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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집 된장을 담가라…레시피 없는 ‘내림음식’요리교실

중앙일보 2021.02.23 15:00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12)

 
“어머, 마늘을 그렇게나 많이 넣는구나!”
“맞다. 마늘은 이렇게 확실히, 많이 넣어야 된다. 어중간하게 넣으면 양념 맛이 균형을 못잡지.”
 
경주 출신인 예바라기 선생님은 강한 경상북도 방언으로 그 자리에서 되받아친다. 선생님이 애용하는 오래된 한국 놋숟가락에 간 마늘을 듬뿍 떠, 고추장이나 설탕이 담겨 있는 양념 그릇에 덜었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손끝을 주시한다. 일반적인 계량 스푼보다 두 배 정도 양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그릇에 덜어낸 마늘 양을 어림짐작으로 “4큰술이었지?” 하며 각자의 노트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곤 한다.
 
예바라기 선생님은 애용하는 오래된 한국 놋숟가락에 간 마늘을 듬뿍 떠, 고추장이나 설탕이 담겨 있는 양념 그릇에 덜었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손끝을 주시했다. [사진 pixabay]

예바라기 선생님은 애용하는 오래된 한국 놋숟가락에 간 마늘을 듬뿍 떠, 고추장이나 설탕이 담겨 있는 양념 그릇에 덜었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손끝을 주시했다. [사진 pixabay]

 
예바라기 선생님 요리교실에는 세계 어느 나라의 요리교실에 가도 나눠주는 그 ‘레시피’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설명과 선생님 손동작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전복 떡국이나 고사리와 루꼴라 샐러드, 바삭 불고기, 고추장 양념으로 무친 더덕과 돼지 항정살 볶음, 안심 육전 등 몇십 번이나 배웠는데도 늘 새로운 메뉴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김장도 몇 번이나 배웠는지 모르겠다.
 
예바라기 선생님은 서울 강남,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내곡동 숲속에서 요리교실을 열고 있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한국의 놋그릇이나 도기, 소도구 골동품을 취급하는 앤티크 숍도 운영하고 있다. 8년 전이었을까. 알고 지내던 잡지 기자가 한국요리를 자택에서 가르치고 있는 멋진 선생님이 있다고 해 함께 그 가게를 방문했다. 가게 이름이 ‘예바라기’였다. 선생님은 한국의 앤티크 조리 도구나 선반, 소반이 다닥다닥 놓인 3~4평 정도의 작은 가게 안쪽에 앉아 보자기를 꿰매고 있었다. 세미 롱보다 짧고 은은하게 빛나는, 느슨하게 컬이 들어간 머리에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내림음식’의 본래 뜻을 나름대로 해석해봤지만, 아직 선생님 요리교실에 다니기 전이어서 그랬는지 감이 잘 안 왔다.
 
“큰딸이 초등학생일 때 부산에 살았는데, 근처 시장에 있는 생선집에서 넙치를 횟감용으로 떠와 참기름으로 밑간한 밥을 동그랗게 뭉쳐서 양념을 깨끗이 씻어낸 묵은지를 썰어 올리는 거야. 그 위에 얇게 뜬 넙치살을 올려가지고, 내 식대로 넙치 초밥을 애들한테 자주 만들어줬지. 그 큰딸이 20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결혼을 했지. 지금은 딸 둘을 낳고 살고 있는데, 올여름에 미국에 있는 딸내 집에 갔더니 옛날에 내가 애들한테 만들어줬던 반찬을 거기 재료를 써서 비슷하게 만들고 있더라. 놀랐지. 결국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건 돈내고 배우는 거랑은 다르지. 딱히 가르쳐준 적도 없는 대대로 전해지는 맛이랑 마음은 모르는 사이에 전해지는 거야.”
 
아, 그런가. 대대로 전해지는 맛과 마음. ‘내림음식’은 한국의 각 지방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향토 음식이나 종가 음식, 한때 유행한 소울푸드라는 개념에 들어맞는 말이 아니다. 대대로 전해오는 맛을 재현하는 조리법의 레시피가 아닌, 그 레시피에 담긴 진수를 이어받아가는 것이 ‘내림음식’이다. 인간이 날 때부터 갖춘 오감을 잘 갈고닦아, 미각의 오미가 제대로 발달하면 이 분야에서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예바라기 선생님은 김장용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11월 초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김치 맛이 재료에 따라 변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에서다. 김장날이 되면 선생님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른다. [사진 pixabay]

예바라기 선생님은 김장용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11월 초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김치 맛이 재료에 따라 변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에서다. 김장날이 되면 선생님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른다. [사진 pixabay]

