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바이든과 이낙연

중앙일보 2021.02.16 00:15 종합 27면 지면보기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투수의 어깨는 백묵이다. 내구연한이 있다. 프로야구 원년 22연승 신화의 ‘불사조’ 박철순이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린 ‘승부사’ 최동원의 선수 생명이 짧았던 건 다른 사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혹사해서다. 현대 야구에선 철저한 투수 어깨 관리가 필수적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이 수술에도 롱런하는 이유다.
 

부통령 출신 바이든 대통령 취임
한국선 총리 출신 대통령 없어
전·현 총리 이낙연·정세균 운명은?

한국 정치의 대표적인 혹사 캐릭터는 국무총리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지만 혹사엔 장사가 없다.
 
국무총리 잔혹사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의 방패막이 관행 때문이다. 청와대는 국정 현안 가운데 대통령 지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거나 잘해야 본전인 일은 총리에게 맡긴다. 청와대 회의에서 골치 아픈 일은 ‘총리실 주관 하에 처리’ 결정이 내려진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사령탑이 국무총리실인 게 최근 사례다.
 
다른 하나는 집권 후반기에 어김없이 추락하는 한국 대통령 지지도다. 대통령 인기가 바닥인데 하물며 그 정권의 2인자였던 국무총리랴. 이명박 정부 초기 친이·친박계 갈등 해소를 위해 청와대가 제안한 총리직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뒤도 안돌아보고 거절한 이유 중 하나다.
 
성공의 역사도 없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국무총리 가운데 이회창·이홍구·이수성·고건(김영삼 정부), 김종필·박태준·이한동(김대중 정부), 이해찬·한명숙(노무현 정부), 정운찬(이명박 정부), 황교안(박근혜 정부) 등이 대권에 도전했다. 실제 출마한 사람은 이회창·김종필·황교안 세 명인데 모두 낙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유고로 권한대행을 맡은 후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가 있지만 그는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 대통령이었다.
 
서소문 포럼 2/16

서소문 포럼 2/16

“따뜻한 오줌 한 양동이의 가치도 없다”(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 제32대 부통령 존 낸스 가너)라고 투덜댈 만큼 미국도 한때 부통령 자리는 찬밥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최근 50년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자리다. 더욱이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업무가 혼자선 감당 못 할 정도가 됐고 대통령의 미흡한 분야를 부통령이 백업하면서 국정 수행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전직 부통령은 자연스럽게 차기 대통령 후보 1~2순위다.
 
지난 50년간 리처드 닉슨, 린든 B 존슨, 제럴드 포드, 조지 H. W. 부시 등은 부통령 출신 대통령이었고 지난달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오바마 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이었다. 그야말로 부통령 전성시대다.
 
바이든 대통령의 기를 받아서일까. 지금 문재인 정부 두 명의 전·현직 국무총리가 또다시 마운드에 오를 태세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상황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월 지방선거 재·보선을 앞두고 있다. 정세균 총리는 최전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씨름하고 있다. 건곤일척의 승부처다.
 
하지만 상황은 무사 만루에 상대 타자는 강타자다. 재·보선은 더불어민주당 출신 박원순·오거돈 두 단체장의 성추행 파문 속에 치러지는 ‘면목 없는’ 선거다. 1월 취업자 수가 98만 2000명 줄어 외환위기 이후 최대 ‘고용 쇼크’를 맞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게임 체인저’ 코로나 백신 접종이 주요국에 뒤처지면서 코로나 전선에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 변수는 이 대표에 강펀치를 날렸다. 민주당 열성 지지층은 이 대표론 잠재적 야권 후보인 윤석열을 꺾고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본 것 같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지율 1위로 올라선 배경이다. 한때 40%까지 치솟았던 이 대표의 지지도는 10% 안팎으로 내려앉았다. 그 자리를 정 총리는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어깨를 혹사하긴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82년 우승 당시 OB 베어스 김영덕 감독과 박철순은 해후했다. 김 감독은 “그때 에이스는 매일 던지고 그랬어. 그래서 철순이 선수생활이 빨리 끝났어”라며 자신이 죄인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박철순은 “우승밖에 안 보여 무조건 던지고 싶었다”며 오히려 몸 관리를 잘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스승을 위로했다.
 
이 대표는 막걸리 애호가다. 언젠가 문재인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나 “내가 죄인이다”, “아니다. 내 탓이다”라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기울일 날이 올까. 아니면 기사회생의 새 역사를 쓸까. 4월 재·보선이 말해준다.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