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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홍이 담아낸 무의 세계, 석굴암 사진 만난다

중앙일보 2021.02.18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한석홍 작가가 1986년 촬영한 석굴암 본존불과 주실 안의 존상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석홍 작가가 1986년 촬영한 석굴암 본존불과 주실 안의 존상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온화한 눈썹에 반쯤 내린 눈, 미소도 아니고 성냄도 아닌 단아한 침묵이 서린 입가. 가부좌한 두 다리와 무릎 위에 걸친 오른손 검지손가락은 살포시 땅을 가리킨다. 부처의 영광을 증명하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다는 항마촉지인 자세다. 머리 뒤로는 소박한 연화문 광배가 드리워져 있다. 깊은 명상에 빠진 무(無)의 세계가 흑백 사진을 통해 손에 잡힐 듯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기증 69점 공개
국보·보물급 도맡아 찍던 1인자
원본파일 누구나 활용할 수 있어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 내 본존불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본존불과 주실 안의 존상들)이다. 국내 문화재 사진 개척자인 한석홍(1940~2015) 작가가 1986년 촬영했다. 강렬한 명암 대비 속에 지혜와 위엄이 극치에 달한 이상적인 승리자의 모습을 포착했다. 같은 본존불을 2000년에 찍은 사진(궁륭천장과 연화천개석)에선 세 조각으로 갈라진 천장의 연꽃 모양 덮개돌(천개석)이 두드러진다. 설화에 따르면 신라의 김대성이 석굴암을 지을 때 덮개돌이 세 조각으로 갈라졌는데 그가 잠든 사이 천신이 내려와 붙여놓고 갔다고 한다.
 
고(故) 한석홍씨가 찍은 석굴암 대표사진 69점이 17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nrich.go.kr, 자료마당-기증자료)에 공개됐다. 1981년, 1986년, 2000년 세 차례에 걸쳐 촬영한 필름 1172점의 일부다. 연구소는 이 필름을 2019년부터 2020년에 걸쳐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사진집『석굴암 그 사진』을 발간했고 이 중 69점을 고화질 디지털화했다. 이번에 공개된 원본 파일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 정책’에 따라 별도의 이용허락 없이 누구든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다.
 
석굴암 주실 입구에 위치한 금강역사상(왼쪽)과 본존불 뒤쪽 십일면관음보살상.

석굴암 주실 입구에 위치한 금강역사상(왼쪽)과 본존불 뒤쪽 십일면관음보살상.

국보와 보물급 한국 문화재 사진을 도맡아 찍던 고인은 특히 실내 유물 촬영의 1인자로 불렸다. 2000년대 이전 국립박물관 도록에 게재된 국보 유물 사진 대부분을 찍었다. 1971년 국립박물관 주최 ‘호암수집 한국미술특별전’ 사진촬영으로 이 분야의 이력을 시작해 76년 한석홍사진연구소를 설립한 뒤 국내 주요 도록을 도맡아 촬영했다. 연구소의 백주현 기록연구사는 “유족들이 필름을 기증하면서 관련 연구자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고 관리 일체를 맡겨 이 같은 공개를 결정했다”고 알렸다.
 
앞서 국립고궁박물관도 고인이 1980~1990년 사이 왕실문화재를 촬영한 기증사진 310여 건을 지난해 말부터 홈페이지(gogung.go.kr)에서 공개하고 있다. 유족이 기증한 왕실문화재와 궁궐 전각 사진필름 490여 건 가운데 선별한 것들이다. 이 필름들은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신인 궁중유물전시관이나, 그 이전 문화재관리국에서 촬영한 것으로 왕실회화, 공예, 천문, 과학 관련 왕실문화재, 궁궐 전각 사진필름 등을 아우른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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