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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풍전등화의 심정지 환자 앞에 선 응급의사의 고뇌

중앙일보 2021.02.22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5)

냉정하게 말해 환자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오직 하나. 이제 겨우 스물이란 환자의 나이. 그것이 나의 판단을 어지럽혔다.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차마 사망 선고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사진 pixabay]

냉정하게 말해 환자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오직 하나. 이제 겨우 스물이란 환자의 나이. 그것이 나의 판단을 어지럽혔다.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차마 사망 선고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사진 pixabay]

 
고작 스무 살. 이미 두 군데 응급실을 거쳤고, 그새 3차례나 심장이 멎은 환자.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숫자였을 터. 그 이송 과정이 얼마나 처절했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손에 손을 이어 심폐소생술을 계속하였을 것이다. 그 간절함이 환자를 필사적으로 붙잡아 여기에 도착하게 하였을 것이고. 이제 내 차례였다. 모두의 의지를 이어받아야 했다.
 
환자 상태는 그야말로 풍전등화. 숨이 붙어있는 게 기적이었다. 아무리 약을 써도 혈압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대로면 오래지 않아 4번째 심정지가 찾아올 게 틀림없었다. 꺼지기 직전의 심장을 대신할 기계가 필요했다. 에크모 시술을 하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터.
 
하지만 시술 여부를 두고 고뇌에 빠졌다. 환자 상태가 너무 비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멎은 시간만 무려 1시간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받고 회복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차여차 몸은 살리더라도 머리는 죽을 게 뻔했다. 혈액검사도 뇌 영상 검사도 최악이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의 소견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 냉정하게 말해 환자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오직 하나. 이제 겨우 스물이란 환자의 나이. 그것이 나의 판단을 어지럽혔다.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차마 사망 선고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가망이 없습니다. 심장이 멎은 시간이 너무 길어요. 아무리 잘해도 뇌사나 식물인간밖에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할 거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스무 살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인 부모는 본 적이 없으니까. 그저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전달할 뿐이다.
 
“그래도 일단 시술은 해보겠습니다. 나이가 너무 젊어서 차마 포기하란 말은 못 하겠네요. 하지만 이건 알아두세요. 단 며칠입니다. 그 안에 회복되지 않으면 기계를 강제로 끌 겁니다.”
 
설명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뭐가 됐든 다 해달라고만 했다. 됐다. 그거면 됐다. 어차피 이 상황에 정확한 설명은 사치다. 일단 환자를 살리고 보자. 급히 시술을 준비했다.
 
“가망 없는 환자인데 정말 시술하실 건가요? 삭감될 텐데요.”
 
우려 담긴 전공의의 한마디가 폐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미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던, 억지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그걸 굳이 들쑤시는 전공의가 미웠다. 하지만 누굴 탓할쏘냐? 내가 그렇게 가르쳐왔는데.
 
“미안하다. 나도 인간이라 어쩔 수가 없네. 살면서 어떻게 맞는 일만 하고 살겠냐?”
 
심근경색으로 실려온 80대 환자. 총 심정지 시간은 벌써 80여 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은 건 사망 선고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하지만 환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사진 pixabay]

심근경색으로 실려온 80대 환자. 총 심정지 시간은 벌써 80여 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은 건 사망 선고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하지만 환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사진 pixabay]

 
반나절쯤 지나 또 한 명의 환자가 이송됐다. 심근경색으로 심장이 멎은 80대 환자였다. 30분 넘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회복되지 않아 에크모 시술을 위해 전원한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나이가 너무 많았다. 이송까지 더한다면 심폐소생술 시간도 1시간을 훌쩍 넘을 터. 이번에도 역시 가망이 없었다.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 굳이 시술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수화기 너머 의사는 생각이 달랐다.
 
“저도 웬만하면 그렇게 판단할 텐데요. 환자를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의뢰한 의사의 예언은 적중했다. 환자는 심장이 멎은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쭉 받으며 응급실로 들어섰다. 총 심정지 시간은 벌써 80여 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은 건 사망 선고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하지만 환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힘차게 가슴을 누르자 환자는 번쩍 눈을 뜨고 아프다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가슴 압박을 멈추는 순간 눈을 감고 죽은 상태에 빠져들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내내 살고 죽기를 반복했다. 비록 심장은 멎었지만, 가슴 압박으로 뿜어진 피가 머리까지 원활히 돌고 있음을 뜻했다. 환자는 아픔을 표시할 정도로 의식이 온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걸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건 차마 할 수 없었다. 나는 또다시 두 번째 에크모 시술을 준비했다.
 
“이번 환자는 살릴 수 있는 환자일까요?”
“아니. 나이도 많고. 심정지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려울 거 같다. 머리고 뭐고 간에 애초에 몸을 살릴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심장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고.”
“가망 없는 시술이면 안 해야지 않을까요? 하루에 두건이나 삭감당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근데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데 거기다 대고 죽었다고 선고하기가 무척 어렵네. 머리로는 아는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너희는 나중에 나처럼 이러지 마라.”
 
착한 전공의는 우유부단하게 환자에게 휘둘리는 교수를 단 한마디도 탓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시술을 도왔다. 그것이 고마웠다. 고민은 나중에. 환자가 눈앞에 있었기에.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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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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