유, 논란 일자 “그런 표현 아니었다”

속도조절론의 출발은 지난 22일이었다. 이날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께서 제게 하신 말씀은 크게 두 가지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개혁의 안착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두 번째는 범죄 수사 대응능력과 반부패 대응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현 정부의 현안이었던 검경수사권 조정은 산고 끝에 올해부터 검찰에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만 남기고 나머지는 경찰이 가져가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선 중수청을 설치해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마저 박탈하고 수사-기소를 완전히 분리한다는 내용의 중수청 설치 법안을 발의하는 등 기존 수사권 조정을 뒤집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박 장관 전언 형태로 나온 문 대통령의 “수사권 개혁 안착”이라는 발언은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일부 여권 인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23일 인터뷰에서 “(속도조절론을) 공식, 비공식으로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한 데 이어 24일 “박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들었다는 ‘제도의 안착’이 검찰개혁 시즌2의 속도 조절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중수청 법안을 발의한 황운하 의원도 “문 대통령의 말이 속도 조절에 관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검찰이나 보수 언론의 희망사항이 반영된 해석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 밖 인사도 가세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이제 와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면 (형사소송법 제정 뒤) 67년의 허송세월이 부족하다는 것이 돼 버린다”고 썼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추 전 장관 글을 공유하며 “온 국민이 검찰의 폭주를 목도한 이후 국회가 주도해 (수사-기소) 분리 과제를 실현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했다.  
 
야당 “대통령 말까지 거부하는 여권 인사들 안쓰러워”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속도조절론 입장이 있더라도 검찰개혁은 법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한 말씀 하면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다 정리돼야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속도 조절’ 말말말

‘검찰개혁 속도 조절’ 말말말

논란의 또 다른 한 축은 문 대통령 발언이 속도 조절로 해석하는 게 맞느냐였다. 박범계 장관은 이날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의 당부를 내가 속도 조절로 표현하지는 않았는데 일부에서 그런 표현으로 뭉뚱그리는 듯하다”면서 “대통령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속도 조절 해석은 무리’라는 프레임으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오후 국회 운영위에서 분란은 더 커졌다. 운영위에 출석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 당부를 했다”며 “팩트는 임명장을 주는 날 대통령이 차 한잔 하면서 당부할 때 이야기가 나온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에 국회 운영위원장인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 하라’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하자 유 실장은 “정확한 워딩은 기억 못 하지만 그런 뜻이었다”고 말했다. 재차 김 위원장이 “그렇게 답변하면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 워딩을 쓰신 게 된다”고 지적하자 유 실장은 “정확한 워딩은 (속도 조절하라) 그게 아니었고, 그런 의미의 표현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후 유 실장이 회의 막바지에 발언 기회를 얻어 “정회했을 때 확인했다.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이라는 표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여권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자 “청와대 장악력이 확연히 떨어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겉으로는 중수청 설치 등을 두고 진통을 겪는 듯하지만, 그 이면엔 “더 이상 대통령한테 줄 설 필요 있나”라는 여당 내 기류가 여과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과거라면 대통령 발언을 두고 ‘통보받지 못했다’ ‘그런 뜻이 아니다’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었겠나”며 “전형적인 임기말 레임덕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속도조절론까지 거부하는 여권 인사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걱정스럽다”고 했다. 
 
송승환·성지원·남수현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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