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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의 코멘터리] 유영민 비서실장의 소신발언

중앙일보 2021.02.24 20:37
유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김상조 정책실장. 2021.2.24 오종택 기자

유영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김상조 정책실장. 2021.2.24 오종택 기자

 
 

24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벌어진 비서실장과 원내대표의 공방
비서실장 '대통령의 속도조절'뜻 고수..당청갈등의 현장 노출

 

1.
국회에서 집권여당 원내대표(국회운영위원장)와 청와대 비서실장이 긴장관계를 드러내는 건 드문 일입니다.
 
24일 오후 국회운영위원회에서 그런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최근 정치판의 핫이슈인‘검찰개혁 시즌2’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속도조절’을 요청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2.
속기록 발췌입니다.  
 
▶유영민 비서실장=박범계 법무장관 임명장 받으러 온 날 대통령께서 속도조절 당부를 했죠..
▶김태년 원내대표=대통령 워딩이 ‘속도조절하라’..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잖아요..오해가 있을까봐서.
▶유=정확한 워딩은 기억못합니다만..그런 뜻이었습니다.
▶김=그러니까..지금 실장님 답변이..‘속도조절하라 하셨나’(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해버리면 대통령께서 워딩을 그렇게 쓰신 것으로 되어버리잖아요.
(잠시 장내가 웅성웅성)
▶김=나도 운영위원장으로서 확인해보는 거예요..
▶유=정확한 워딩은 그게 아니었고..그런 의미의 표현을 하셨다는 겁니다.
 
3.
위 대목은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이 유영민에게 질문하던 중 김태년이 끼어든 장면입니다.  
김태년은 운영위원장이기 때문에 회의 중간 아무 때나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당의원 질문에 유영민이 ‘속도조절’을 인정하자 김태년이 급히 끼어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속도조절’이란 단어(워딩)를 썼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유영민이 ‘워딩’은 기억 못하지만 ‘그런 뜻’이라며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자 김태년이 다시 한번 쐐기를 박습니다. ‘그렇게 답변하면 대통령이 그 단어를 썼다는 의미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4.
김태년이 유영민에게 ‘속도조절’이란 단어를 쓰지말라고 거듭 주의를 주는 장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위상으로 보자면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김태년은 민주당의 실세 중 실세입니다. 의원들이 투표로 뽑은 원내대표이고, 호남 출신 운동권이며, 이낙연 대표가 물러날 경우 당대표대행까지 맡을 4선 의원입니다.  
 
반면 유영민은 정치적으로 비중이 거의 없습니다. LG부사장 출신 엔지니어며, 부산대 수학과 출신이며, 두 차례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하는 바람에 금배지를 달지 못했습니다.  
 
5.
이런 관계와 분위기 탓인지..김태년의 두번째 지적이 있자 장내가 술렁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태년이 분위기를 풀려는듯 ‘확인해보는 거예요’라며 발을 뺍니다.
국회에 불려나온 공직자들은 통상 상임위원장이 이런 정도로 나오면 물러서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유영민은 ‘그런 의미의 표현을 하셨다’며 물러나지 않습니다.
 
6.
이런 진풍경인지라..현장에선 ‘유영민이 작심하고 나왔다’는 추정이 많았습니다.  
 
유영민은 신현수 민정수석 사표나 검찰인사 등과 관련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다 피해갔습니다.  
그런데 유독 ‘속도조절’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답변했고, 김태년의 거듭된 주의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뜻’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7.
청와대 입장에서는 ‘속도조절’을 둘러싼 논란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필요가 있는게..24일에도 여권에서는 ‘검찰개혁 시즌2’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경론이 이어졌습니다.  
 
첫째 유형은 ‘(검찰의 수사권 박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속도조절론이라고 포장해 왜곡한다’(황운하 의원).  
둘째 유형은 ‘언론에서 속도조절론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려 다루는 듯하다’(박범계 장관).  
문재인 대통령의 뜻은‘속도조절’이 아닌데, 반개혁 세력과 보수언론이 왜곡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셋째 유형은 ‘촛불주권자의 개혁완수를 받드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추미애 전 장관). 대통령의 신중론 자체를 반격합니다.  
 
8.
강경파들의 속내는 셋째라고 봐야겠죠.  
 
민주당 지도부가 아직 고민하는 건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일 겁니다. 시즌2를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선거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대한 계산이 정확히 안나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시즌2를 밀어붙이느냐 여부는 4월 선거결과에 달려 있어 보입니다. 문재인의 뜻에 달린 것이 아니라..
〈칼럼니스트〉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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