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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박범계 직보' 재가하자…신현수 "자존심 상해 못살겠다"

중앙일보 2021.02.18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설 연휴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처음 사의를 표명했을 땐 문 대통령이 수리할 뜻을 내비쳤다고 17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여권 “보선 우려, 만류로 돌아선 듯”
여권 “박범계, 문 대통령에 직보
청와대 절차 어기고 사고친 것
문 대통령, 협의된 줄 알고 재가”

신 수석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일 자신을 사실상 건너뛰고 검사장 인사안을 문 대통령에게 직보하자 9일께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알았으니 후임자를 알아보자”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튿날 신 수석을 불러 만류했고, 고심하던 신 수석은 설 연휴 직후 재차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신 수석이 아직 그만두겠다는 뜻을 스스로 거둔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4·7 재·보선에 미칠지 모를 역풍을 우려해 사의 만류 쪽으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사의를 만류한 것으로 안다. 신 수석의 물러나겠다는 의사가 완강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검찰 인사 과정에서 법무부와 검찰의 견해가 달랐고,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민정수석이 사의를 몇 차례 표시했다. 그때마다 문 대통령이 만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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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2·5일 만나 검찰 인사안을 논의했다. 윤 총장은 ‘추미애 라인’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대검 부장들의 교체를 요구했다. 
 
박범계 보고 대통령 재가 뒤, 신현수 “자존심 상해 못살겠다”
 
그러나 박 장관이 거부했고, 이견을 조율하던 신 수석을 건너뛰고 일요일인 7일 기습적인 인사 발표를 했다. 청와대는 “박 장관이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절차가 의지대로 진행됐고, 대통령 재가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보고·재가 경위에 대해선 “낱낱이 공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여권 핵심 인사는 통화에서 “박 장관이 신 수석 반대를 피하기 위해 ‘인사안은 민정수석실을 통해 제청한다’는 청와대 업무 프로세스까지 어기면서 문 대통령에게 재가를 사실상 직접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박 장관이 사고를 친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박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신 수석 사의 표명에 관한 질문을 받곤 “나중에”라며 즉답을 피했다.
 
문 대통령이 박 장관의 인사안을 보고받을 때는 수석실과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즉각 재가했다고 한다. 대통령 재가를 알게 된 신 수석이 사의를 밝히자 문 대통령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제청이 보고됐다는 점을 뒤늦게 인식하게 됐다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사의를 굳힌 신 수석은 주변에 “자존심이 상해 못살겠다” “더는 수석직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박 장관이 신 수석 대신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인사안을 논의했을 거라는 관측도 제기됐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저의 명예를 걸고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 최초의 검찰 출신 민정수석이다. 학자 출신의 조국, 감사원 출신의 김조원·김종호 전임 민정수석들이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몰았던 걸 감안하면 결이 다른 인사였다. 신 수석은 사법연수원 16기로 윤 총장(23기)보다 7년 선배이면서 서울대 법대 선배이기도 하다. 그런 신 수석의 임명은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1년 넘게 이어져 온 여권과 검찰의 갈등을 끝내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됐다.
 
신 수석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드라이브를 거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과 관련해서도 주변에 부정적인 의견을 토로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올 초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에 남겨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산·대형참사)의 직접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에 이양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모두 박탈해 수사·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사석에서 신 수석과 만났다는 정치권 관계자는 “신 수석이 민주당의 ‘검찰개혁 시즌2’ 구상에 부정적인 시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더라”면서 “여권의 검찰 때리기에 무력함을 느끼면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권 내 갈등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신 수석의 사표 수리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이날 청와대 발표의 핵심은 박 장관에 대한 사실상의 경고이자 신 수석의 자존심을 세워 사의를 철회하게 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동시에 추-윤 갈등에 이어 법무장관과 청와대 수석 간 갈등 조정에까지 실패할 경우 임기 말에 접어든 문 대통령이 급격한 레임덕에 빠질 거란 전망도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임기 말이 되니 권력 내부가 곳곳에서 무너지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그만 억지 부리고 하산 준비나 하라”고 했다.
 
강태화·하준호·성지원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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