 
내곡동 숲에 낙엽이 질 무렵, 예바라기 선생님은 김장 참가자를 모은다. 예바라기 요리교실에 다니던 초창기에는 서울 시내 아파트에서 수업이 진행됐는데, 염원하던 산속 집으로 이사한 후에는 김장 수업도 하게 되었다. 선생님 가족이 먹을 김장을 담그면서 우리에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기보다 우리가 먹을 것까지 함께 담그는 것을 우리가 돕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배추는 지리산. 액젓은 빽빽이액젓. 멸치액젓으로 하면 맛이 안 난다. 고춧가루는 늘 쓰던 할머니네. 마늘이랑 가랑파(실파)는 농협에서 사면 된다. 아 맞다. 무시는 정수 무시. 이 정수 무시는 마트 같은 데서는 안 판다. 시장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경매 나왔을 때 좀 받았지.”
 
예바라기 선생님은 김장용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11월 초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김치 맛이 재료에 따라 변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 절대 제자들에게는 약한 소리를 하지 않지만, 선생님의 등근육은 늘 긴장감에 굳어 있어, 김장날이 되면 선생님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른다. 매년 대야와 김치를 보관하는 커다란 용기를 몇 개나 준비하고, 작업용 장화와 비닐 앞치마를 준비해서 가지만, 우리가 도착할쯤에는 이미 거대한 적갈색 대야에 각각의 양념이 대량으로 담겨 있었다.
 
아시아권 식문화에서는 ‘장’을 빼놓을 수 없다. 아시아 국가에는 만드는 법은 달라도 기후에 상관없이 쌀이나 콩·소금·설탕을 주원료로 만드는 발효식품이 있으며, 그 발효식품은 해당 국가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미료이기도 하다. 한국 요리에도 간장·된장·고추장·액젓·젓갈 등 다양한 발효식품이 있는데,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항아리에 담가왔다. 현대사회에서는 거주 환경과 맞벌이 등 생활 형태의 변화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이 시중에 판매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예바라기 선생님은 그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듯 제자에게도 집에서 된장이나 간장을 발효시켜 김치를 만들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르친다. 11월 말에 김장이 끝나면 선생님은 당분간 드러눕고 만다. 얼마 뒤 체력을 회복하고 영하의 날씨지만 봄이 가까워옴을 알리는 내음이 날 무렵, 예바라기 선생님은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낸다.
 
“올해는 힘드니까 된장은 패스. 그래도 고추장은 합시다!” 예바라기 선생님은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내곡동 숲속 집 앞마당의 직접 만든 가마에 고추장에 필요한 사과 물엿을 끓이기 시작한다.
 
요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레시피로는 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의 소중함, 음식의 정신. 한 입 먹으면 그로써 알 수 있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 [사진 pxhere]

요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레시피로는 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의 소중함, 음식의 정신. 한 입 먹으면 그로써 알 수 있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 [사진 pxhere]

 
예바라기 선생님의 ‘예바라기’는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의 고어다. 현재는 특정한 그릇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옛날에는 밥·국그릇, 보시기, 종지, 접시, 항아리 등의 통칭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예바라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면 일본의 근대사회에서 평생에 걸쳐 미식을 추구한 로산진(魯山人)의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제철 채소를 삶아 소금을 뿌리기만 하더라도, 좋아하는 그릇에 담기만 하면 제대로 된 요리가 된다. 하지만 예바라기 선생님은 ‘예바라기’의 뜻 안에 더욱 많은 것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레시피로는 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 대대로 전해줘야만 하는 맛, 소박한 요리 하나라도 그 가정에 전해오는 추억,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의 소중함, 음식의 정신. 한 입 먹으면 그로써 알 수 있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
 
작년 말 프랑스요리 셰프였던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하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엮은 졸저 『아버지의 레시피』가 출간되었을 때, 예바라기 선생님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 책은 문화유산. 히데코씨 아버님이랑 지금까지의 시간하고 추억이 가득 담긴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야! 부럽다. 축복이다.”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나서 훌쩍 눈물이 났다. 예바라기 선생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싶지만, 코로나 상황이라 국제 우편으로 책을 보내기만 했을 뿐, 아직 만나지 못했다.
 
결국 앞으로의 시대,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비싼 식재료로 만든 호화로운 요리보다도 각자 가정 안에서 전해내려오는 맛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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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히데코 나카가와 히데코 키친 크리에이터 필진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 요리교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소통한 이야기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제가 주인공이 되어 '음식이 왜 삶인가'를 쓰려고 합니다. 요리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들부터 가족, 친구, 연희동 동네주민들, 식재료 거래처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저의 삶, 생각, 느낌을 문장 속에 녹여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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