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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미투, 그 이후

중앙일보 2021.02.24 00:34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지영 문화팀장

이지영 문화팀장

또다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바람이다. 체육계와 연예계를 중심으로 ‘학폭(학교폭력) 미투’가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체육계·연예계 잇단 ‘학폭 미투’
3년 전 성폭력 미투와 닮은꼴
유명인만 주목하면 본질 멀어져

지난 7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흥국생명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폭 가해 주장 글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파장이 확산될 줄 예상 못했다. TV 예능 ‘노는 언니’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한껏 높여놓았던 터라 이들 자매에 대한 대중의 충격은 컸다. 두 선수가 자필 사과문을 내고 무기한 출전 정지와 국가대표 선발 대상 제외 등의 징계가 이어졌지만 분노한 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들을 영구제명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글도 올라왔다. 23일 현재 13만6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학폭 미투는 남자배구 송명근·심경섭·박상하 선수 등에 이어 프로야구계로 확산됐고, 연예인들에 대한 학폭 의혹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1주일 사이 배우 조병규·김동희·박혜수, 그룹 (여자)아이들 수진과 세븐틴 민규, 가수 진해성 등의 학폭 미투가 불거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학폭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진위 공방까지 벌어지는 모양새다.
 
꼭 3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2018년 2월엔 성폭력 미투가 휘몰아쳤다. 연극배우 이명행의 성추행 논란으로 시작된 미투는 문화계 거장으로 꼽혔던 이윤택·오태석 연출가를 거쳐 시인 고은과 시사만화가 박재동, 배우 조재현·오달수, 영화감독 김기덕 등 전방위적으로 번졌다.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작품 활동을 멈추면서 문화계는 쑥대밭이 됐다.
 
학교폭력 유형

학교폭력 유형

곧이어 성폭력 미투는 문화예술계의 울타리를 넘어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그해 3월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안 전 지사의 성폭행·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면서다. 이후 우리 사회는 유력 대선 주자로 꼽혔던 정치인의 추락을 목격했다. 하지만 학습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듯하다. 지난해엔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자리가 모두 미투 여파로 공석이 됐고, 올 들어선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의 미투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관련 법과 제도가 구축되는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봇물 터지듯 이어졌던 미투의 열기를 떠올리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선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투 운동이 계기가 돼 입법 추진에 들어갔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아직 법안 심사 공청회조차 못 열고 있어 마련된 자리였다. 여성문화예술연합 이성미 대표는 “양성평등기본법·국가인권위원회법·남녀고용평등법 등 성폭력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는 기존 법들은 직장·공공기관·학교 등 조직 위주라서, 프리랜서 문화예술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지난해 불거진 ‘Y작가 성희롱 사건’을 예로 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의 프로젝트 운영감독을 맡았던 Y작가가 참가 작가 섭외 과정에서 만난 20대 여성예술인을 성희롱한 사건이다. 피해 예술인은 해당 프로젝트 참가를 포기했고, 이후 서울문화재단 측에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재단 측은 Y작가와의 용역 계약 기간이 끝났다며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이렇게 고용 계약 바깥의 예술인들에 대한 성희롱 피해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지만, 이를 보완할 법안은 아직도 표류 중이다.
 
학교폭력은 성폭력과 닮은 점이 많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는 “성폭력·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폭력을 당한 순간의 기억을 일평생 잊지 못한다. 그만큼 트라우마가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 상황에서 겪은 굴욕감이 너무 커 피해 사실을 공개할 용기를 내기도 쉽지 않다. 폭로 시점에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났거나 증거 불충분이 되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쉽지 않고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역고소를 당할 위험이 크다는 것도 성폭력과 학교폭력의 공통점이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이 2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건수는 총 3만1130건이었다. 이 중 절반 이상(1만6516건)이 상해·폭행·감금·약취·유인 등 신체폭력 사례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투 증언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처벌, 예방책 마련과 제도 개선 등의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3년 전처럼 가해자가 유명인인 사례에만 주목하면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미투 뉴스를 유명 스타들의 가십거리로 취급하는 순간, 익명에 기댄 허위 폭로가 등장할 가능성도 커진다. 미투, 그 이후. 중요한 순간이 다시 왔다.
 
이지영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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