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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그만둘 각오해야"…운동부 학폭신고 6개월간 10건뿐

중앙일보 2021.02.19 05:00
교육부 전경 [뉴시스]

교육부 전경 [뉴시스]

 
교육부가 초·중·고 학생 선수의 폭력 피해를 알릴 수 있는 온라인 신고센터를 지난해 마련했지만, 실제 신고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 인증없이 익명으로 신고가 가능한데도 스포츠계에서 선배나 지도자에 대한 폭로는 여전히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고(故) 최숙현 선수가 코치와 선배들로부터 상습적인 폭력을 당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교육부는 학생 선수 폭력 전수조사에 나서고 8월부터는 교육부 온라인 신고센터를 대책으로 내놨다. 18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신고 현황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고는 총 15건뿐이다. 그나마 5건은 신고자와 내용이 같은 중복 사건이라 사실상 6개월간 10건만 접수된 셈이다.
 

맞아도 괜찮은 척 웃고 넘어가…80%가 소극적 대처

접수된 10건 중 8건은 지도자나 선수에 대한 행정조치로 이어졌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선수 지도자는 상습적으로 강도 높은 언어폭력을 사용했던 게 드러나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임됐다. 강원도의 한 중학교 지도자는 검찰 조사도 받고 있다. 후배에게 상습적으로 욕을 하고 협박을 한 서울의 한 고교 선수도 신고를 통해 운동부 활동을 못하게 됐고, 전남의 한 중학교 선수는 특별교육을 받는다.
 
배구선수 이다영(왼쪽)과 이재영. 연합뉴스

배구선수 이다영(왼쪽)과 이재영. 연합뉴스

 
최근 드러난 배구계 학교 폭력 사건으로 운동부 학교 폭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선수가 피해를 입은 당시에 신고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최근 논란이 된 이재영, 이다영 선수의 학교 폭력 사건도 10년이 지나서야 폭로 글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학생 선수 5만755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 선수 중 15.7%가 언어폭력을, 14.7%가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성폭력 피해도 3.8%로 적지 않았다. 신고하는 학생보다 그렇지 않은 학생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신체폭력을 당한 학생들은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괜찮은 척 웃고 넘어가는 '소극적 대처'가 대부분이었다. 중학생의 78.6%, 고등학생의 80.8%가 소극적 대처를 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최숙현 선수 사건 이후 교육부가 운동부 폭력 사건을 더 찾아내기 위해 선수 5만9401명을 전수조사 했지만 드러난 가해자가 519명에 그친 것도 이러한 소극적 대처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고 저조한 배경엔…폭력에 무기력해진 아이들
"엄마가 운동할 때 똑바로 잘 하지 왜 맞았냐고 했다(초등 수영선수)" 
"상담센터 가서 맞았다고 얘기하면 그 선생님한테 이야기 들어갈 것 같았다(중등 펜싱선수)" 
"3학년 형들 일 년 남았는데 그냥 참으라고 하더라(고등 축구선수)"
-2019년 국가인권위 조사 내용 중 일부
 

그만둘 각오해야 신고…“학생 선수에 온정적 경향도 문제”

지난해 12월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해학생 전담기관의 교육부 직접 운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해학생 전담기관의 교육부 직접 운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인권위가 개최한 학생선수 인권실태 토론회에서 김은희 고양테니스아카데미 코치는 “스포츠계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즉시 신고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피해 사실을 발설하고 사건화를 시키는 문제는 피해 선수가 운동을 그만둘 각오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를 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현수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은 ‘학생 선수 스포츠인권 정책 분석과 개선방향’ 논문을 통해 “학생 선수일 경우에는 처벌보다는 계도나 훈계를 선호하는 온정주의적 경향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신고를 하지 않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운동부 학교 폭력이 논란이 되자 교육 당국은 뒤늦게 제도 정비에 나섰다. 우선 시·도마다 다른 학교 운동부 지도자 징계 기준을 통일할 계획이다. 언어폭력, 성폭력, 신체폭력 등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정도에 따라 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폭력으로 전학 조치까지 받은 선수는 다른 학교로 옮기거나 상급학교로 진학해도 체육특기자가 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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