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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모르는 ‘찐 무명’ 노래꾼들, 대중음악 판을 뒤집다

중앙선데이 2021.02.20 00:02 724호 2면 지면보기

[SUNDAY 인터뷰] JTBC ‘싱어게인’ 주역 정홍일·이무진

두 사람은 방송 이미지 그대로였다. 정홍일은 ‘서윗하게’ 분위기를 맞춰갔고, 똘끼 충만한 이무진은 뻔하지 않은 대답만 했다. 박종근 기자

두 사람은 방송 이미지 그대로였다. 정홍일은 ‘서윗하게’ 분위기를 맞춰갔고, 똘끼 충만한 이무진은 뻔하지 않은 대답만 했다. 박종근 기자

천편일률은 위험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들리는 트로트가 어느새 흥겹지 않고 지겨워지는 것은 획일화에 대한 경고일 터다. “여기 다른 음악도 있소”라며 외로운 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낸 JTBC의 ‘싱어게인’의 가치가 돋보이는 이유다. 재야의 음악 고수들이, 영화·드라마 OST로만 알려진 얼굴 없는 가수들이, 홀로 선 아이돌들이, 그리고 거리의 ‘찐 무명’ 노래꾼들까지 71팀이 한 자리에 모여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자신만의 색깔로 자웅을 겨뤘다.
 

반전의 샤우팅 ‘선비메탈’ 정홍일
한국 록, 클럽문화밖에 없어 힘들어
트로트만 빼고 다양한 음악 하고파

유튜브 1700만 뷰 ‘음색 깡패’ 이무진
톤메이킹 연습 오래 해 색깔 찾아
최대한 안 휘둘리고 덜 타협할 것

각각 29호와 63호였던 준우승자 정홍일(45)과 3위 이무진(21)은 첫 무대부터 팬덤을 구축하며 일찌감치 화제를 예고했다. 정홍일은 “내한 공연을 보는 듯했다”는 심사위원의 격찬을 들은 정통 헤비메탈 가수. 목사님 같은 차분한 말투지만 반전의 허리케인급 샤우팅으로 ‘선비메탈’이란 별칭도 얻었다. 첫곡 ‘누구없소’로 유튜브 1700만 뷰를 목전에 둔 이무진은 기타를 메고 ‘돌격 앞으로’ 자세를 취하며 패기를 뽐냈다. 최연소 참가자지만 자기 음악을 확실히 내세운 ‘음색 깡패’다.
 
16일 오후 자리를 함께한 두 사람은 첫 경연 당시 서로에게 느낀 강렬함을 토로했다. “무진이가 스타트를 끊었는데, ‘여보세요’ 첫 소절은 모든 참가자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됐죠. 처음부터 저렇게 하면 뒤에는 다 쫄아서 어떻게 하나 싶었어요.(웃음)”(정) “형님이 새벽 2시 마지막 차례였거든요. 졸다가 깨보니 ‘그대는 어디에’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아, 저렇게 부르니 내가 깼구나 했죠.(웃음) 그 새벽에 그런 알맹이 있는 소리를 내다니 내공이 엄청난 분이구나 싶었어요.”(이)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이들은 둘 다 ‘올 어게인(심사위원 만장일치 합격)’으로 출발했지만 각각 한 번씩 탈락 위기를 겪으며 드라마틱하게 톱 3에 올랐다.
 
정홍일 “콘서트에선 100% 보여줄 것”
 
‘싱어게인’ 톱10라운드에서 조용필의 ‘꿈’을 부르는 이무진. [사진 JTBC]

‘싱어게인’ 톱10라운드에서 조용필의 ‘꿈’을 부르는 이무진. [사진 JTBC]

정홍일은 1998년 데뷔해 지금까지 부산·경남 일대에서 활동해왔다. 그가 오래 몸담았던 헤비메탈 밴드 ‘바크하우스’는 직장인 밴드로 시작했지만,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직장을 다녔다”고 했다. 음악을 적당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키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버텨야 했다. 밴드 활동과 병행해 음악학원을 운영했고 사무용품 관련 사업도 했다. 통기타를 치던 부인은 영어 강사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며 뮤지션 남편을 내조하고 응원했다. 서울도 아닌 지역에서, 비주류인 헤비메탈을 고수해온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그럼에도 그는 “음악 인생이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즐겁게 살고 싶어도 힘들잖아요. 그런 정도죠. 록커들이 고민은 많아요. 무대 위에서 한 소절만으로 객석이 같이 뛰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터득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밴드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까지 과정이 험난합니다. 저는 항상 막내여서 제 생각은 그냥 내려놓아야 했죠.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거든요. 기타 리프 하나에 다 같이 들썩이는 그 에너지 때문에 지금껏 록을 했어요. 그걸 고스란히 음반으로 전달하는 프로듀싱 능력은 또 다른 건데, 한국 록 음악은 아직 클럽 문화 밖에 없어 아쉽죠.”
 
