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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총수들 일제히 ESG 외쳤는데···한국엔 G 없는 이유

중앙일보 2021.02.19 05:00 경제 3면 지면보기
경기도 시화반월 국가산업단지 전경. 국내 기업 등을 중심으로 올해 초부터 ESG가 기업 경영 핵심으로 떠올랐다. 사진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도 시화반월 국가산업단지 전경. 국내 기업 등을 중심으로 올해 초부터 ESG가 기업 경영 핵심으로 떠올랐다. 사진 한국산업단지공단

"G는 보이지 않고 E와 S만 광풍이다." 

 
새해 벽두부터 국내 기업에 몰아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 중 유독 국내 기업이 G(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대책이 소홀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ESG경영을 내세운 해외 기업은 G에 대한 대책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E(환경)와 S(사회적 책임)에만 몰두할 뿐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이사회 의장과 대표 이사의 분리나 거수기 노릇을 하는 이사회 개혁 같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ESG는 올해 20대 기업 총수 신년사의 핵심 키워드다. SK・한화・포스코・효성 총수의 신년사가 그렇다. ESG는 신년사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SK를 시작으로 현대차와 LG 등이 ESG 채권 발행에 적극적이다. ESG 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설비 등으로 투자 분야가 제한되지만 이를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나아가 ESG 채권 발행 규모를 놓고 기업 간 미묘한 신경전도 읽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국내 기업이 내놓고 있는 ESG 전략은 환경(E)과 사회(S)에 집중된다. 거버넌스(G) 관련 대책은 '제로(0)'에 가깝다. 이렇다 할 G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글로벌 기업은 E와 S만큼이나 G를 강조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ESG의 4개 축(거버넌스・지구・사람・번영) 중 거버넌스를 첫 번째로 꼽는다.
 
기업별 ESG 점수 비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기업별 ESG 점수 비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삼성 애플에 E·S는 앞서지만 G는 뒤져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ESG 지수(index)는 200개가 넘는다. ESG가 유행하면서 지수도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평가 기관별로 정보수집 및 분석방법이 다르다 보니 결과도 사뭇 다르다. 하지만 그중 국제 신용평가 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하는 ESG 지수는 E, S, G를 각각 분리해 업종별로 묶어 발표하기에 기업 간 ESG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 
 
국내 주요 기업의 S&P ESG 지수를 비교한 결과 E, S 지수에선 글로벌 기업을 앞섰으나 G 지수에선 뒤처졌다. 삼성전자는 동일 업종으로 평가받은 애플에 비해 ESG 평균 지수에서 앞섰다. 삼성전자의 ESG 지수는 E와 S가 이끌었는데 각각 68과 48로 조사됐다. 반면 애플은 E와 S 지수가 각각 47과 7에 그쳤다. 하지만 G 지수는 애플이 30을 기록해 삼성전자(23)를 따돌렸다. 
 
자동차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대차는 일본 경쟁사 토요타를 세 분야에서 모두 앞섰으나 기아는 G 지수에서 토요타에 뒤졌다. E와 S에서 앞섰으나 G에서 쳐진 삼성전자와 비슷한 케이스다.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에 비해 세 가지 지수에서 모두 뒤졌는데 G 지수에서 순위 격차가 가장 컸다. 〈그래픽 참조〉
 
세계경제포럼이 강조하는 ESG 4가지 핵심요소. 사진 세계경제포럼

세계경제포럼이 강조하는 ESG 4가지 핵심요소. 사진 세계경제포럼

E·S에 집중?…"총수 경영이 원인"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E·S 편식에 대해 몇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그중 하나는 저탄소 사회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등 세계적인 환경 경영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는 “코로나19 등으로 친환경 이슈가 기업 경영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국내 기업도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그런 흐름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총수 중심의 기업 경영 환경이 거버넌스에 대한 무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무권 국민대 경영대 교수는 “국내 기업이 환경과 사회 등 돈을 들이면 쉽게 변화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거수기 역할에 불과한 이사회와 이사 및 감사 선임 과정에 대한 투명도를 높이지 못하면 거버넌스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ESG 중 거버넌스 지수는 국내 기업에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총수 중심으로 기업 경영이 이뤄지다 보니 거버넌스에 관심을 가진 역사가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짧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가 대표적이다. SK그룹의 지주사 SK㈜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건 불과 2년 전이다. LG그룹 지주사 ㈜LG도 그해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했다. SK㈜는 지난해 사외이사를 주축으로 한 거버넌스 위원회를 신설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개선 방안을 내놓진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회장이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다.
 
유니레버가 발표하는 윤리 경영 보고서. 정부 당국자를 만날때도 임직원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사진 유니레버

유니레버가 발표하는 윤리 경영 보고서. 정부 당국자를 만날때도 임직원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사진 유니레버

해외 기업은 이사회에 여성·인종 다양성까지 반영   

해외 ESG 평가 기관을 중심으로 매년 새로운 G 지수가 추가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해외에선 이사회 여성 이사 비율과 최고경영자(CEO) 임금 산정 방식, 로비 자금, 뇌물 방지책, 리스크 관리 등에서 거버넌스 평가 지표가 늘어났다. 당장 국내 기업에선 여성 이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5대 그룹사 주요기업(삼성전자・현대차・SK㈜・㈜LG・롯데지주) 이사회 이사 47명 중 여성 이사는 삼성전자 2명이 전부다. 이를 공시하는 기업도 없다. 
 
이와 달리 거버넌스 분야에서 앞선 사례로 거론되는 미국 유니레버는 윤리 경영 보고서 통해 자금세탁 방지선언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임직원이 해도 되는 일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 외부에 공개한다. 정부 당국자를 만날 때는 공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만나야 하며, 직무와 역할 등에 관해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새로운 거버넌스 지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은 여성 이사 비율에 더해 이제는 인종 다양성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에 비례해 거버넌스에 대한 압박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SG 경영=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영문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만이 미래 경영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다는 지속 가능 경영 철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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