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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학자·테러 지도자들 제거 ‘미션 임파서블’ 전사

중앙선데이 2021.02.20 00:02 724호 16면 지면보기

[세계를 흔든 스파이]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메이르 다간

모사드 11대 국장 메이르 다간의 집무실에 걸렸던 외할아버지 수난 사진.

모사드 11대 국장 메이르 다간의 집무실에 걸렸던 외할아버지 수난 사진.

1971년 늦여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해안. 파도를 뚫고 막 도착한 낡은 배에서 건장한 남자 몇 명이 황급히 내렸다. 뒤쫓아온 이스라엘군 어뢰정에서 막 발포하려는 순간, 이들은 주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숨겼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레바논 난민촌에서 가자 지구에 전달할 돈과 무기를 싣고 온 팔레스타인 동포 사절이라고 소개했다. 사절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주민들에게 무기를 전달하겠다며 현지 무장 조직원들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무장 조직원들이 모이자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32년간 수차례 참전, 군 출신 무골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임무 수행

나치에 피살 외조부 사진 걸어놓고
“이런 일 안 일어나게 할 것” 채찍질

하마스 지도자 등 잇단 ‘참수 작전’
테러리스트 사전에 적발하기도

“모두 모였습니까?”
 
“네. 전원 모였습니다. ”
 
모사드 11대 국장 메이르 다간.

모사드 11대 국장 메이르 다간.

그 순간 사절들이 들고 있던 자동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이스라엘군 특수부대의 위장 작전이었다. 무장 조직원들이 모두 쓰러지자 이들은 가자지구 난민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복잡한 거리를 능숙하게 통과해 이스라엘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작전의 현장 지휘관이 나중에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의 11대 국장이 된 메이르 다간(45~2016년, 재임 2002~2011년)이다. 이런 다간은 모사드의 야성을 되살린 스파이 수장으로 평가받는다.
  
모사드 야성 되살린 스파이 수장 평가
 
다간 국장은 군 출신이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67년 ‘6일전쟁’에 참전했다. 71년에는 위장 작전을 수행하는 비밀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수류탄을 든 적을 제압해 용맹 메달을 받았다. 위의 사례도 이 부대 근무 시절의 작전이다. 73년 ‘욤 키푸르 전쟁’ 때는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역습에 참여했다. 82년엔 기갑여단장으로 ‘레바논 전쟁’에 참전해 베이루트에 가장 먼저 입성했다. 32년 군 복무 뒤 소장으로 전역하고 총리 대테러 보좌관과 국가안보 고문으로 일했다.
 
다간은 2002년 8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으라는 아리엘 샤론 총리의 특명을 받고 모사드 국장에 부임했다. 전임 에프라임 할레비 국장은 훌륭한 외교관이자 정보 분석가였지만 샤론 총리는 증가하는 아랍권 테러와 이란 핵 위협에 대항할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전을 원했다.
 
82년 군 시절(가운데). [이스라엘 정부·군 공보실]

82년 군 시절(가운데). [이스라엘 정부·군 공보실]

다간은 정보 분석이나 외교 업무 대신 위험하고 과감한 ‘미션 임파서블’ 공작과 작전으로 모사드의 활동 중심을 옮겼다. 그가 ‘모사드의 활력과 명예를 회복한 남자’라는 평가를 얻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부임하자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무장단체의 핵심 인물이 사라졌다. 시리아의 핵 시설이 파괴돼 이스라엘은 더욱 안전해졌다.
 
다간이 재임하는 동안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도자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뱀머리 참수 작전’의 목표물이 됐다. 2004년 2월 12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2인자 이마드 무그니예가 자동차 폭탄으로 숨졌다. 이란대사관이 주최한 혁명 29주년 기념 연회에 참석했다가 귀가를 위해 차량으로 접근하던 중 폭탄이 터졌다. 모사드는 2004년 8월 31일 민간 버스에서 폭탄이 터져 16명이 숨지자 ‘눈에는 눈’ 식의 보복에 나섰다. 헤즈볼라 고위 군사 지도자 에제딘 할릴은 다마스쿠스에서 2004년 9월 26일 원격 조종 폭탄이 터지면서 숨졌다.
 
다간의 재임 시절 눈에 띄는 것은 적대국의 핵 시설과 개발 책임자, 과학자가 타격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2007년 9월 6일 시리아 동부에 있던 데이르에즈조르 핵 시설이 이스라엘 공군기의 정밀 폭격으로 파괴됐다. 모사드가 사전 정찰과 침투를 통해 목표물을 정확하게 지목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작전이다. 2008년 8월 1일엔 시리아 핵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대통령 전략무기 자문관인 무함마드 술레이만이 해안 리조트에서 쉬다 소음 무기로 두부를 정확히 가격당해 숨졌다. 이란과 시리아 매체는 일제히 모사드가 사전에 위치를 파악해 이스라엘 해군 특수부대인 사예트13에 알려줘 작전이 이뤄졌다고 추정했다.
  
