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1772.8달러에 마감했다. 지난해 6월 19일 이후 최저다. 지난해 8월 최고가(온스당 2069.4달러)보다 16.7%, 올해 들어 6.5% 하락한 수치다. 불과 6개월 전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금값 3000달러 시대가 온다"며 금값 강세론에 불을 지피던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호주 시드니의 한 주조 시설에서 금괴를 만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금, 인플레 헤지 자산 맞나…올해 6.5% 뚝
지난해 상반기까지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면모가 부각됐다면 하반기에는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분산) 수요가 가격을 끌어올렸다.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책으로 강력한 '돈 풀기'에 나선 영향이다. 당시만 해도 올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값이 뛸 것이란 기대가 팽배했지만, 금값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금값이 비실대는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이다. 지난해 8월 역사적 저점(0.51%)을 기록했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장중 1.33%까지 상승했다.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경기 회복 기대가 맞물린 결과다. 금은 무이자 자산이다 보니 금리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낮아지는 측면이 있다.
국채 금리 상승·테이퍼링 우려 탓
그런데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경기 회복과 유동성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미국이 돈줄을 죌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테이퍼링은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지만, 시장의 경계감은 커지고 있다. 인플레 방어 자산으로서 금의 입지가 줄어드는 셈이다.
비트코인이 금의 대체 자산으로 부상한 것도 한몫했다. 비트코인은 발행 총량이 제한된 탓에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또 다른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여겨진다.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JP모건은 "비트코인이 금의 경쟁자로 떠올랐다"고 했다.
기관 투자자가 몰리며 비트코인은 최근 5만2000달러를 뚫는 등 파죽지세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선 돈이 빠져나가고 비트코인 관련 펀드로 자금 유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값 강세장 막 내리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1800달러 밑돌아" "2000달러대로 튈 것"
반론도 있다. 금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 탓에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 인플레이션)와 반대로 움직이는데, 실질금리의 하락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예상에서다. 명목금리인 국채금리가 좀 더 오르더라도 물가가 뛰면서 실질금리가 후퇴해 금값이 상승할 것이란 논리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발 유가 폭락에 따른 기저 효과로 3~4월 기대 인플레이션이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만 유지해도 금값은 2000달러 선까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오름세가 가팔라지면 금값이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날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1.14달러에 거래돼 1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가만 놓고 봐도 미국 소비자물가가 3%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며 "금값이 한 번 더 힘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