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하석의 과학과 인간] 정치·사회 난제도 과학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어

중앙일보 2021.02.15 00:14 종합 26면 지면보기

왜 과학인가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성적에 대한 근심과 압박 때문에 불행하고 우울한 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이러한 사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수학과 과학 교육이 아닌가 우려된다. 미적분이나 유기화학등에 대한 악몽을 아직도 꾸는 어른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과학을 너무나 사랑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과학하기는 흥미롭고 신나는 일
선진국에선 과학이 문화의 일부
모든 일상생활이 과학연구 주제
성적에만 매달린 교육 탈피해야

이런 식으로 온 국민에게 의무교육으로 과학을 강요해서 과연 사회적으로 무엇을 얻는가 하는 회의감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은 힘겹게 공부했던 내용을 나중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며, 어렵고 싫었던 느낌만 남기 때문이다. 과학교육에 힘껏 투자해서 과학 혐오증만 일으킨다면 아예 과학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나라가 잘 살려면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전문적 과학지식을 가진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선수를 양성하듯이 재능이 보이는 아이들을 선별해서 특수 교육을 하면 된다. 온 국민을 어려운 과학으로 ‘고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라에 법관과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온 국민에게 고시 공부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학교육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은 그러한 직업적 훈련에 제한된 것이 아니다. 점수를 따기 위한 과학 공부는 답답하고 처량한 반면, 진짜로 과학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다. 과학은 문화의 일부다. 진정한 문화적 선진국에서는 그렇게들 이해하고 있다.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원초적이다. 먼 옛날의 조상도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보며 그 신비로움에 경탄했고, 지구상의 온갖 생물들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여러 가지 물질들은 왜 각각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신화적·종교적인 우주론부터 시작하여 기술과 연결된 물리과학의 시초까지,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인류 문명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인간이 깊은 우주의 신비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터득하고 깨쳐가는 것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이다.
 
천동설에 기반한 수성·금성의 8년 간의 궤적(조반니 카시니:1627~1712).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천체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해석하려다보니 복잡한 궤도 운동을 상상했다.

천동설에 기반한 수성·금성의 8년 간의 궤적(조반니 카시니:1627~1712).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천체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해석하려다보니 복잡한 궤도 운동을 상상했다.

그런데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지금 21세기의 인간들 대부분은 역설적으로 과학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과학적 탐구가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모른다. 과학의 내용은 어려워진 반면 인간들의 지적 능력이란 크게 향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교육이나 대중과학에 종사하는 분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초끈이론이나 후성유전학 등을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런 전문지식을 일반인들에게 퍼뜨리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란 과연 무엇이며, 또 왜 있어야 하는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과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 직접 과학을 경험해 보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과학은 먼 데만 있지 않다. 일상 생활의 모든 면이 다 과학연구의 주제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날씨에 대한 기상학, 항상 접하는 동식물들의 행태에 대한 생물학, 해와 달과 별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천문학, 물과 공기, 식초나 알코올 등 친근한 물질들의 본질에 대한 화학, 지형과 광물질에 대한 지질학. 현대 과학은 그런 일상적 주제들을 다루면서 시작되었다. 기술적으로도 일상 생활에서 생각할 일들이 많다. 휴대폰·인터넷·내비게이터 등은 어떻게 해서 작동되는지 전혀 모르고 사용만 할 일인가? 건전지·라디오·벽시계 등 옛날에 발명된 물건들도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공부해 보고 나름대로 연구해 보는 것도 과학이다.
 
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첨단적 연구도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필자가 사는 영국에서는 아마추어 과학 전통이 강했다. 18세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퍼지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이 일어나면서 과학을 즐겨 자발적으로 연구하는 훌륭한 소시민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중학교도 못 다녔던 돌턴은 독학으로 공부하여 학교 선생을 하면서 화학의 원자론을 창시하였다. 제본소 직공으로 일하던 패러데이는 구걸하듯이 여기저기서 과학을 배워서 전자기학과 전기화학에 대한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목사였던 프리스틀리는 자기 집 부엌에서 실험을 하며 산소를 발견했고, 집에서 돌아다니는 쥐를 잡아서 실험하여 산소가 호흡에 필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발견하는데 큰 공헌을 한 제임스 줄은 맥주 만드는 양조장 집 아들이었다. 사업을 물려받았지만 과학 연구도 짬짬이 했다. 다윈은 집안이 부유해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대학 교수도 아니었고 시골의 자택에서 칩거하며 진화론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우리가 현대과학의 창시자들로 떠받드는 위인들이다. 그런데 그중에 학교에서 과학을 제대로 배웠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어설프게 과학 연구를 할 수 있던 시대는 이제 지났지만 그런 식으로 현대과학의 기초가 다져졌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도 일반인들이 과학에 기여할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두터운 자생적 전통이 없이 유럽과 미국·일본에서 형성된 과학을 그냥 수입해 왔기 때문에 과학이 문화적으로 정착되는 것이 더 힘겹다고 생각된다.
 
과학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은 정말 어려운 과학을 해내는 전문가들을 더욱 존경하고 아끼게 될 것이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해서 즐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체육과 음악을 서툴지만 해 보면서 즐기고 또 관전과 감상을 하며 문화생활을 하듯이, 과학도 일반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필자는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 세 번이나 시도했었는데, 결국 서브 넣는 것을 터득하지 못하고 포기하였다. 그러나 그런 못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페더러나 윌리엄스 등 대가들이 하는 것을 보면 그게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그 가치를 알 수 있고, 몇 시간이고 몰입하여 관전한다. 노래도 음치이고 악기도 하나 다룰 줄 모르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도 받으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과학도 이런 식으로 생활화한다면, 어렵지도 않고 재미도 느낄 수 있게 된다.
 
필자는 학부 때까지 과학 공부를 했지만, 가장 흥미롭고 신기한 과학의 체험은 첨단과 아주 동떨어진 곳에서 해 보았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온도계의 철학』이란 책을 집필하면서 역사적 연구를 하다 보니 물이 끓는다는 단순한 현상도 사실은 아주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분명히 물은 정상적 기압에서 항상 100도에 끓는다고 배웠었는데, 200년 전의 교과서와 논문들을 보니 물을 담은 그릇의 재질과 모양이나 물속에 용해된 공기의 양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물이 끓는 온도와 형태는 아주 달라진다고 나와 있었다. 현대적 상식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서 의아해하다가, 많은 훌륭한 조상이 증언한 것을 그냥 무시할 수 없었기에 직접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정말 그렇지 않은가! 상황을 조금씩 바꿀 때마다 물이 끓는 모양과 온도는 신기하게도 달라졌다. 그렇게 매일 물 끓이기에 폭 빠져 여름 한 철을 보냈다. 그 후로 물을 끓일 때마다 절대로 건성으로 보지 않는다.
 
과학적 사고방식과 태도란 따지고 보면 별것이 아니다.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체계적 사고와 추론을 하여 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관찰을 잘하려면 온갖 기술을 동원해서 실험을 한다. 생소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만든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같이 인정하는 사실들에 기반해 토의하며, 그렇게 공유된 사실이 부족하다면 전력투구해 그것부터 만들어낸다.
 
그런 과학적 사고방식을 배운다면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적·사회적·윤리적으로도 그런 이성적 사고방식이라면 닥쳐오는 여러 가지 난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독학으로 과학을 깨친 위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학교 교육이 진정한 과학의 의미와 재미를 깨우쳐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으리라. 또 그런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교육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있다. 특히 요즘 코로나 사태를 맞아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생님들께 박수를 보낸다. 학생들도 물론이지만 선생님들도 성적에 매달린 교육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