서울로 굳이 와야 할 명분이 없어서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정홍일은 “전부터 다양성을 보여주는 콜라보 공연을 많이 해왔고 호응도 좋았는데, 서울에서 여러 경험을 쌓아 지역을 살리는 콘텐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톱10라운드에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OST ‘마리아’를 부르는 정홍일. [사진 JTBC]

톱10라운드에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OST ‘마리아’를 부르는 정홍일. [사진 JTBC]

2016년 ‘K팝스타’ 출전 당시 1라운드에서 통편집 당했다는 이무진은 그간 칼을 간 모양새다. 2018년 ‘고양 보이스’ 대회에서 입상해 고양시 소재 웹툰 OST 앨범인 ‘메마뮤 보이스 시즌3’에 삽입한 곡 ‘산책’을 들어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득음이라도 한 걸까. “음색을 타고나는 건 아니니까요. 노래할 때 어느 공간을 울려 소리를 내고 어느 정도 밀도를 사용해야 된다는 톤메이킹 연습을 오래 했어요. 듣기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주변 피드백도 받고 레슨도 받으면서 천천히 색깔을 찾았죠. 사실 ‘누구없소’도 편곡 기간까지 6개월 가량을 준비했어요. ‘유비무환’이라고, 준비 잘해서 내가 잘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긴장이 전혀 안 되거든요.”
 
정홍일이 동갑내기 부산사나이 김준휘(10호)와 팀을 이뤄 이무진·이승윤(30호) 조와 대결한 팀 경연 무대는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10호와 29호는 심장을 울리고 30호와 63호는 심장을 뛰게 했다’는 댓글의 표현대로 멋진 대결을 펼쳤지만, 재간 넘쳤던 젊은 조가 이겼다. 최종 우승자이기도 한 이승윤은 ‘장르가 30호’라 불릴 정도로 색깔을 규정하기 힘든 경계인. 그에 대해 두 사람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 형은 되게 요상한 사람이에요. 아이보리 맨투맨에 남색 수면 바지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조합을 즐기죠. 그걸 ‘인디씬 비주류’ 장르라 하는데, 형은 그 비주류스러운 편곡을 자기 스타일로 밀고 가면서 대중성을 확보했으니 대단하단 거죠.”(이) “아티스트 면모가 있는 멋진 친구예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원석인데,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그 원석을 깰 때 아픔도 있겠죠. 그걸 견뎌내면 정말 멋진 다이아몬드가 될 거라 생각해요.”(정)
 
이무진 “다양한 음악이 들리는 시장 됐으면”
 
‘싱어게인’의 미덕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실력파 가수들에게 설 자리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정홍일은 이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속하게 된 자체가 너무나 큰 혁명”이라며 “뉴스에 나가 샤우팅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하나씩 틀을 깨는 모습이 ‘싱어게인’의 취지가 아니었을까”라고 헤아렸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싱어게인’이 평균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대중문화의 본질적 특성을 따르지 않고 모험에 나섰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댄스 뮤직·발라드·트로트라는 협소화 된 틀을 가진 다른 오디션과 달리 ‘장르 불문, 나이 불문’으로 틀을 깬 콘셉트였기에 정홍일, 이승윤 같은 비주류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됐다”는 것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주류 음악이 요구하는 틀로 다듬어가지 않고 오히려 자기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라고 참가자들을 북돋웠던 점도 기존 오디션과의 차별점이다. 이 평론가는 “이무진이 ‘K팝스타’에서 잘됐다면 평범한 발라드 가수로 다듬어졌을 것”이라며 “안정된 이윤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여러 취향의 비주류를 아우르는 실험 덕분에 뮤지션들이 자유롭게 실력을 펼치고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와 경제 침체로 모두가 우울해진 상황에서 시청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싱어게인’이 종편 예능으로선 이례적인 시청률 11%를 돌파한 이유다.
 
대세만 따르던 우리 음악 시장에 ‘싱어게인’이 조금은 균열을 낸 것일까. 뮤지션들이 각자가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은 과연 올까. “활동하고 있는 무대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다 보면 기회가 올 겁니다. 공연이나 음반 제작을 돕는 지원 사업도 있는데, 뮤지션들이 서류 작성에 약해요. 본인들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런 환경이 좀 수월해지면 좋겠어요.”(정) “제가 가장 응원했던 참가자가 36호 ‘더레이’님이었어요. 그동안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발라드를 계속 불러야 했는데, 최근에 힙합 알앤비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제 진짜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하게 되셨다고 해서 응원하고 있어요. 음악 시장이 다양해지기 위해서는 듣는 이도 다양해져야 할 것 같아요. 리스너들이 그런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
 
파이널 무대에서 마그마의 ‘해야’를 부르며 록의 정체성을 포효했던 정홍일과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모던록 장르로 편곡해 선보인 이무진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물었다.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jtbc 싱어게인에서 각각 2위, 3위를 차지한 정홍일(오른쪽), 이무진이 16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버킷리스트처럼 살면서 가보고 싶은 ‘음악의 여행지’들이 있는데, 원곡이 블루스인 곡을 U2나 콜드플레이의 음악처럼 편곡해 보는 게 그중 하나였죠. 홍일 형님처럼 뚝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안 휘둘리고 덜 타협하려 해요. ‘싱어게인’에서도 ‘K팝스타’ 때보다 줏대가 생기고 휘둘리지 않아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이) “록커로서 뿌리를 간직할 수밖에 없지만, 저도 다양한 시도를 할 겁니다. 댓글을 보면 제게 록의 부흥을 책임지라고들 하시는데, 저는 여러 음악을 다 해보고 싶거든요. 트로트만 빼고요.(웃음) 경연이라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70%밖에 못 보여드린 것 같은데, 3월부터 ‘싱어게인’ 톱10과 함께 하는 콘서트 무대에서는 100%를 보여드리겠습니다.”(정)
 
자신이 낭중지추(囊中之錐)임을 이번에 증명한 무명 가수가 어디 이 둘뿐이랴. 다시 노래하게 된(sing again) 그들은 이름과 무대를 얻었고, 우리는 가수를 얻었다(singer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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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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