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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10만 마일'로 日에 맞섰던 승부사…정몽구의 퇴장

중앙일보 2021.02.21 14:30
정몽구(왼쪽 둘째)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신종운(왼쪽 셋째) 전 부회장과 공장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정몽구(왼쪽 둘째)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신종운(왼쪽 셋째) 전 부회장과 공장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정몽구(83)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오는 3월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사내 등기이사직을 사임한다. 정 명예회장은 2019년 3월 현대모비스 임시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 재선임돼 2022년 3월21일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이로써 정 명예회장은 1998년 현대차 회장에 오른 이후 23년 만에 그룹의 모든 경영에서 사실상 손을 떼게 됐고, 아들인 정의선 회장 시대의 연착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23년 만에 현대차 경영서 물러나  

21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정 명예회장의 사내 등기이사 자리에 고영석 연구개발(R&D) 기획운영실장(상무)을 추천했다. 상무급 임원을 사내이사로 추천한 건 현대모비스에서 처음 있는 일로 직급보다 전문성을 고려해 이사회를 구성하겠다는 취지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8일 공시를 통해 “고영석 상무와 김대수 고려대 교수, 조성환 사장, 배형근 부사장 등 4인에 대한 이사선임 안건을 정기 주총에 상정한다”고 밝혔다.
 
1991년 현대정공이 출시했던 '갤로퍼'는 프레임타입의 정통 지프차량으로 아직까지 마니아층 인기를 얻고 있다. [중앙포토]

1991년 현대정공이 출시했던 '갤로퍼'는 프레임타입의 정통 지프차량으로 아직까지 마니아층 인기를 얻고 있다. [중앙포토]

현대정공이 전신인 현대모비스는 정 명예회장 입장에선 각별한 회사다. 정 명예회장은 1977년 컨테이너와 H빔 제조가 주력인 현대정공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특히 1991년 SUV인 갤로퍼를 출시해 성공시키며 부친인 고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고, 결국 1999년 작은 아버지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에게서 현대차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현대정공은 3년 뒤인 2002년 '현대모비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자동차 부품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MK식 '부품 모듈화'…품질 앞세워 세계 5위

정 명예회장은 20년 넘게 현대차그룹을 이끌며 '품질 경영'을 강조했다. 현대모비스는 그 전진기지였다. 모비스가 부품 수십 개를 묶어서 모듈 형태로 생산한 다음, 현대차가 이를 조립하는 '모듈화 전략'은 2010년대 들어 현대차·기아가 전 세계 '빅 5'(판매량 기준)로 올라서는 원동력이 됐다. 숙련공 근로자가 부족한 한국 현실에서도 품질 높은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됐다. 2만~3만여개에 달하는 각종 부품은 샤시, 운전석, 도어, 시트 등 10여개 모듈로 간단해졌고 그만큼 차량의 품질도 높아졌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실시한 '10년, 10만마일 무상보증(어슈어런스)'은 정 명예회장의 승부사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꼽힌다. 당시 일본 도요타가 5년, 6만 마일을 보장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10년, 10만 마일 보증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또 그룹 R&D 거점인 남양연구소를 설립해 핵심 기술을 자체 확보했고, 미국에선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헌액되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디자인센터를 방문해 현지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디자인센터를 방문해 현지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차]

현대모비스 주총이 예정대로 끝날 경우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등기 이사직을 모두 내려놓게 된다. 정 명예회장은 2014년에는 현대제철, 2018년 현대건설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3월 현대차 주총 직후 열린 이사회에선 21년 만에 이사회 의장직을 정의선 당시 수석부회장에게 넘겨줬다. 같은 해 10월에는 정의선 부회장이 회장직에 취임하면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직도 함께 내려놨다. 
 

정의선, 이사회 중심 경영 가속화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회장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보다 가속화할 계획이다. 이사회에 여성을 참가시키고, 사외이사의 권한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모비스는 다음 달 주총에서 첫 여성 사외이사 후보로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추천했고, 기아는 조화순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를 확립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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