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자서전 ‘안응칠 역사’ 재평가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글을 쓰며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했다. 안 의사가 수감됐던 중국 뤼순 감옥 독방.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16/19f23b76-a5fb-4f23-a9d2-d95b4d74c15f.jpg)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글을 쓰며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했다. 안 의사가 수감됐던 중국 뤼순 감옥 독방. [중앙포토]
순국 111주년 맞아 비판정본 나와
원문·번역문 전체 온라인 공개도
21세기 평화의 동북아 비전 제시
사라진 친필 원고 어디에 있을까
응칠(應七)은 안중근의 자(字·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다. 안 의사는 자서전 들머리에서 “성질이 경솔하고 조급한 편이어서 이름을 중근이라 했고, 가슴과 배에 일곱 개의 사마귀가 있어서 자를 응칠이라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변역 인근의 작은 식당에서 색다른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안응칠 역사』 비판정본 출간 및 독도디지털도서관(dokdodl.org) 개관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코로나19 사태 비대면 원칙에 따라 줌 화상회의로 진행된 이날 모임은 독도도서관친구들 김경애 사무국장의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다. 회원 20여 명이 노트북·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2014년 독도책보내기 운동으로 발족한 독도도서관친구들은 현재 월회비 2000원을 내는 시민회원 337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분쟁이 아닌 평화의 섬 독도를 꿈꾸며 2018년부터 안 의사의 책 비판정본 발간을 후원해왔다.
각계 전문가와 시민 3400명 손잡아
![독방 안의 책상을 재연한 모습.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16/c10868d2-6907-457b-8947-b73d7ffb7be4.jpg)
독방 안의 책상을 재연한 모습. [중앙포토]
예컨대 안 의사는 일제의 사형 선고에 대한 공소(控訴)마저 포기하며 저술에 매진했는데, 후대 한국 출판물에선 이를 한자 ‘拱訴’ 혹은 ‘控所’로 적었다. ‘控訴’는 항소(抗訴)를 뜻하는 옛 법률용어다. 박장대소(拍掌大笑)의 경우 안 의사는 박장대소(搏掌大笑)라고 썼다. 사소한 차이일 수 있으나 지난 100년 사이 한국인의 한자 사용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안 의사 처형장 내부 풍경.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16/636b4bc7-2475-43cb-8dbb-fa8b0954b949.jpg)
안 의사 처형장 내부 풍경. [중앙포토]
안 교수는 특히 『안응칠 역사』에 등장하는 사회(社會)라는 단어를 주목했다. 안 의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늘날 이른바 사회라는 것은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는 것을 위주로 한다”며 동포들의 화합을 촉구했다. 안 교수는 “영어 소사이어티(Society)를 단순 번역한 모임·조직을 넘어서 사회라는 것에 대한 가장 적확한 번역이다. 한국 근대용어사전을 만드는 주요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안 의사가 자신의 32년 역정을 정리한 『안응칠 역사』 필사본 일부.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16/64731c36-fdd9-458c-bce1-8dd0016d6e33.jpg)
안 의사가 자신의 32년 역정을 정리한 『안응칠 역사』 필사본 일부. [중앙포토]
여희숙 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장은 안 의사의 동시대성을 내세웠다. 그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접했던 안 의사의 전모를 1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했다는 지사적 측면은 물론 의병장 활동 당시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풀어준 안 의사의 보편적 인류애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거인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가 『안응칠 역사』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각오를 다졌다. 독립군 의병장 참모중장이었던 안 의사의 마음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한 번 의병을 일으켜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시도하여 열 번에 이르고,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또 내후년, 십 년 백 년이 걸려도 좋은 것입니다.”
100년 시간 뛰어넘는 동시대 인물

안중근 저서 비판정본 작업에 참여한 이들. 오른쪽부터 안재원 교수, 손하누리·김은숙 연구원, 여희숙 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장. 박정호 기자

안중근 의사
안 의사 비판정본은 최종판이 아니다. 학계 연구 결과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추가될 수 있다. 앞으로 원본을 되찾으면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멸실된 건 아닐까. 안재원 교수는 “『안응칠 역사』 필사본도 1969년 처음 발견됐다. 원본 또한 어디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일본 법무성(옛 사법성) 아카이브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안 의사 유해 찾기에 전념하고 있는 김월배 하얼빈대 이공대 교수도 “친필본을 필사할 정도로 안 의사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컸던 만큼 원본 또한 사법성 증거물품 보관기관에 있을 것 같다. 민간과 정부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안중근의 롤 모델은 조지 워싱턴?

조지 워싱턴
『안응칠 역사』의 한 대목이다. 안 의사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사진)을 영웅호걸에 견주었다. 워싱턴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내가 만일 훗날에 일을 이룬다면 반드시 미국으로 달려가서 특별히 워싱턴을 위해 추억하고 숭배하며 마음이 같았음을 기념하리라”고 다졌다.
『안응칠 역사』에는 안 의사가 존경한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안 의사의 롤 모델쯤 된다. 안 의사는 워싱턴에 자신의 고단한 일생을 투영한 듯하다. 또 다른 한 명은 안 의사가 어린 시절 흠모한 중국 초나라 군주 항우다. 의협심이 강한 안 의사는 “만고의 영웅 초패왕의 명예는 천추에 남겨 전한다. (중략) 그는 장부이고, 나도 장부”라고 적었다.
100여 년 전 격동의 국제 정세에 눈을 뜬 안 의사는 워싱턴에게서 새 희망을 발견했다. 안재원 교수는 “안 의사는 신소설작가 이해조가 1908년 발표한 『화성돈전』을 읽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졌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화성돈(華盛頓)은 워싱턴의 한자 음역어다. 『화성돈전』은 미국서 나온 워싱턴 전기 5종을 일본에서 발췌·편찬한 책이다. 중국에서 이를 중국어로 번역했고, 이를 다시 이해조가 국한문체로 집필했다. 독도도서관친구들은 세 번째 비판정본으로 『화성돈전』을 준비 중이다. 이해조 판본을 중심으로 한·중·일 3국의 텍스트를 비교·검토할 계획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