네타냐후 “과감한 모사드 수장이었다”
 
2016년 3월 네타냐후 총리, 리블린 대통령, 페레스 전 총리·대통령(가운데 빨간 넥타이 남성부터 오른쪽으로)이 다간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군 공보실]

2016년 3월 네타냐후 총리, 리블린 대통령, 페레스 전 총리·대통령(가운데 빨간 넥타이 남성부터 오른쪽으로)이 다간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군 공보실]

다간은 적의 공격을 막는 데도 공을 세웠다. 재임 중 모사드는 외국인 테러리스트를 사전에 적발해 사살하고, 민간인을 노린 4건의 테러를 예방한 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공적은 모두 비밀이기 때문에 ‘추정’으로 표현한다. 다간은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조직·정보·작전에서 대대적인 자체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기밀이다. 비밀 작전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다간은 군이든, 모사드든 자신이 근무하는 공간에 항상 커다란 사진을 걸었다. 유대 노인이 몽둥이와 권총을 손에 든 나치 장교 앞에 꿇어앉은 사진이다. 노인은 그의 외할아버지로 사진 촬영 직후 나치에 살해됐다. 다간은 홀로코스트 희생자 가족이다. 그는 이 사진을 눈앞에 걸어두고 군인으로서, 정보 기관장으로서 자신을 항상 채찍질했다. 다간은 2010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행진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동안 나치에 살해되기 직전에 찍힌 외할아버지 사진과 항상 함께했다. 나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했으며,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권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기를 희망했고 그랬다고 믿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다간은 모사드 국장으로 장기 재임하며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임무에만 열중하는 전통을 제대로 살렸다는 평가다. 그는 우파 리쿠드당 소속 아리엘 샤론(2001년~2006년 재임) 총리 재임 중 국장을 맡아 정권이 바뀐 뒤 중도 카디마당 소속 에후드 올메르트(2006년~2009년 재임) 총리를 거쳐 다시 리쿠드당 소속 베냐민 네타냐후(2009년~현재) 총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2016년 3월 그의 장례식에는 네타냐후 총리와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 시몬 페레스 전 총리·대통령이 참석해 마지막 길을 끝까지 지켜봤다. 네타냐후 총리는 “메이르는 과감하고 선구적이며 획기적인 모사드 수장이었다”며 “위대한 전사가 떠났다”고 추모했다. 리블린 대통령은 “용감하고 창의적이며 헌신적인 전사”라며 그를 기렸다. 용감한 군인으로 경력을 시작한 다간은 이제 음지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다간 퇴임 뒤에도 이란 핵 과학자 암살 이어져
메이르 다간이 모사드 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이란에선 핵 과학자 3명이 의문의 사고로 숨지거나 중상을 입었다. 2007년 1월 15일 이란 중부 시라즈에서 핵 과학자 아르데시르 호세인푸르가 숨진 사건이 시작이었다. 처음엔 사인이 난방기에서 샌 가스 중독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미국 민간정보 업체인 스트래트포는 그해 2월 펴낸 보고서에서 호세인포르가 오랫동안 모사드의 표적이었으며 방사성 물질 중독으로 숨졌다고 주장했다.
 
2010년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자동차 옆에 세워둔 모터사이클이 폭발하는 사고가 1월 12일에 1건, 11월 29일에는 서로 다른 2곳의 장소에서 각각 터졌다. 차에 타려던 핵 과학자 마수드알리모하마디와마지드샤흐리아리 등 2명이 숨지고 페레이둔아바시가 중상을 입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란 핵 과학자 암살이 다간이 퇴임한 뒤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7월에는 국가안보 관련 일을 한다는 물리학자 다리우시레자아이네자드가 테헤란에서 모터사이클을 탄 남자로부터 5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2012년 1월 11일에는 이란 핵 과학자 모스타파아미디로샨이 은색 푸조405 승용차를 몰고 출근하다 모터사이클에 탄 남자들이 차량에 폭탄을 부착한 9초 뒤 폭발로 숨졌다. 누가 봐도 프로들이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작전이다. 로샨은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이며 핵 개발 핵심이었다.
 
2020년 11월 27일에는 테헤란 교외에서 핵 과학자 모센파크리자데가 자동차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란 매체들은 모사드가 외국에서 부품을 하나씩 밀수해 조립한 원격조종 총기를 이용했다고 추측했다.
 
주목할 점은 다간이 퇴임 뒤 핵 개발 의혹을 받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에는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실전을 겪어본 그는 외교든 공작이든 사이버 공격이든 다른 방법을 모두 써본 뒤 최후의 수단으로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벌였던 피의 작전들은 국민이 피를 흘리는 걸 막기 위한 예방책이었던 셈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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