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졸속 계획에 주민 반발, 일부 신도시도 사업 지연 불가피

중앙선데이 2021.02.20 00:39 724호 5면 지면보기

[SUNDAY 진단] 표류하는 부동산 공급

“집 사지 말고 기다려라.” 문재인 정부 말기 부동산 정책에서 강조한 시그널이다. 주무부처 장관은 물론 부총리, 대통령까지 연일 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테니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주택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20·30대 젊은층까지 ‘패닉바잉(공포 매수)’에 나서 집값이 급등하자 규제 일변도에서 태세 전환에 나선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2·4 대책(83만6000가구 공급 계획)과 이미 발표한 물량 등을 합산하면 2025년까지 205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된다”며 “비상한 각오로 이번 특단의 공급 대책을 반드시 달성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릉·과천 등 국·공유지 개발 계획
걸림돌 많아 지구지정조차 못 해

재건축 단지들, 민간 주도로 추진
“계획적·체계적 공급” 목소리 높아

2·4 대책을 포함해 정부의 주택 공급 기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청년·신혼부부·저소득층 등을 위한 공공임대 확대와 집값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분양주택 확대다. 공공임대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105만2000가구를 공급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엔 당초 계획보다 63만 가구를 추가한 로드맵2.0을 발표했다. 로드맵2.0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의 전체 주택 대비 공공임대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8%)을 넘어서게 된다. 전문가들은 “집값과 상관없이 취약계층의 주거 복지를 위해 공공임대를 부지런히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분양주택 확대 정책은 크게 신도시 등 공공택지개발사업과 국·공유지 및 유휴지 개발, 재개발·재건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가장 빨리 다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게 신도시다. 정부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수도권 5개 신도시와 크고 작은 택지 26곳을 발표했다. 이곳에서 총 30만 가구를 공급한다. 2·4 대책에선 공공택지 15~20곳, 26만3000가구를 추가키로 했다. 서울 태릉골프장,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부지 등지에서 3만여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고, 공공 주도의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20만 가구 정도를 공급할 방침이다.
 
계획만 보면 집값 걱정은 접어둬도 될 듯하다. 공급이 충분히 이뤄진다면 집값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공급 확대책이 잘 추진되고 있느냐다. 우선 태릉골프장과 같은 국·공유지나 유휴지 등 도심 내 공급 계획이 순탄치 않다. 주민 반대로 지역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이 반발하면서 사업이 지연하는 예가 많다. 과천 정부청사는 시민들이 시장 주민소환 투표까지 준비하고 있다. 시장이 사업 반대에 앞장서왔는데, 정부가 개발을 위해 지자체와 협의 중이라고 발표하면서다. 과천시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주민소환 추진위원회에 소환청구인대표자 증명서·서명부를 발부했다. 요건을 만족한다면 6월쯤 투표가 이뤄진다.
 
과천보다 공급 물량이 더 많은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개발도 상당 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대한항공 간 3자 매각이 물거품이 된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는 대한항공이 소유한 서울 종로구 땅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매입을 추진했고, 국민권익위원회 중재 하에 LH가 송현동 땅을 사들인 후 다시 서울시 땅인 면허시험장과 바꾼다는 구상을 구체화해왔다. 그러나 마포구와 서울시의회 반대로 LH가 발을 빼면서 서울시 구상이 틀어졌다. 지난해 8·4 대책에서 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던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도 주민 반대 등으로 아직 지구지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도심 내 또 다른 공급 축인 공공재개발·재건축도 삐걱대고 있다. 공공재개발만 시범지구(8곳)를 지정하고 사업에 착수한 정도다. 정부가 공공재건축으로 눈독을 들였던 서울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공공’이 아닌 기존대로 민간 재건축을 서두르고 있다. 1만 가구가 넘는 서울 압구정동 6개 구역 중 4구역은 최근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나머지 구역도 이미 신청을 했거나 곧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2만7000여 가구의 목동신시가지 단지도 속속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대규모 재건축 단지인 마포구 성산시영, 노원구 상계주공 등이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목동의 한 재건축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공공 주도의 재건축엔 관심이 없고 당초 계획대로 (민간) 재건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건 신도시 등 공공택지 정도다. 정부는 7월 인천 계양 1100가구를 시작으로 3기 신도시 등지에서 사전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일부 신도시는 사업 지연 가능성도 있다. 인천 계양에선 최근 문화재가 다량 발견돼 문화재청이 사업 시행자인 LH와 인천도시공사에 보존대책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 정밀발굴조사의 사전 단계인 표본조사와 시굴조사가 3월부터 1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그만큼 사업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사전청약도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등지는 보상가를 두고 토지주와 대립하고 있다. 중소 공공택지 중 한 곳인 성남시 서현지구는 최근 지구 지정 취소 판결이 나왔다. 개발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4 대책이 제대로 추진되겠느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을 늘리겠다는 건 긍정적이지만 공급을 더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관련기사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