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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MB 국정원 사찰’ 쟁점화 석연치 않다

중앙일보 2021.02.17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박 원장은 이날 “국정원 불법사찰 흑역사 처리 특별법 같은 걸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이 전했다. 오종택 기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박 원장은 이날 “국정원 불법사찰 흑역사 처리 특별법 같은 걸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이 전했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제 “이명박 정부 시절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과 법조인·연예인·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1000여 명의 동향을 파악한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한 데 이어 어제는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국가정보기관의 사찰성 정보 공개 촉구 및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대표를 포함한 52명의 민주당 의원이 함께했다.
 

야권, 보궐선거 앞두고 박형준 겨냥 의심
정보기관이 다시 정치에 휩쓸리면 불행

국가정보원에 의한 사찰이 있었다면 잘못이고 바로잡아야 한다. 제대로 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권발(發) 드라이브는 선뜻 공감하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어제 국회 정보위에 등장한 ‘국정원 60년 불법사찰 흑역사’란 표현이 보여주듯 사찰은 오랜 기간 진행돼 왔다. 실제로 “정치 관여 여지를 없앤다”며 국내 파트 정보요원들을 재교육하기 시작한 게 불과 얼마 전이고, 법적으로 ‘국내 정보 수집’을 못 하게 된 건 올해부터다. 이전엔 매일 수백 장의 보고서를 생산했다는데 대부분 인물 정보였다고 한다. 이른바 ‘존안 파일’로 DJ(김대중)의 파일은 한 트럭분이 넘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권은 2009년 1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정원에 ‘신원자료를 관리하라’고 한 통보를 문제 삼았다.
 
국정원은 신원조사도 담당한다. 올해부터 대상이 줄긴 했지만 공무원 임용 대상자나 산하기관의 임원, 한때 해외 여행객까지 조사했다. 풍문으로 알았다고 보기 어려운 정보가 담겼더라도 위법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공소시효(직권남용 10년)상 진위가 가려지기보다는 정치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또 문재인 정권은 출범과 함께 ‘적폐청산’을 한다며 국정원을 강도 높게 파헤쳤다.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메인 서버까지 뒤졌다. 원세훈 전 원장 등이 현재 재판을 받는 까닭이다. 당시 개혁위는 “청와대에서 정치인들의 인물 세평이나 동향정보 수집을 지시했다”면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복잡미묘한 사정을 다 아는 여권이 이제 와서 문제 삼는 이유는 뭔가.
 
야권에선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여권의 정략이라고 본다. 특히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정원이 불을 지피고 여당 대표까지 바람잡이로 나서는 것을 보니 뭔가 거대한 정치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정진석 의원)란 의심도 있다.
 
공교롭게 박지원 국정원장은 어제 정보위에서 “DJ·노무현 정부 땐 불법 사찰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정보위가 3분의 2로 의결하면 정보위에 보고할 수 있다”고 했다. 위원 12명 중 8명이 민주당 소속이니 사실상 내놓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던 여권이 국정원을 다시 정치로 밀어넣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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