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태준 시인
새해에 예지의 덕담 청해 듣곤 해
덕담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
‘나’도 내게 좋은 덕담 들려줬으면
벌써 새해도 거의 두 달이 지났다. 그러나 음력으로 따지고 보면 오곡밥을 먹거나 부럼을 깨물거나 귀밝이술을 먹는 정월 대보름이 모레다. 첫 보름달을 보면서 한 해의 풍요와 행복을 빌고 마음에도 밝은 빛을 넘치도록 담는 때가 이때다. 그래서 나는 이즈음이면 작은 동산에 올라 환한 달을 바라보면서 한껏 마음이 부풀고 또 설레던 어릴 적 나를, 구김살이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달빛 아래 서 있던 나를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인 정월에 새해에 할 일과 뜻을 세우고, 어른들로부터 예지의 덕담을 듣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또 언제든지 덕담을 들어 마음에 새길 수 있다. 덕담은 꼭 그 시기가 정해져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날그날의 날이 첫날이고 매일매일의 삶으로부터, 또 그 삶의 구체적인 내용인 고통과 기쁨으로부터 덕담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는데, 그 책에는 ‘오늘부터 1일’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실려 있었다. 시의 형식을 빌려 쓴 그 문장들은 다음과 같았다. “담배 줄이기/ 산책하기/ 하루에 한 끼는 요리해서 먹기//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괜찮다는 말로 얼버무리지 말고/ 아픈 데를 말하기// 서로 엇갈려도 부딪쳐보기/ 낮과 밤이 만나는 저녁처럼”
나는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에게 오늘이 첫날이라면, 오늘부터 1일이라면 어떤 것을 새롭게 작정할 것인지를 되물어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아픈 데를 숨기지 말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강요를 받기도 하는데, 꼭 그렇게 서로에게 해야 할 당위 같은 것이 딱히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면 내가 최근에 읽은 한 시인의 산문은 그 자체가 참으로 멋진, 내게 꼭 맞춘 덕담이 된 셈이다.
얼마 전에 다시 본 한 편의 영화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아 암투병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적어놓은 버킷리스트에 이런 항목이 있었다.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실컷 웃을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고, 또 웃을 때는 호탕하게 웃음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이 일도 올해 내가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소망의 내용이 되었고, 또 크게 공감을 해서 덕담의 새로운 목록에 포함을 시킨 것이었다. 영화 속 대사였던 “부디 삶의 기쁨을 찾아요”라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눈으로 보고 있거나 귀로 듣고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해보세요”라든가 “어둠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것보다는 촛불을 밝히는 것이 더 좋아요”와 같은 것도 독서 등을 통해서 알게 된 덕담이었다. 앞의 권유에는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삼가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는 이유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덕담은 가령 요즘의 산길을 오를 때에는 ‘노란 복수초가 피어 있네’처럼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후자의 덕담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평소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도움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곳곳에서, 또 모든 존재로부터 덕담을 들을 수 있다. 한 톨의 씨앗도 훌륭한 덕담의 제공자가 될 수 있다. 나 자신도 내게 덕담을 들려줄 수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버킷리스트처럼 덕담의 목록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말이다.
문태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